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희 Mar 18. 2021

잊고 싶은 일도 있다.

아픔이 있어야 사람은 성숙해질까?

"우리 이혼할까?"

우리 신랑한테 말은 걸었다. 

"왜?" 신랑이 대답한다.

"아픔이 있어야 멋진 글을 쓸 수 있는 것 같아."

신랑은 피식 웃는다.


내가 삼십 대 중반이었을 때다.

지금은 잊고 살고 있지만. 

사실 잊고 싶은 일이 있다.


어느 날 왼손이 절여서 병원에 갔었다. 목디스크라고 했다. 물리치료를 열심히 받았다. 집 근처 대학병원에서 가서 MRI도 찍었던 터라 그냥 그런 줄 알았다. 몇 달이 지나도 차도가 없었다. 병원을 옮겼다. 디스크 치료 전문병원으로 유명(?)한 서울에 있는 [우리들 병원]에 가서 다시 MRI 촬영을 했다. 다시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다. 병원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MRI를 다시 찍자고 하는 거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병원에서 실수를 해서 촬영이 잘 안되었나 생각했다. 알고 보니, 첫 번째 촬영에서 미심쩍은 게 있어서 자세히 촬영하기 위해 조영제(?)를 투약하고 재촬영하는 거였다. 나처럼 병원에는 결과는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나는 무기력하게 내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이름이 불려졌다. 신랑은 밖에서 기다리고 나 혼자 들어갔다.


의사는 나에게 촬영 사진을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목 뒤쪽 사진에는 흰색으로 된 부분이 보였다. 의사가 어떤 명칭으로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래서 수술은 가능한지 물어보았다. 의사는 목 부위는 신경세포가 많아서 수술은 힘들다고 했다. 

나는 물었다. 

"그럼 암인 건가요?"

"암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확률적으로 그렇게 보입니다."

암 선고...

"네 알겠습니다."

나는 일단 나왔다. 침착하려고 애를 썼다. 문 밖을 나오자마자 신랑 눈과 마주쳤다.

"나, 암 이래."

눈물이 앞을 가렸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날 나는 엄청 울었다. 태어나서 제일 많이 울었다. 

신랑과 나는 다시 서울아산병원과 서울 삼성병원 두 곳을 동시에 예약을 했다. 삼성병원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이곳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신경과 쪽으로도 진료를 받았다. 뭔가 특이하거나 애매한 케이스의 환자는 여러 진료과목의 의사들이 모여 회의도 한다고 한다. 이번에는 머리 전체 뇌 촬영 사진을 보여줬다. 흰색 점들이 뇌에서 보였다.

의사는 말한다.

"암은 아닙니다. 자가면역질환으로 보입니다."

"자가면역질환이라면.."

"나쁜 병균이나 세균이 우리 몸에 침입하면 우리 몸에서 그걸 공격하죠. 그런데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자신이 자신을 공격하는 겁니다. 특히 안 좋은 것은.. 뇌를 공격하면 이렇게 흰색 반점이 생깁니다."

"그럼 언제든 죽을 수 있겠네요?"

"병명이 뭐죠?"

"음... 다발성 경화증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현대의학으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병(?)을 다 치료할 수 없습니다. 모른 것들도 여전히 많습니다."

"그럼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솔직히, 자가면역질환은 치료제가 없는 병입니다."

"단지, 스테로이드계 약물처방을 할 뿐입니다."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내성을 키우기만 하지 치료제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완화나 지연 정도입니다."

"그래도 불안해서 약 처방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스트레스가 모든 병의 근원입니다."

"약 처방은 해드리겠습니다. 될 수 있으면 그 약에 의지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네"


처음 몇 달 동안은 힘들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이 병의 증상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힘들었다. 처음에는 현실 부정을 했다. 시간이 지나고 받아들였다. 아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시한부 판정을 받으면 이런 기분이구나. 영화나 소설책에서나 보는 건데. 왜 하필 나일까? 내가 살면서 무슨 죄라도 이었나. 죄랑은 상관이 없지. 생각은 현실을 벗어나 저만치 가기 일쑤였다.


처방받은 약을 올려놓고 많은 생각을 했다.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나는 결정했다. 약은 하나도 먹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이 병명에 매몰될수록 이 병이 나를 병들게 할 거란 걸 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잊기로 했다. 마음을 가볍게 하고 살기로 하고 현재에 집중했다. 그냥 맛있는 거 해 먹고, 산책하고, 책읽고 그렇게 살아냈다. 그랬었다. 


멋있은 글을 쓰기 위해서 아픔을 선택하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아픔이 있든 없든 

글은 그 사람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대학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어디까지여야 하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