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곳을 미국으로 옮기고 난 후, 꽤나 깊게 우울했었고 심적으로 자주 방황했다. 생활환경이 완전히 바뀐 탓인지, 아니면 그냥 그럴 때가 됐었는데 그게 하필이면 이곳으로 왔을 때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난생처음으로 우울을 실감 나게 마주했다. 하필이면 왜 그때였을까를 요즘 들어 자주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볼 여유가 생겼을 만큼 지금의 삶에 많이 익숙해졌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혼자가 무엇인지 가장 절절하게 경험한 시기가 그때가 아닌가 싶다. 떨어져 지내던 남편과 다시 함께 사는 삶을 위해 멀리 떠나 왔지만, 이미 각자는 스스로의 삶이 너무도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고 게다가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새로운 환경에 놓이면서 겪게 되어 있는 혼란을 함께 맞이한 것이다. 세상 모든 게 불안했고, 그래서 이유 없이 기분이 가라앉거나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원망의 대상이나 이유를 많이도 찾아다녔고, 그러지 않고서는 스스로가 너무 탐탁지 않아 내 마음이 지옥인 날을 몇 차례 경험하고 나니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그 시간을 그저 견뎌낼 수밖에 없었던 때, 유일하게 숨통을 틔워준 것은 걷는 일뿐이었다. 일부러 시간을 보내려 빵을 굽고 청소를 유난스럽게 해도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늘 남아있었는데, 걷고 나면 신기하게도 그런 구석이 없었다. 일단 이어폰을 꽂고 운동화를 신고 문을 나서면 그때부터 내가 할 일은 한 걸음씩 내딛는 것 말고는 없었다. 몇 시 몇 분 까지 어느 곳에 가서 무언가를 하기 위해 걷는 걸음이 아니라, 그저 걷기 위해 걷는 일 밖에 없다는 단조로움이 묘하게 좋았다. 그렇게 한 시간을 좀 넘게 이리저리 걷고 돌아오면서 늘 '그래 오늘도 나오길 잘했다. 걷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스쳤다.
걷다 보니 생각이 정리되고 걷다 보니 우울이 걷히더라는 말은 하지 못하겠다. 걷는 일이 그렇게 만들어 주었는지 정확한 인과관계를 알지도 못할뿐더러, 세상에 무엇 덕분에 무엇이 된다는 명제는 사실 그리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님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불안하기도 하며 우울하기도 하고 가끔은 즐겁기도 한 그런 일상을 보내는 중인 것은 여전하다. 그렇지만 요즘에도 속내가 답답한 어느 날이면 저녁 설거지를 끝내 놓고라도 나가서 얼마간을 걷다 오는 걸 보면 분명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엇이 걷기 속에 있기는 한 것 같다.
사실 직장을 다니며 도시에서 생활하다 보면 딱히 걸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나 역시 출퇴근을 위해 걷는 정도가 대부분이었고, 그땐 걸으면서도 지각을 하지나 않을지 또는 사무실에 가서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등 이런저런 잡생각들을 하느라 오롯하게 걷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게 다반사였다. 작정하고 걷기만 하겠다고 나서는 일과 다른 목적을 위해 걷는 일은 같을 수가 없음을 경험해보고 알았다. 그저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걸음을 내딛는 일일 뿐이라는 사실이 주는 단조로움이 좋아지는 어느 때가 분명히 있다.
다행히도 걷기는 시간만 있다면 크게 공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라 더욱 마음이 간다. 혹여 지금 마음이 복잡한 어떤 일이 나를 괴롭히는 것 같은 때가 있다면, 그저 걸어보시라고 말하고 싶다. 걸어봤는데 생각보다 별로일 수도 있겠으나, 아마도 그건 걷기 시작하면서 내가 걸으면 무언가 나아질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별 다른 생각 없이 '그저 걷는 일'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