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어도공화국 꿈삶글 0038
그 뒤에는 사람들의 기다란 행렬이/뒤따라왔는데, 죽음이 그토록 많이/쓰러뜨렸는지 나는 믿을 수 없었다//나는 그중에서 몇몇을 알아보았는데,/비열함 때문에 커다란 거부를 했던/사람의 그림자를 보았고 알아보았다//나는 곧바로 분명히 깨달았다, 그들은/하느님도 싫어하시고 하느님의 적들도/싫어하는 사악한 자들의 무리라는 것을//제대로 살아 본 적이 없는 그 비열한/자들은 벌거벗은 채, 거기 있는 말벌과/왕파리들에게 무척이나 찔리고 있었다//그것들에 질린 얼굴에는 눈물과 피가/뒤섞여 흘러내렸고, 다리에서는 역겨운/벌레들이 그것을 빨아 먹고 있었다// ― 단테의『신곡(神曲)』28
「비둘기」//안아 보고 싶게 귀여운/산비둘기 일곱 마리/하늘 끝까지 보일 듯이 맑은 주일날 아침에/벼를 거두어 뺀뺀한 논에서/앞을 다투어 요를 주으며/어려운 이야기를 주고 받으오//날씬한 두 나래로 조용한 공기를 흔들어/두 마리가 나오/집에 새끼 생각이 나는 모양이오// _ (1936.2.10, 윤동주 19세)/15. 비둘기(시) _ 1집, 중판, 삼판// ―『윤동주』15
제11장//서른 개 바퀴살이 한 군데로 모여 바퀴통을 만드는데/[그 가운데] 아무것도 없음(無) 때문에/수레의 쓸모가 생겨납니다//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데/[그 가운데] 아무것도 없음 때문에/그릇의 쓸모가 생겨납니다//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드는데/[그 가운데] 아무것도 없음 때문에/방의 쓸모가 생겨납니다//그러므로 있음은 이로움을 위한 것이지만/없음은 쓸모가 생겨나게 하는 것입니다// _ (제11장 아무것도 없음 때문에 - 없음의 쓸모 ―『도덕경(道德經)』11
「시간의 어머니」//그녀는 아무 이름이 없었다/시간은 아직 아기가 아니었다/그녀의 품 안에서/무수한 '이전'이 자고 있었다//빛이 태어나기 전/그녀는 그림자를 품었다/어둠의 뼈로 세계를 세웠다//세월은 흐르지 않았다/그저 안으로 깊어졌다//그녀의 숨은 느렸다/그러나 그 느림이/우주의 맥박이 되었다//모든 순간은/그녀의 젖에서 자랐다// _ (『숨의 연대기』제1부 - 빛이 오기 전(창조의 어둠) 7 「시간의 어머니」) ―『청람 김왕식』8
「길이 있는 풍경」//나는 밭 가운데 너뷔바위에 앉아 있었다/아침 시선은/고춧대 하나에 꽂혀 있었다/외톨이처럼/뽕나무 가지 버팀목이 없었다//참새/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고춧대가 휘청거렸다/또 한 마리가 날아왔다/고춧대가 드디어 꼬꾸라졌다//새는 약속처럼/한꺼번에 떠났다/고추나무는/끝끝내 일어서지 못했다//그러한 밭에서 걸어 나온 길로/살벌한 평화처럼/젖은 여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밤하늘은 반란이다」//고향의 밤 별들이 싸운다 밤하늘은/반란이다 바람이 분다 쓰러진다 다시/넘어진다 별은 쌈질하는 입이다 주점/젊은 여자의 열린 자궁 속이다 길들이/제 골목을 찾아 들어가도 동네는 앞으로도/시끄럽다 물소리도 밤하늘을 쥐어뜯으며/이어져 흐른다 그래도 사랑하는 고향 우리 집은/골목 끝으로 몰렸다 동네의 개들은 무리 지어/일제히 짖어댔다 끝에 매달린 우리는 건너로/이어지는 길을 보았다 바람에 쓰러진 곡식들이/줄기로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솟아올랐다/태풍의 눈이 다시 무섭게 쏘아보았다 우리들의/다리가 녹아내리고 있었다 포식한 어둠은/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악을 썼다 몽둥이질/낫을 들고 휘둘렀고 쇠스랑으로 후려/갈겼다 검은 까마귀는 떼로 몰려와 무덤을/만들었다 무덤 속에도 하늘이 있었다 떠가는/흰 구름 변두리에 걸린 빛의 폐곡선에/갈라진 고향의 고샅길들이 감기고 있었다 그/하늘 속에는 메마른 공동우물이/파헤쳐져 있고 동네 사람들은 거꾸로 매달려,// _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우리들의 고향」) ―『배진성』4
『도덕경(道德經)』은 『도경(道經)』과 『덕경(德經)』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도덕경(道德經)』을 읽고 나는 『시경(詩經)』을 읽는다 『장자(詩經)』와 함께 『시경(詩經)』을 읽는다 그리고 나는 시를 쓰지 않고『꿈삶글』을 쓴다
세상에는 참나무 같은 사람이 있다 소나무 같은 사람이 있다 참나무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함께 살기를 꿈꾸는 나무다 그에 비하여 소나무는 독립심이 강한 나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참나무는 독이 없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어서 온갖 생명을 키우는 나무이다 그에 비하여 소나무는 독이 있는 나무다 한 마디로 독한 나무다 소나무 잎에는 다른 식물을 죽이는 독이 들어있다 그래서 소나무 주위에는 다른 식물들이 잘 자라지 못한다 하지만 참나무는 잎 뿐만 아니라 열매며 나무 자체에도 독이 없다 그래서 참나무는 다람쥐 뿐만 아니라 온갖 생명을 키우는 자연의 밥상이다 그리하여 소나무 숲보다 참나무 숲이 더욱 건강하고 더욱 풍요롭다
