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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바다 Nov 13. 2023

조용한 성격인거지 다문화가정이라서 그런 게 아니야.

- 빼빼로야 고마워

인형처럼 속눈썹이 길고 짙은 초등학교 3학년 친구가 모자를 깊게 눌러쓴 아버지손을 잡고 학원문을 열었다.

아이의 눈동자는 겁먹은 사슴처럼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아 그 모습을 보는 내 눈은 자동으로 울지 마하는 눈빛을 보냈다." 눈빛이 예쁘구나!"

눈만 끔뻑거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아이를 대신해 아버지가 영어수업을 할 수 있냐고 물어보셨다.

필요한  상담과 간단한 테스트를 한 후 수업을 하기로 한 첫날부터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사실 나는 아직도 아이의 목소리를 크게 들어보질 못했다.

한국말이 서툰 아이의 어머니와의 상담전화는 오히려 내가 더 죄송스럽고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왜 더 쉬운 말로 잘 설명을 하지 못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한편으로는 한국에 왔으니까 한국말을 좀 배우셔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솔직히 들었다.

영어는 그럭저럭 말하기가 어려워 그렇지 쓰기와 문법도 곧잘 따라 했다. 그러다 코로나 시대에 부딪친 우리는 부랴부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했고,  줌을 통한 수업에서 이 아이는 누구보다도 큰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 그 모습에 놀란 나는  호들갑을 있는 대로 떨며 드디어 말을 했다고  갓난쟁이 아이가 처음으로 발걸을음 떼었을때 만큼 기뻐했다. 이제 됐다. 라며 나는 아이가 드디어 마음을 열었다고 들었던 생각은  오프라인 수업으로 전환되면서 처참히 무너졌다.

또 다시 침묵으로 눈빛만 주고 입은 닫아버린 상황이 되었다. 다시 제자리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옆반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이 되었을 때 아이 배에 힘이 없어 그렇다며 수업 전 10분씩 복식호흡과 소리 내는 법까지 아이에게 알려주고 어떻게든 우리는 아이를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아이에게 더 부담을 준 것인지... 학원을 빠지는 날이 많고, 아픈 날도 많았다.

학원비는 꼬박꼬박 내시는데, 아이는 일주일에 서너 번 빠지고, 양심이 허락지 않았다.


학원입장에서도 아이만 따로 배려 아닌 배려로 아이들과 역차별이 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여 결단을 내리기로 결심했던 빼빼로 데이 11월 11일이었다.

클래스 아이들은 서로 주고받은 빼빼로를 맛있게 먹으면서 장난을 치고 있을 때 이 친구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너무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런 생각으로 출석부를 정리하는데.

이 친구가 수줍게 나에게 빼빼로를 하나 주면서 나만 들릴 수 있게 한 말을 듣고 나는 그만 눈물을 왈칵 쏟았다." 선생님 빼빼로 좋아하신다고 해서 가져왔어요.."

 간식에 관한 수업을 할 때 나는 빼빼로를 어릴 때 좋아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냥 주기는 힘들고 빼빼로 데이에 맞춰.. 용기 있게 나에게 빼빼로를 준 것이다. 눈물을 흘리는 내 모습을 본 친구들이 놀라 " 어 선생님 우신다!!"라고 하자 이 친구가 뒤돌아서서 가방에서 준비해 온 빼빼로를 반 친구들에게 전부 나눠줬다.

" 와!!!! " 하며 마치 약속한 것처럼 다 같이 박수를 치며 고마워 고마워를 외쳤다.

내 눈물도 덩달아 쏙 들어갔지만, 마음속 여운은 아직도 감동으로 남아있다.


나를 위해 반 친구들을 위해 빼빼로를 사고 준비해서 학원으로 가져오는 내내 얼마나 큰 용기를 냈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얼마나 애썼을까....


그날저녁 (금요일이었다.) 아이에게 나는 고맙다는 카톡을 남기고, 더 공부할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일요일 저녁인 지금까지 아이는 카톡을 읽지도 않았다.

그래도 나는 빼빼로가 너무 고맙다.

아이도 우리를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다시 공부할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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