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사소한 사정

by 예나

사소함이라고 하면 괜히 가벼울 것 같고,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쉽게 손에쥘 수 있으며 심지어 곁에 있어도 존재 자체를 느끼지 못할 만큼의 당연함이 묻어난다. 저 사소함을 일상이라는 단어로 바꿔도 그 어감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일상은 사소하다. 일상에는 어느 구석엔가 루틴이 존재하고, 의지와 무관하게 지속된다. 그래서 여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이 필요 이상으로 극대화되는지도 모르겠다.


미국으로 떠나겠다고 결심한 후,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부러움 섞인 말투로 이야기했다. 좋겠다고. 무엇이 어떻게 누구에게 얼마나 좋은지는 각자 해석의 몫이고, 그저 앞뒤 없이 좋겠다고 했다. 와보니 물론 좋은 점도 있었지만, 사실 당시 내게는 다른 나라로 가서 영위하는 일상의 연속이 뭐 그리 좋기만 하랴 싶은 속내가 있었다. 한국에서의 삶이 이곳에서 보다 훨씬 좋다 나쁘다를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각각 저마다 환경이 가진 장단점이 있고, 그것들이 나와 얼마나 잘 어우러지느냐에 따라 개인의 호불호를 이야기할 수 있지만, 절대적으로 좋거나 그 반대되는 것들은 사실 세상에 잘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이 곳으로 와서 한국에서와는 결이 좀 다른 일상을 살아가지만, 결국 나는 또 나여서 살아가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소한 일상이 있고 가끔의 즐거움이 있으며, 종종 지루함도 있고 또 일상은 이어진다. 어쩌면 떠나오면서 큰 기대가 없었던 덕에 비닥을 칠 만큼 실망할 일 없이 그저 하루를 차곡차곡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곳으로 와서 글을 읽고 쓰는 재미를 조금 더 가깝게 체감하는 것도 결국엔 이러한 사소함이 가진 일상성을 오롯하게 경험했기 때문에 가능한지도 모른다. 각자의 사소한 사정이 쌓여 어떤 이의 일상과 일생이 되는 과정이 삶이라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섭리를 느리게 살면서 천천히 깨닫는 중이다.


모두가 각자의 사정을 가지고 일상을 이어간다. 꾸준함은 크게 소리 내는 법이 없어서 그 속에 일상이 더해지면 한 없이 고요하다. 그래서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변화가 필요하다고도 느끼며 무언가 새로운 도전을 해야겠다는 의지도 심어준다. 그리고 나는 모든 이들의 그 새로움을 응원한다.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은 사소하다고 무시해도 될 것도, 눈물 나게 소중할 것도 없다는 균형감을 잃지 않는 것이다. 살다 보니 어떠한 것의 물성 또는 정의를 나름대로 이렇다고 정해놓고 지내는 것이, 한편으로는 그 안에 사고를 가둬버리는 결과를 낳기도 하더라. 그래서 생각했다. 궁극의 어떠한 목적을 지향하고 나아갈 수는 있지만, 오직 그것만이 답이라고 정하지는 말자고. 그리고 어느 하나를 목적하는 삶은 결국 일상의 사소함을 유예시키고 보류해놓는 그럴듯한 핑곗거리가 되어주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염세적인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삶이기에 스스로 충실히 살아가는 것 이외에 일상 또는 인생이 애초에 던져주는 교훈 같은 거창함은 원래 없었다고 보는 게 맞겠다. 어떠한 거창함이 있을 것 같아서 아니면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열과 성을 다해 살아오다 문득 그것이 진짜 있기는 한 건가? 하는 질문에 당도했을 때의 어이없음과 허무함을 생각해본다면, 그저 주어진 작은 삶을 차곡차곡 살아나가며 쌓는 시간의 묵직함을 선택하는 편이 나에게는 편하다. 각양각색의 삶을 하나의 흐름으로 규정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기는 하나, 각자가 살면서 언젠가는 한 번씩은 생각해 봐야 할, 그리고 언젠가는 꼭 생각하게 되는 그런 문제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일상의 사소함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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