대부분의 숲이 참나무인 산이 있다 정읍에 있는 종석산이 그렇다 그래서 종석산은 우리나라 약초꾼들이 가장 좋아하는 산이다 그 아름다운 종석산에서 산양삼을 비롯한 여러 약초 농사를 짓는 친구가 어렵다고 하여 내가 종석산 일부를 인수하기로 하였다 종석산 중에서 전망이 가장 좋다는 아름다운 땅을 인수 받기로 하였다 나는 그 아름다운 곳에 무료 쉼터를 만들 예정이었다 잠시 소풍 나온 이 세상에서 떠나기 전에 나도 이 세상에 참나무 한 그루 심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였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 아름다운 공간 하나 만들어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떠나고 싶었다
앞으로 더욱 확장할 계획이지만 우선은 약 1만 1천평의 땅에 아름다운 사람들의 공동 약초밭을 만들고 감나무와 밤나무도 심고 그 종석산에서 나오는 참나무와 황토로 황토방을 만들어 무료 쉼터를 만들어볼 예정이었다 그 종석산에서 나오는 자재로 집을 지을 수 있으니 건축비 또한 그렇게 많이 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이미 두 채의 황토집을 지은 친구가 있으니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시작이니만큼 서둘지 않고 천천히 꿈의 동지들과 함께 아름다운 유토피아를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내가 꿈꾸던 이어도공화국이 이제야 비로소 주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듯 하였다
나는 이제 겨우 꿈의 동지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꿈의 동반자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내가 잘 아는 아주 좋은 친구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정읍의 종석산, 그곳에 아름다운 명상센터와 의미 있는 무료쉼터를 함께 만들기로 하였었다 그리고 나중에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남기지 않고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들의 유토피아를 남기기로 합의를 하였었다 앞으로 더욱 의미 있는 곳으로 만들 수 있을 가장 적당한 후계자들에게 공동으로 넘겨주기로 하였었다
내가 꿈꾸는 이어도공화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산이나 아름다운 섬이 필요한데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우선 작은 밭과 작은 논을 구입해서 숲으로 만들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숲을 밭이나 논으로 개간을 하는데, 나는 거꾸로 비싼 밭을 사서 아름다운 숲으로 만들고 있었다 나중에 숲이나 섬을 구하면 이어도공화국을 만들 수 있도록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본격적인 이어도공화국이 아니라 이어도공화국 베이스캠프를 만들고 있었다
물론, 종석산 땅도 내 꿈을 실현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작다 하지만 우선 작은 것부터 시작하기로 하였다 우선은 1만 1천 평으로 시작하여 주위의 산들을 기회가 되면 추가 매입을 할 생각이었다 또한 또 다른 꿈의 동지들을 만날 수 있다면 정읍 뿐만 아니라 곡성의 반월산 등 전국 어디라도 함께 추진할 생각이었다 내가 꿈꾸는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기에 나는 쉬지 않고 꾸준히 확산시킬 예정이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좋은 씨앗 하나 남길 수 있기를 오늘도 꿈꾸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하여 나는 우선 작은 산을 구해 교육을 받고 임업후계자가 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나는 이제 이틀 후면 환갑이다 환갑이면 욕심을 버려야만 한다 『도덕경(道德經)』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채우기 보다는 비우는데 더욱 중점을 두어야만 할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나를 조금씩 비우기 시작한다
https://youtu.be/g2THONAB4KM?si=88yxXm4ztp3n7cdV
* 표준국어사전에는 『도덕경(道德經)』과『시경(詩經)』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도덕경(道德經)』1. 책명 중국의 도가서. 춘추 시대 말기에 노자가 난세를 피하여 함곡관에 이르렀을 때 윤희(尹喜)가 도를 묻는 데에 대한 대답으로 적어 준 책이라 전하나, 실제로는 전국 시대 도가의 언설을 모아 한(漢)나라 초기에 편찬한 것으로 추측된다. 내용은 우주 간에 존재하는 일종의 이법(理法)을 도(道)라 하며, 무위(無爲)의 치(治), 무위의 처세훈(處世訓)을 서술하였다.
