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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꽃 피어나고 붕장어 헤엄친다

4.11 괴롬의 거리

by 강산





억새꽃이 피어나고 붕장어가 헤엄친다

4.11 괴롬의 거리





억새꽃이 피어나고 붕장어가 헤엄을 친다

여자도와 여자도 사이 붕장어다리가 꿈틀거린다

상여자도와 하여자도 사이로 붕장어가 지나간다

나는 반월마을 내리 부락 앞 노을정원에 앉아있다

나란히 세 개의 긴 벤치가 앉아서 수평선을 본다

여수의 수평선에는 섬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멀리 고흥반도의 팔영산도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섬들끼리 어깨동무를 하고 바람을 막아주고 있다


왼쪽의 벤치에 앉아서 괴롬의 거리를 생각한다

단풍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서 억새꽃을 본다

억새꽃처럼 부풀어 오르는 기억의 창고가 열린다


저 수평선 너머의 제주도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사삼의 바람이 다시 불어온다 김익렬 연대장 후임으로 온

박진경 대령을 암살한 문상길 중위를 생각한다


윤석열 대통령을 생각한다 트럼프 대통령을 생각한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를 다시 한번 생각한다

김건희 여사와 김혜경 여사를 다시 한번 생각한다

그리고 김혜경 여사와 너무나 닮은 그대를 생각한다


나를 오래도록 휘어 감는 태백산맥의 바람이 분다

선암사에서 태어났다는 조정래 작가를 생각한다

태안사에서 태어났다는 조태일 시인을 생각한다

체 게바라 평전을 다시 읽으며 나의 삶을 새롭게 설계한다








억새, 가을 종결자

한도훈


''이제 쌀랑해졌네이''

추석이 지나고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들어 억새꽃이 막 피어나고 있다. 억새꽃은 달빛 아래에서 보면 너무 희어서 마음이 아릴 정도다.

탐라의 억새밭은 산굼부리나 어음리, 새별오름, 용눈이오름, 따라비오름, 아끈다랑쉬오름, 백약이오름, 졸븐갑마장길, 노꼬메오름 등지에 있어 한방중에 알현하기 힘들다. 나넌 가을만 되면 이들 오름을 한바퀴 돈다. 어음리에 가면 바람개비, 풍력 발전기가 돌아 운치를 더한다. 새별오름은 억새가 푸른 시절, 고사리 따러 가기도 한다. 노꼬메오름은 한 달에 한 번쯤은 오른다. 용눈이오름은 한때 폐쇄했다가 지금은 개방해서 억새 보러 간다.

아끈다랑쉬 억새밭은 경이롭다. 이곳은 유명하지 않아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는다. 억새밭 한바퀴 돌면서 펼쳐진 풍경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한라 중산간 평지나 오름에선 어김없이 띠풀과 더불어 억새가 자란다. 올레길 바닷가에서 살랑이는 억새꽃을 만나면 분위기에 포옥 파묻혀 한나절을 지내기 일쑤다.


억새는 전국의 산이나 들판에 지천으로 있다. 워낙 뿌리며 잎이 억세서 이름도 억새다.

한때, 가을만 되면 전국 억새밭을 순례했다. 억새들, 억새평원, 억새바다를 찾아 가을의 의미를 새겼다.


억새가 많아 관광지가 된 철원 명성산, 이곳에서 억새축제가 열린다. 강원 정선에 있는 민둥산, 산 전체가 나무는 거의 없고 오로지 억새만이 있다. 여기는 소를 방목한 곳이었다. 소는 여린 억새를 좋아한다. 울산 간월재, 영남알프스의 억새 군락지로 유명하다. 알프스 산을 오르며 덤으로 억새밭을 구경했다. 길게 길게 이어진 탁 트인 능선을 따라 펼쳐진 억새가 장관을 이룬다. 보령 오성산, 서해안하고 가까워 바다 풍경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장흥 천관산, 억새 보러 한바퀴 돌면서 참 좋은 산이라고 생각했다. 여행 간 김에 장흥 여러 곳도 돌았다. 경남 합천 황매산, 이곳은 철쭉으로 유명하다. 철축 보러 두 번이나 갔다. 더불어 억새평원은 크기가 축구장 60개 정도 된다. 경남 양산 천성산, 화엄벌 억새이다. 25만 평의 화엄벌에선 매년 이맘 때면 은빛 억새의 군무가 펼쳐진다. 경남 거창 감악산, 바람개비 돌아가는 풍력발전단지와 함께 억새 풍경을 즐길 수 있는 명소이다. 광주 무등산, 이곳 중봉에서 군생활을 한 거라 추억 새기며 걸었던 기억이 있다. 군생활 때는 무등산 둘레길 돌면서 억새가 많구나 정도 느꼈었다. 장불재나 중머리재를 중심으로 넓게 펼쳐진 억새밭이 장관이다. 서울 마포 하늘공원, 난지도 쓰레기 매립지였던 곳이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이곳 억새는 제주도에서 옮겨온 거라 억새밭에 꽃 피는 야고 찾아 여러 번 갔다. 이곳에서 우리집 아이를 잃어버려서 울며 찾다가 주차장에 오니, 거기에 다섯 살 아이가 있었다. 억새 축제가 열리고 사람들이 즐겨찾는 명소가 되었다.


