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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바다 Jan 21. 2024

동네공인이야기 (2탄)

-제가 몇 살로 보이세요?

대망의 2024년이 코앞이었을 때부터 우주도 정복할 것만  같은 나의 수많은 플랜들은 내 수첩과 다이어리 여기저기에서 발견되길 기다리고 있다.

벌써 1월의 달력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중력은 내 얼굴만 잡아당기는 게 아니었다.

시간도 진격의 거인처럼 성큼성큼 잡아당기고 있는 게 틀림없다.  




나의 모토는 너무 클리쉐 하게 들리겠지만, "건강을 잃으면 전부 잃는 것"이다.

한동안 나의 알고리즘은 온통 건강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더 나이 먹기 전에 근력운동을 꼭 해야 하겠노라 결심하고 12월 초부터 아파트 상가에 있는 헬스장을 3개월 등록했다.

미라클 모닝만큼  5분 거리의 헬스장의 마음의 거리는 5킬로만큼이나 멀다. 갈까 말까 내적갈등을 거짓말보태 백번은 하고 나서야 신발끈을 질끈 메고 현관문을 나선다.

오늘도 인생의 무게를 들러 가자라는 생각으로 센터문을 열고 출석체크를 한다.  대부분 사람들의 새해의 다짐은 운동, 영어, 다이어트 이 세 가지가 가장 많다. 그러고 보니 내 다짐은 늘 이 세 가지였던 것 같다.

달리기와 집에 있는 운동기구들로 운동은 했지만 그야말로 쇠질은 거의 처음이나 마찬가지 헬린이다.




트레이너 선생님께 PT를 받는 건 고민스러워 일단 여러 가지 혼자 해본다.

저 멀리서 쭈구리 같은 내 포즈를 매의 눈으로 보시던 한 남성분이 나에게 다가오신다. 상체의 근육이 다 보이는 민소매를 입으시고 , 챔피언들이나  할 법한 벨트를 두르신 머리가 살짝 벗겨진 어르신인데, 이미 근육이 헬스만랩은 찍으신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하면 운동 하나도 안되니까 등의 근육에 집중을 해보라고 하시며 뒤에서 한참을 설명해 주시고 자세도 잡아주셔서 헬스장 관장님이신가 했다.

 보기에 딱하셨던 모양인지 너무 친철하게도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어르신께 예의 갖춰 두 손 모아 인사드렸더니

" 제가 몇 살로 보이세요? 맞추면 커피 한잔 살게요"


아! 수능시험만큼 어려운 문제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나 순간 머릿속에서 숫자가 요동쳤다.

적당히 젊어 보이는 나이로 줄여서 말씀드리자니 그 나이면 어쩌나 싶고, 몸의 근육을 보면 분명 나이가 많으신데도 이렇게 멋지다를 어필하시고 싶어 하시는 건가 싶었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55세라며 말꼬리를 흐리며 대폭 줄여서 말씀드렸더니 " 커피는 못 사드리겠네요. " 하고는 저만치 가시는데 그 등이 "나 삐졌다"로 보였다.

아... 실수했나?? 그보다 젊으신가?? 아.. 진짜 이런 거 너무 싫다..라고 생각하며 그 분과 거리를 두고 열심히 쭈구리 포즈를 취하고 대충 운동하고 집으로 빨리 가야겠다 싶었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엄청난 무게를 들고 계시는 모습은 멀리서 보니 청년이라고 해도 믿을 뒷모습이긴 했다. 아... 그래도 마흔 살이라고 말씀드리기엔 내 양심이 허락지 않았다.

주섬주섬 운동을 끝내고 나가려는데 그분이 나를 향해 종이컵을 들고 오신다.

본인 나이는 못 맞췄지만 커피 한잔은 드린다며 미소를 지으며 " 내 나이가 73살이에요. 잘하실 수 있을 거예요.  헬스장 오는 거 귀찮아하지 말고 오면 반은 한 거니까 꾸준히 운동하세요. 내 나이 되니 건강이 최고예요."

식스센스 이후 엄청난 반전이라고 생각하며 대단하시다를 연발하며 진심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날 이후 나의 헬스장 출근도장은 더욱 가볍게 찍혔고,

저 멀리 동네프로 헬스장 만렙 어르신은 또 다른 분께 나이를 맞혀보라며 근육을 자랑하시고 계셨다.

나도 나이들어 경로당에서 근육을 자랑하는 할머니가 되야지!

그모습을 뒤에서 다 지켜본 제자가 " 선생님 안녕하세요ㆍ"하며 화이팅하라는 손짓을해준다ㆍ

넌 언제부터 거기에있었던거니 ㆍㆍ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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