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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바다 Nov 21. 2023

미라클 모닝은 DNA를 타고

 어릴 때  어린이 신문에 내 글이 찍혀 나오면 그렇게 신기했다.

 신문 첫 장부터 샅샅이 뒤져 내 글을 찾아 할머니 할아버지 코앞에 신문을 갖다 대며 자랑하면 할머니는 우리 강아지라고 하시며 꼭안아머리를 쓰다듬어주시고 할아버지는 우리 손녀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시면서 짜장면을 사주셨다ㆍ

이렇게 시작하면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거나 잘 썼거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단호히 그렇지 않다. 소름 끼치게 글 잘 썼던 우리 반 반장은 글 쓰는 일과 관련된 일을 할까?

한집건너 한집에 또래가 있어 방과 후엔 가방을 휙 집어던져놓고 언덕 위에 있던 할아버지 집 마당에서 할머니께서  큰 소리로 "저녁 먹으러 들어와 "라는 소리를 열 번쯤 해야 바닥에 발을 질질 끌고 팔다리를 흐느적거리며  마지못해 친구들하고 손을 흔들고  돌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그저  놀기 좋아하는  시골 어린이였다.




내가 어릴 때 살던 동네는 놀이터도 하나 없는 시골 중에 깡시골이었다. 친구들은 논바닥에서 야구를 했고, 공을 무서워했던  나는 무줄이나 공기놀이를 365일 했고 흙바닥에 주저앉아 땅따먹기놀이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저 숙제만 해도 기특해하셨던 할아버지할머니는 일 때문에 자주 이사를 해야 했던 부모님 대신 알뜰하게 살펴주셨고  자유로운 어린 시절과 자연 속에서 원시인처럼 뜨거운 햇빛에 그을려 반짝거리는  내 얼굴도 마루처럼 까무잡잡하니 그저 건강하기만 했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1930년대 동산리 진흥학교에 훈장선생님으로 계시다 면서기로 그 이후 농사일을 하셨다.  평생 새벽녘과 저녁주무시기 전 하루 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적으셨는데,  할아버지께서 집에 안 계실 때면 몰래몰래 훔쳐보고 할아버지가 쓰시던 검은테 안경도 써보고 지금생각해 보면 made in Japan이라고 진하게 쓰여있던 것이 영어라는 것도 모르던 까막눈시절이었다ㆍ

영어를 가르치게 될 줄이야...


대학교 3학년때 암으로 병원에 입원해 계셨을 때도 자격증을 따면 어릴 때처럼 엄지를 들어주셨다ㆍ

주치의선생님께서 남은 기간이 7개월이라는 말씀뒤 정확히 그 뒤   할아버지는 우리 곁을 떠나셨다ㆍ

돌아가시고 할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는데 일기장 속에 어린이 신문을 스크랩해 놓으시고 우리 손녀 첫 글쓰기를 축하하며 새벽에 읽어본다..라는 글을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더랬다.

 할아버지가 남겨주신 새벽기상  DNA가 에게도 있나보다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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