억새는 참억새, 물억새, 장억새, 억새아재비 등이 있다. 이 억새는 전국에서 수 많은 다른 이름으로 불리워졌다. 그만큼 우리민족과 친숙하고 없어서는 안 될 풀이었다. 저마다 소 키우는 집에선 망태 가득 여린 억새를 베어오곤 했다.

강원도에선 새풀, 새갱이, 새초, 새굉이, 새추라 했다. 경기도에선 으악새, 꺽새, 꺽새풀, 윽새라 했다. 으악새 슬피 우는 노래는 이 억새를 가리킨다. 슬피 운다 해서 새가 아닌가 여기기도 했다. 충청남도에선 웍새, 충청북도에선 새갱이, 새굉이, 왕사때기, 왕새갱이, 왕새깽이, 윽새라 했다. 경상남도에선 쌔빗대, 쌧대, 꺽새, 쌔기, 어신풀, 새배기, 어북새, 새피기, 항시비기, 새띠기, 항새피기, 미득새, 왕새, 황새핑이, 샛대, 새때기, 새비기, 새빗대, 새피, 쇄, 쏙새! 항새풀라 했다. 제일 많은 억새 말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소중했다 할까. 억새가 여러 고장마다 정겨운 말들로 변화한 거다. 항새피기로 시 한편을 썼다. 경상북도에선 쌔강, 속새, 어벅새, 새갱이, 새강, 꺽새풀, 새꾕이라 했다. 전라남도에선 꺽새, 어쌀, 억달, 억살, 옥살대, 웍살이라 했다. 전라북도에선 억나리, 새때기, 쐐기, 악새, 억쇄, 웍다리, 웍억이라 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탐라에선 어욱, 어웍, 어욱새, 어워기라 했다.


억새는 참으로 긴 세월 동안 민초들과 함께 했다. 탐라에선 소먹이 풀로 띠풀과 더불어 양대산맥을 형성했다.

아기장수 우투리가 태어날 때 탯줄을 자른 것도 억새잎이다. 우투리가 병사들 길러 악의 무리들 전부 물리쳤어야 했는디...


탐라엔 햇볕에 반짝이는 바다와 돌담길, 그리고 사람보다 먼저 길을 아는 억새들이 지천이다. 탐라 처음 방문했을 때 들른 산굼부리 능선 따라 흐드러지게 피어오른 억새, 장관이었다. 한나절 억새와 함께 있었다. 그때 분화구라는 걸 처음 보았다.


억새는 주로 산에, 들에 산다. 백성들 삶터, 높은 데서 낮은 것들을 내려다보며 살지만,

자신을 뽐내거나 자랑하지 않는다. 아니, 산까지 올라온 소떼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렇게 잘려져도 결국 무성하게 잎이 자라 하얀 꽃을 피워낸다. 이 은빛 꽃을 피우는 것도 자기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태양을 따라 나아가는 어떤 끈질긴 생의 몸짓일 뿐이다. 저녁노을에 물든 억새밭이라니...


사람들은 억새와 갈대를 자주 헷갈려 한다. 겉모습이 비슷해 보이지만 억새는 마디 없는 줄기를, 갈대는 속이 빈 허공을 품고 있다. 꽃색깔도 다르다. 억새는 은색, 갈대는 갈색.

억새는 들판과 산에, 갈대는 주로 물가에 산다. 물을 정화해주는 기능은 갈대가 으뜸이다. 한 뼘의 토양에도 뿌리를 내리는 억새와, 한 줌의 물기에도 피어나는 갈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가을 풍경을 완성한다.


탐라에선 오랜 세월 동안 들판의 억새를 태우는 의식을 행해왔다. 동네로 몰려드는 액을 막는 방애, 농사를 망치는 해충들을 태우기 위함이었다. 그걸 축제로 행해진 건 1992년부터 였다. 납읍, 조천에서 행하다 내 사는 봉성리 새별오름에서 들불축제를 한 것은 2000년 부터였다. 삼월초, 새별오름 전체를 태우는 장엄한 축제를 즐기기 위해 많은 이들이 몰려 들었다.

그러다 작년부터 산불 날 위험이 높다 해서 불은 놓지 앓고 다른 형태의 들불축제를 열고 있다. 쬐깐 아쉽기는 하다.

어릴 때 논둑에 불 놓다 산불이 일어난 걸 보았던 기억이 있다. 아주 신나게 쥐불놀이를 즐겼던 기억도 새롭다.