『시경(詩經)』1. 책명 유학 오경(五經)의 하나. 중국 최고(最古)의 시집으로 공자가 편찬하였다고 전하여지나 미상이다. 주나라 초부터 춘추 시대까지의 시 311편을 풍(風)ㆍ아(雅)ㆍ송(頌)의 세 부문으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오늘날 전하는 것은 305편이며 한나라 모형(毛亨)이 전하였다고 하여 ‘모시(毛詩)’라고도 한다.
―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나는 밭 가운데 너뷔바위에 앉아 있었다
아침 시선은
고춧대 하나에 꽂혀 있었다
외톨이처럼
뽕나무 가지 버팀목이 없었다
참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고춧대가 휘청거렸다
또 한 마리가 날아왔다
고춧대가 드디어 꼬꾸라졌다
새는 약속처럼
한꺼번에 떠났다
고추나무는
끝끝내 일어서지 못했다
그러한 밭에서 걸어 나온 길로
살벌한 평화처럼
젖은 여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고향의 밤 별들이 싸운다 밤하늘은
반란이다 바람이 분다 쓰러진다 다시
넘어진다 별은 쌈질하는 입이다 주점
젊은 여자의 열린 자궁 속이다 길들이
제 골목을 찾아 들어가도 동네는 앞으로도
시끄럽다 물소리도 밤하늘을 쥐어뜯으며
이어져 흐른다 그래도 사랑하는 고향 우리 집은
골목 끝으로 몰렸다 동네의 개들은 무리 지어
일제히 짖어댔다 끝에 매달린 우리는 건너로
이어지는 길을 보았다 바람에 쓰러진 곡식들이
줄기로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솟아올랐다
태풍의 눈이 다시 무섭게 쏘아보았다 우리들의
다리가 녹아내리고 있었다 포식한 어둠은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악을 썼다 몽둥이질
낫을 들고 휘둘렀고 쇠스랑으로 후려
갈겼다 검은 까마귀는 떼로 몰려와 무덤을
만들었다 무덤 속에도 하늘이 있었다 떠가는
흰 구름 변두리에 걸린 빛의 폐곡선에
갈라진 고향의 고샅길들이 감기고 있었다 그
하늘 속에는 메마른 공동우물이
파헤쳐져 있고 동네 사람들은 거꾸로 매달려,
안아 보고 싶게 귀여운
산비둘기 일곱 마리
하늘 끝까지 보일 듯이 맑은 주일날 아침에
벼를 거두어 뺀뺀한 논에서
앞을 다투어 요를 주으며
어려운 이야기를 주고 받으오.
날씬한 두 나래로 조용한 공기를 흔들어
두 마리가 나오.
집에 새끼 생각이 나는 모양이오.
_ (1936.2.10, 윤동주 20세)
15. 비둘기(시) _ 1집, 중판, 삼판
https://youtu.be/oJCtAlqCBP4?si=RSiN0oNs0OmP9Xkf
1936년 2월 10일에 창작한 예사높임말인 '하오체'가 신선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시인은 산비둘기 일곱 마리의 모습을 담담하고 평범하게 묘사하였는데, 새끼를 위해 창공을 가르는 어미새와 아비새로 보이는 두 비둘기의 모습은 윤동주의 <오줌싸개 지도>나 <창구멍>과 같은 작품들에서 표출된 가족애를 떠올리게 한다.
비둘기는 윤동주가 자주 다루는 시적 대상이다. 비둘기가 등장하는 시들로는 <별 헤는 밤>과 <사랑스런 추억>이 있다.
흔히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새로 유명하다. 오늘날에도 전쟁은 끊이지 않는다. 전쟁은 공멸의 지름길이다. 인간들의 헛된 욕망, 특히 권력욕에 눈이 먼 일부 권력자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전쟁은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써서라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미치광이들이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그런 권력자들은 반드시 몰아내어 우리들의 소중한 평화를 지켜야만 한다.
