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말입니다...

by 예나

나는 돌아다니는 것을 싫어하지 않지만, 집에 있는 것 또한 싫어하지 않는다. 각각 나름의 맛이 있기에 날씨 좋은 날은 이리저리 걷기도 하고, 귀찮고 퍼지고 싶은 날은 한없이 집에만 있기도 한다. 그래서 내게 여행이라는 것도 가면 좋고 안 가도 뭐 크게 문제 될 것 없는 것 중의 하나였고, 지금도 그 마음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여행 예찬론자가 아니었던 내가 대학 4학년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무슨 마음에선지 휴학계를 내고 프랑스에서 살아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해외여행을 혼자 해 본 적도 없으면서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외국에서 몇 달간 지내보겠다는 호기로움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외국에서 살아본다는 것 자체에 대한 일말의 로망 같은 게 없어서였는지, 아니면 무서울 게 없을 정도로 아는 게 적어서 그랬는지 프랑스에서 지내던 나는 적당히 재밌었고 어딘가 지루한 구석도 있었다. 여행이 아닌 머무름이었기에 마냥 즐겁기만은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빛나던 나이에 그토록 반짝이던 곳을 처음 가 봤던 그 느낌만큼은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희열이었다. 나는 몇개월 지낼 곳으로 뚜르라는 소도시를 택했고, 처음 혼자 외국 공항에서 시골 숙소까지 찾아가던 그 막막함 속의 나는 지금 생각해도 아득하다.


어찌어찌 숙소에 가서 통하지도 않는 불어를 이리저리 굴려가며 방을 배정받고 난 후, 처음 본 것이 백야였다. 그 당시 내 방은 완전한 서향, 그래서 저녁 9시가 넘은 시각에도 부연 해가 방 한쪽을 크게 채운 창 가득 차 있었던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 너무 멀어진 기억이라 모든 시간들이 선명하진 않지만, 엽서나 포스터에서만 보던 프랑스 작은 도시의 비현실적인 예쁨은 아련하게 남아있다. 오래됐지만 낡지 않았고, 꾸미지 않았지만 어디 하나 구겨져 있는 공간이 없던 유럽 특유의 자연스러움이 뭔지 그냥 돌아다기만 해 봐도 알 수 있었다.


가끔 지내던 곳을 떠나 파리로 마르세이유로 니스로 가보고 싶던 곳을 여행할 수 있었고, 나고 자라면서 봐 오던 바다와는 결이 조금 다른 그곳의 바다를 보고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프랑스의 어떠한 것이 너무 좋았다고 단정해서 말하기 어려울 만큼 그 나라가 내게 준 약간의 경이로움은 지금도 여전하다. 날씨도 도시도 그저 가진 것 자체만으로 빛나기에 더 무엇인가 보탤 필요가 없던 그들에게 미묘한 질투심이 생길 만큼 그 타고난 자연스러움이 참으로 좋았다.


혼자 외국에서 잠시라도 살아본다는 건, 그 외관이 가지는 아름다움과는 별개로 어느 정도의 지루함과 철저하게 이방인이 되는 기분이 무엇인지 실감케 해 주기도 한다. 어쩌면 일찍이 그런 감정을 맛본 덕에 지금 이곳 미국에서 사는 매일이 그닥 좋지도 나쁘지도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만약 오지랖을 피우며 누군가에게 충고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조금이라도 어린 나이에 해외에서 살아보는 경험을 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어떠한 경험이 누군가에게 얼마나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는 무한한 경우의 수를 품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해 봐야 자기 것을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대부분의 경험은 해보지 않은 것 보다 해본 후 남는 후회가 절대적으로 적다는 것도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여행이 주는 짧은 행복감과는 차원이 다른, 생활이 주는 철저한 현실감을 보태어 느낄 수 있는 경험은 남다르다. 여행에서는 별 것 아닌 일상의 풍경이 현실이 되면 죽고 살기 직전까지 고민하게 만드는 무엇이 될 수도 있고, 한두 번 지나치며 건너는 센 강과 일상에서 강변을 걸으며 보고 느끼는 감각은 절대 같을 수가 없다. 프랑스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낭만을 함께 떠올리고, 왜 그곳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느라 여념이 없지만, 적어도 그 낭만에 생활의 감각을 덧붙일 수 있음이 내게는 더욱 각별하다. 각별하기에 허황된 과장이나 필요 이상의 찌질함도 필요 없다. 그 시절 프랑스는 아름다웠고, 조금 지루하고 낯선 날도 있었지만, 꼭 다시금 가고 싶은 어떤 곳으로 남아있는 이 기억이 내게는 여전히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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