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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바다 Nov 17. 2023

안전지대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끝나면 잠자리에 누워 이불을 얼굴 위까지 끌어올리고 등을 새우처럼 동 그렇게 말아도 찬바람이 지나간 등골의 세포하나하나에 누가 찬물을 확 끼얹은 것 같은 한기가 든다.

 -아 추워를 연발하며 공벌레처럼 더 동그랗게 말아버린다.

그럴 때마다 "카프카의 변신" 이 생각나면서 바퀴벌레로 변신하면 아무 생각 없이 사람들 눈만 피해 살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하곤 했다.

학생들을 지도하는 일은 내 적성에 딱 맞춤이고, 좋아하는 공부를 하면서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 또한 축복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일이 힘들때도 애정으로 토닥토닥 나 자신을 격려하며 잘하고 있다고 늘 혼잣말하며 지켜온 내 일을 여전히 사랑한다.


모든 직장생활에는 개인이나 팀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업무성과를 내야 하는 것처럼 학원에서도 내신기간에는 오롯이 점수를 잘 내야 한다. 학생의 개인 역량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90점이라는 산을 넘어줘야 안전지대로 접어드는 것이다. 안락한 존은 90-100점 사이이다.

50점이 70점으로 올라도 노력한 것에 대한칭찬과  격려대신  부모들은 학원 다니면서 90점이 안된다고 어떻게 된 일이냐고  하신다ㆍ 학원 다니면 50점짜리도 100점 만든다는 과대광고는 한번 해본 적 없고, 할 생각도 없고, 앞으로 그렇고 그럴 자신도 없다.

1점 하나에도 등급이 바뀌는 살벌한 내신에서 20점이면 로켓급 성장이 아닌가ㆍ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그 1점을 올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수치로만 따지는 건 너무 억울한 일이다.


이번에도 객관식이 6.8점짜리 5.8점짜리 두 개를 틀려 90점이 안된 학생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와서 하소연을 한다. 그래, 선생님은 네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알아.. 내 마음속으로 너는 100점이야.

전화포비아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나는 시험이 끝나면 카톡소리 하나에도 긴장하고 예민해진다.

하루이틀 겪는 일도 아니고 한해 두 해가 아닌데도 도통 쓰라린 마음은 뭐라 표현할 길이 없다.

지금까지 본 내신성적에서 영어를 늘 백점 맞았던 친구가 톡으로 " 오늘까지 만이에요 선생님."

이라는 톡을 열어보기가  너무나 무서웠다.. 아니 백점을 맞고도 학원을 그만두면...

무슨 얘기를 하려나 심호흡을 한 후 눈딱 감고 열어보니 " 어제도 빠졌는데 오늘은 감기로 하루 쉴게요. 이제  결석 안 할게요. 오늘까지 만이에요. 선생님 "

오늘까지만 쉰다는 얘기였던 것이다.. 십년감수했다. 명 짧은 사람들은 얘기 못 듣고 쓰러졌을 것이다.


정신적 스트레스 안 받는 직업은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다. 그간 가슴후벼파는 메세지와 쌀쌀한 말투에 무디어졌다 생각한  나는 미련도많이 버리고 훌훌 털어버리는 지경까지는 온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선생님 엄마가 학원 끊으래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라는 안전지대에 들지 못한  학생의 문자를 받았다.

훌훌 털어버리는 지경에서 까지만 털어버렸다고 수정하자.


학원을 천년만년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학교도 아니고 학원은 하루를 다니고도 그만둘 수 있는 곳이다.

나는 모든 것들을 인연이라고 생각하는 주의자다. 학원생이 한 명 오면 그 학생의 부모님, 조부모님  심지어 외숙모까지 연락처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고,  학생 한 명에 내 전화부에는 적어도 4명까지도 저장되는 경우도 있다.

거짓말이라고 느껴도 어쩔 수 없지만, 학원생이 학원에 오면 그때부턴 내 자식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 학생이 학원을 그만둘 땐 인연이 끊어지는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속 시원한 인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인연이 더 많다.

남은 인연 내 자식들을 위해 오늘도 또 힘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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