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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 Sep 01. 2020

니 행복을 왜 나한테 물어?

"니 행복을 왜 나한테 물어?"


드라마 '멜로가 체질' 첫 회에 나왔던 대사다. 한 줄의 문장이 해석되는 데는 문맥에 따라 다양한 뉘앙스가 존재하겠지만, 나는 저 말을 듣고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문장 자체만 놓고 보자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 자신의 행복을 누구에게 묻는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저 당연한 사실을 쉽게도 잊고 지냈고, 그것이 익숙해질 무렵 불행 혹은 고난이 찾아오면 으레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내 행복을 물었다. 타인에게 내 행복을 묻기 시작하는 순간, 실체를 갖춘 불행이 성큼 다가온다. 결국 내 몫의 인생에서 나는 쏙 빼 놓은 채, 주변을 탓하기 시작하는 스스로를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나의 질문에 억울함과 황당함이 울컥 밀려오는 상대의 표정을 보는 것 또한 무척 슬픈 일이다.


결혼생활을 이어가면서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결혼은 연애의 완성이 아니다. 어떠한 완료의 지점도 아니다. 두 사람의 기나긴 공동생활의 시작이며, 내 손으로 맞이한 가족과 함께 새로운 겹의 인생이 하나 더 시작되는 지점 정도라고 생각한다. 일련의 시간을 겪으면서 부부가 된 두 사람은 싸우기도 잘 지내기도 하며 함께하는 각자의 인생을 살아간다. 하지만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지점이 저 대사와 일맥상통한다. 결혼생활을 이어가지만 나라는 존재의 인생은 태어나서 지금껏 내 것이 아닌 적이 없었고, 그 사실은 변할리 없다는 것. 곁에 배우자가 있지만 내 인생은 내가 살아가는 수 밖에는 도리가 없다. 하지만 함께가 익숙해지면 내 인생도 왠지 상대에게 기댈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고, 그 지점에서부터 약간의 균열이 발생한다.


함께 살아가는 삶이기에 상대방의 선택은 내 인생의 변수가 되고, 둘 중 누구 하나가 양보 혹은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마련이다. 부부생활을 이어오면서 내가 깨달은 바가 하나 있다면 공평하다는 것이 꼭 50:50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부부 사이에서의 공평함의 비율은 놓여진 환경과 둘 간의 합의에 따라 엄청나게 다양해질 수 있고, 어느 한쪽이 그 비율을 억울해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수용하는 과정 또한 결혼 생활의 한 부분임에 틀림없다. 동일한 상황을 두고 그것이 내겐 '희생'이었지만 상대에게는 '너의 선택'이었다 처럼 상반되게 각인되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함을 나는 함께 살아내면서 알았다.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자식을 낳든 그렇지 않든 내 인생은 내 몫이다. 나의 행복을 누군가에게 물어 답을 구할 수 있다면 세상 많은 이들이 이렇게 치열하게 스스로의 삶을 살아낼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조차 느리게 깨달아가는 나는 이제서야 저 드라마 대사가 달리 들리기 시작했다. 내 행복을 나에게 자주 묻고 답을 생각하며 내게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을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처럼 모두 다 알고 있지만 너무 당연한 사실이라 당연히 까먹고 지내는 또 하나의 명제를 이제야 깨닫고 체득한다. 내 행복은 내게 묻는 거다. 그게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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