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따라 나주로 거처를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프랑스 제빵을 배우기 시작했다. 제빵을 배우는 곳은 서울, 결국 매주 토요일마다 나는 나주와 서울을 오가야 했고, 꼬박 1년을 그렇게 지냈다. 주말반은 하루 수업이 6시간인 데다가 하루 종일 실습실에서 서서 작업하는 통에 집에 가는 기차에서 매주 다리가 녹아내리는 것 같은 뻐근함을 느끼며 돌아왔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모두 대단하다고 했다. 그 일을 매주 한다는 것에. 그리고 나도 알고 있었다. 조금은 과하다는 걸. 학비를 비롯해서 교통비도 어마어마하게 들었고, 더욱이 내가 감내해야 하는 길 위에서의 시간이 너무도 길었다. 솔직히 너무 멀어 지치고, 날이 격하게 춥거나 더운 어느 날은 '과감하게 하루 빠질까'도 심각하게 고민했었지만, 결국 나는 또 나여서 개근을 찍었다.
왜 빵이어야 했는지, 그리고 왜 꼭 그 학교여야 했는지에 대한 이유에는 별다른 것이 없다. 빵을 좋아했고 자주 먹으며 늘 생각했다. 이걸 맛있게 먹기만 하는 것도 좋지만 만드는 법을 꼭 죽기 전에는 배워놓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줄리앤줄리아라는 영화에서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줄리아 차일드가 프랑스에서 다녔던 그 요리학교에 무척 다녀보고 싶었다는 것. 드라마틱한 어떠한 동기도 없다. 배우고 싶었고, 배운다면 그곳이었으면 했다가 전부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크로와상이 내 눈앞에서 만들어지던 그 날, 격하게 감동했고 속으로 수만 번 박수를 쳤다. 잘 왔다 잘 왔어.
빵을 배우기 전, 물과 밀가루 소금만으로 만들어지는 기가 막힌 바게트가 너무 신기했다. 프랑스에 잠시 머무르던 대학시절, 갓 나온 바게트에 뉴텔라만 찍어먹어도 단짠의 풍미가 손을 멈출 수 없게 했던 기억이 있어서 더욱 그랬는지 모른다. 그리고 다양한 프랑스의 빵들을 차곡차곡 배워가며 몸은 녹아내릴 만큼 힘들지만 얼굴은 웃고 있었다. 식힘망에 있는 빵을 확인한다는 핑계로 교실에서 복도로 잠시 나와 쭈그려 앉아 쉬면서도 그 냄새와 공기가 좋았다. 좋았으니 1년을 꾸준히 다녔고, 거의 매주 죽을상을 하고 투덜거렸지만 묵직한 빵이 든 가방만큼은 세상 소중했다.
주위 모든 것이 너무도 내 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전 같지 않았을 때, 빵은 어쩌면 내게 전혀 다른 희열을 맛보게 해 주면서 버티고 나아갈 힘을 주게 한 무엇일지도 모른다. 실습실에서 낯선 조리복을 입고 모자를 쓰면 나는 사회에 속한 내가 아니라 그저 빵을 배우러 온 학생일 뿐이었다. 그 사실이 너무나 홀가분했고,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휘몰아치는 수업을 따라가느라 이런저런 잡생각을 아예 할 수 없음이 참으로 행복했다. 몰입이라는 것이 주는 묘한 매력을 밀가루 반죽을 만지며 알았다.
만약에 다시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아마도 일을 시작하면 또 오게 될 상황은 분명하겠지만), 나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비슷한 선택을 할 것이다. 바빠서 시간 낼 수 없을 것 같지만, 그 작은 시간을 쪼개어 또 시간을 만들어 내고, 다리가 녹을 것 같지만 머리가 맑아지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다시 할 의향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어쩌면 한쪽으로 치우쳐 기울어져버릴지 모를 내 인생의 균형을 찾아주는 묘책일 수 도 있다고 생각한다. 업으로 하는 일과 결이 전혀 다른 무언가를 배우거나 몸소 하게 되는 것, 해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그 반전 매력을 알고 난 이상, 이제 거부하긴 힘들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