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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 한잔의 용기]

익숙함 너머의 쓴맛

by 무지개바다

커피의 본고장 강릉에는 어딜 가나 커피가 맛있습니다.

강원도 강릉이 '커피의 도시'로 불리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중요한 배경이 있어요.

1980~90년대, 강릉 안목해변에 "보헤미안 박이추 커피"가 문을 열었고, 창립자인 박이추 씨는 국내 스페셜티 커피 문화의 선구자로 불리게 됩니다.

직접 생두를 볶아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는 방식이 큰 인기를 끌었고, 이후 수많은 바리스타와 커피숍에 영감을 주었어요.

저도 직접 박이추 님께서 내려주신 커피를 아주 오래전에 마셔본 기억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커피의 맛을 전혀 알지 못했던 커피를 마시지 않았던 시절에 그 호사를 누렸지 뭡니까..


안목해변에 즐비해있던 자판기 커피에서 남들은 커피 마실 때 저는 율무차와 코코아를 마시던 시절이었거든요.

자판기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바닷가의 멋진 풍경과 어우러진 커피숍들이 안목해변을 따라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죠.

지금은 수십 곳 이상의 카페가 밀집해 ‘강릉 커피거리’라는 명소를 이루게 됩니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바닷가를 바라보면서 홀짝홀짝 마시던 그 낭만은 사라지고 없지만,

오전 한적한 시간 사람들이 없을 때 즐기는 바다와 커피는 평생 살면서 제 영혼을 맑게 해 주는 작은 선물입니다.


또 빠질 수 없는 곳이 바로 테라로사인데요.

초창기만 해도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죠.

테라로사 사장님께서 직접 생두를 수입하고 로스팅하며, 진정한 ‘한 잔의 커피’에 대한 깊은 철학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테라로사 강릉 본점은 로스팅 공장, 카페, 베이커리, 전시장까지 함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높은 천장, 고풍스러운 인테리어, 향긋한 원두 냄새가 어우러져 한 발 들이는 순간부터 커피에 빠져들게 하죠.


철학 있는 커피 브랜드로 스타벅스만큼 유명해진 곳입니다. 자랑스럽죠!






오늘의 소소한 저의 일탈은 에스프레소 한잔입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머릿속에 지우고 에스프레소를 과감히 주문해 봅니다.

두근두근.. 쓴맛일걸 알고는 있었지만, 쓴맛 어딘가에서 맛볼 수 있을 달콤함을 생각하면서 기다린 한잔!

한입이면 끝날 것 같은 이 작은 잔에 담긴 에스프레소 한잔의 깊은 맛을 느낄 준비가 되었어요.


하나 둘 셋.. 마셔볼게요. (일탈을 생중계합니다.)

에스프레소 한 입을 마신 순간,

생각보다 훨씬 강하고 쓰네요.


저에겐 너무 이질적인 맛. 라테나 바닐라처럼 부드러운 커피에 익숙한 입맛엔, 그 작고 진한 한 모금이 꽤 충격적입니다.

저는 직진의 성격이라 일단 강렬한 첫맛이지만, 두고두고 시도해 봅니다.

스무 번을 나눠서 마셔볼 계획입니다.


‘왜 사람들은 이걸 마실까?’
‘이 맛이 좋다고 느끼기까지는 얼마나 시간이 걸렸을까?’

알게 모르게, 우리는 처음을 무서워합니다.
새로운 환경, 낯선 사람, 익숙하지 않은 맛.
그 모든 것은 처음엔 늘 불편하고 낯설고 어색하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그 낯섦 속에서 진짜를 발견하게 하기도 합니다.

저도 에스프레소의 진짜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에스프레소도 그런 존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처음엔 쓰기만 했지만, 언젠가는 그 쓴맛에서 위로를 찾게 될지도 모르고
그 단단하고 깊은 맛이, 하루의 중심을 잡아주는 작은 의식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해봅니다.


아직 커피의 맛을 잘 모르는 저는, 그 한 입을 오래 기억하기로 해보기로 저장합니다.
왜냐하면 "무언가를 이해하려면, 먼저 느껴야 하니까."
입에 맞지 않더라도, 삶의 맛처럼 — 쓴맛도 결국은 내 것이 되는 순간이 올 테니까요.


커피의 쓴맛을 우리는 인생에 비유하기도 하죠.

오늘의 일탈을 귀엽게 정리해 봅니다.



커피는 쓸수록 각성되고,
인생은 쓸수록 철이 든다.


첫 에스프레소는 "왜 이런 걸 마셔?"였고,
두 번째는 "근데 또 생각나네?"
인생도 그렇다. 당황스러운데, 자꾸 다시 마주하게 된다.


설탕을 넣지 않아도 마시게 되는 게 커피고,
정답을 몰라도 계속 살아지는 게 인생이다.


커피의 쓴맛은 원두 탓이 아니라, 아직 내가 단맛을 모르는 것일지도.
인생도 그렇게, 탓하지 말고 천천히 씹어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에스프레소처럼 진한 시절은 오래 남는다.
뜨거웠고, 쓰디썼고, 그래서 기억된다.




귀여운 일탈을 뒤로한 채 출근합니다.

쓰다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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