간월재 억새가 전하는 말

한도훈


영남 알프스 간월재 억새꽃 보러 가는 길에

가을 꽃향유는 보랏빛 침묵으로

산에 사는 네발나비들 불러모으고

그 옆에 시립해 있는 쑥부쟁이 요령 소리가 드높다

간월재에 올라서니 컵라면 사려는 긴 줄

자전거로 올라온 이들이 연신 화이팅 외치고

엄마손 잡고 올라온 아이가 억새꽃 하나 꺾자

그 꽃 꺾으면 안 된데이

생애 최초로 아이는 억새꽃 손에 들고 룰루랄라 하려다가

땅바닥에 내팽개치며 울고

아이 왜 울립니꺼

꽃 꺾지 말라 했을 뿐인데 우네요

간월재 곳곳에선 억새밭에 들어가지 마라 실랭이가 반복되고

간월재 억새가 전하는 말은

이게 아닐텐데

옛적 화전민들이 동짓달에 불 질러

사방 팔십리 불바다 만든 뒤에 일군 산밭

그 비탈에 억새 씨앗 날라와 싹트고

뿌리 내려 거대한 억새밭을 이룬 역사

울산 소금, 언양 면포, 강동 건어물, 밀양 개다리 소반, 서생 미역 등 장사꾼들, 배내골 목기꾼, 달천 쇠부리꾼이 넘나들던 간월재

간월산 늑대나 신불산 호랑이가 서로 맞바라보며

수 만년을 살아온 것일 뿐

억새꽃 보러 올라온 사람반, 억새반 사이에서

크게 한 번 웃어야

속 빈 강정같은 번뇌가 사라질텐데...


용눈이 오름

한도훈


용이 누워본 적 없는 오름이야 다 인간들이 지어낸 이름이지 이름이 있으매 사람들이 즐겨찾는 곳이 되었어 지금은 용눈 분화구 가득 햇살에 반짝이는 억새뿐이야 어디가서 용눈을 찾을까 한밤중 눈 버얼겋게 뜨고 용이 일어나는지 발딱 선 채 세상 굽어보다가 휘잉 탐라 한바퀴 돌고 오는지 수 틀리면 태풍 속에 숨어서 한바탕 분노를 쏟아붓고는 돌아와 잠드는지 그냥 수 천년 잠만 자고 있는지 지금은 일어날 때가 되었는데, 낮잠 자고 있는지 사람들은 줄기차게 용의 허리를 밟고 오를 뿐 허리 아파 몸도 못 가누는지 한번쯤 억새 털고 날아올라야 진짜 용눈이라고 부르지 이렇게 다그치는 인간들 많아 일일이 그 호기심 채워줄 필요는 없지만... 한밤중에 찾아와 봐 어떻게 변신하는지 알게 될 걸 달빛 받아 은빛으로 빛나는 백룡의 눈을 바라봐 억새꽃에 매달린 새벽이슬을 오물락오물락 먹는 모습을 보면 그 자리에서 얼어붙을 걸 억새 앞에서 미친듯이 춤춰 봐 그 모습 보고 맴이 쬐깐 꿈틀댈지 모르니께 용눈이, 비밀을 많이 간직하고 있지 아침해 떠오를 때 보면 꽤나 신비로울 걸 그 신비를 맘껏 느껴봐 진짜 용의 눈이 그대 몸 속으로 스며들 테니까


항새피기

한도훈


아노미가 오려고 해 입 딱 벌리고 하는 거짓말에 짓이겨 졌어 세상이 확 뒤집어졌다가 뭉그러졌다가 꼬꾸라졌다가 게거품 흘리다가 사라져 가지 저 많은 꽃들 피워낸 항새피기 가족들이 난 좋아 인간은 우주 향해 롤러코스터 타고 있다지 중간에 내릴 수 없는 징글징글한 어지러움을 즐기고 있는지 겨우 찬바람 몇 점 찾아오니 정신이 번쩍 들기는 해 그래서 일제히 가족들 꼬드겨 꽃대를 올렸지 사람들은 항새피기가 꽃을 피는 건지 열매가 열리기는 한 건지 무심하지 그저 바람에 날리는 풍경만 즐길뿐 산비탈이나 비랑이나 가리지 않고 꽃 피워내는 억센 힘을 모르지 세상 어떤 힘 보다도 우리 힘이 세지 그 힘을 어쩌지 못해 하얗게 멍들어 가는 게지 우리에게도 슬픔은 있어 가을이 워낙 짧아 후딱 지나가 버린다는 거야 그런 다음 겨울이 오면 허리 부러지고 산비알에 쓰러질 채비를 마치는 거지 그게 우리네 삶이야 바람결에 우리 자식들 멀리멀리 보낸 게 자랑이라면 자랑 늘 새로운 영토를 만들어가는 그 재미가 쏠쏠해 시대 거슬러 올라 삿갓 쓴 사내가 항공모함 신발을 신고 자줏빛 수염 휘날리며 호랭이 타고 느릿느릿 지나가면 좋겠다


#항새피기는 경상도 억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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