요즘에는 비둘기도 시끄러운 새로 인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평화는 평화를 잃었을 때 비로소 평화의 소중함을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만 할까. 평화와 순결의 상징 비둘기, 현실적으로 어둡고 답답한 환경과 심정을 비둘기에 빗대어 카타르시스 하고픈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상상의 자유를 위해서도 날개를 펼쳐야만 한다. 사람에겐 그런 날개가 없다. 새의 날개를 빌려서라도 날고 싶었을 것이다. 잠재의식의 간접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새의 날개를 빌려서라도 날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라. 새의 날갯짓은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새들은 오늘도 생존을 위하여 날아야만 한다. 새들은 자유롭게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먹이를 구하기 위해 오늘도 힘찬 날갯짓의 노동을 해야만 한다. 새의 날갯짓은 결코 한가로운 춤사위가 아니라 오늘도 살아남기 위하여 날개가 부서지도록 바람 속을 날아야만 한다. 또한 집에서 간절히 기다리는 새끼들을 돌보기 위해서라도 지친 날개를 펼쳐, 있는 힘을 다하여 하늘 속으로 몸을 던져야만 한다. 날개가 부서지도록 흔들지 않으면 나와 가족들의 안위를 보살필 수 없는 새들의 운명에 대하여 생각을 한다. 그리고 새들과 인간들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하여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만 할까. 좀 더 깊이 생각하는 밤이다.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새들과 인간들이 있다.
* 오늘의 메모 : 전쟁
전쟁은 잠든 악마를 깨우는 일이다
악마와 손잡고
평화를 지배하려는
헛된 욕망의 권력자의 발길질이다
하지만
한 번 깨어난 전쟁의 악마는
손 잡은 권력자까지 다 잡아먹어야
비로소 다시 잠에 드는 폭식 가이다
- '공일날'은 '일을 하지 않고 쉬는 날'을 말한다.
- '빤빤한'은 '남은 것이 없이 말끔한 모습'을 뜻한다.
- '요를 주으며'의 '요'는 '모이'의 함북 방언이다.
- '나래'는 윤동주의 <남쪽 하늘>이나 <종달새> 같은 다른 시들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시어로, '날개'를 뜻한다.
https://youtu.be/5tzWq-FvjHU?si=HTmdhl3k-5WfS6Bs
금요일에 이전 등기를 하였다
전망이 아주 좋은 정읍 종석산에
이어도공화국 무료 쉼터가
< 정읍 종석산 무료 쉼터 >
들어 설 예정이다
많은 응원 바란다
아직은 허술하지만
섬진강 옥정호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 하우스는 이미 완성이 되었다
세상에는 참나무 같은 사람이 있다. 소나무 같은 사람이 있다. 참나무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함께 살기를 꿈꾸는 나무다. 그에 비하여 소나무는 독립심이 강한 나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참나무는 독이 없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어서 온갖 생명을 키우는 나무이다. 그에 비하여 소나무는 독이 있는 나무다. 한 마디로 독한 나무다. 소나무 잎에는 다른 식물을 죽이는 독이 들어있다. 그래서 소나무 주위에는 다른 식물들이 잘 자라지 못한다. 하지만 참나무는 잎 뿐만 아니라 열매며 나무 자체에도 독이 없다. 그래서 참나무는 다람쥐 뿐만 아니라 온갖 생명을 키우는 자연의 밥상이다. 그리하여 소나무 숲보다 참나무 숲이 더욱 건강하고 더욱 풍요롭다.
대부분의 숲이 참나무인 산이 있다. 정읍에 있는 종석산이 그렇다. 그래서 종석산은 우리나라 약초꾼들이 가장 좋아하는 산이다. 그 아름다운 종석산에서 산양삼을 비롯한 여러 약초 농사를 짓는 친구가 어렵다고 하여 내가 종석산 일부를 인수하였다. 종석산 중에서 전망이 가장 좋다는 아름다운 땅을 인수 받았다. 나는 그 아름다운 곳에 무료 쉼터를 만들 예정이다. 잠시 소풍 나온 이 세상에서 떠나기 전에 나도 이 세상에 참나무 한 그루 심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 아름다운 공간 하나 만들어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떠나고 싶은 것이다.
앞으로 더욱 확장할 계획이지만 우선은 약 1만 1천평의 땅에 아름다운 사람들의 공동 약초밭을 만들고 감나무와 밤나무도 심고 그 종석산에서 나오는 참나무와 황토로 황토방을 만들어 무료 쉼터를 만들어볼 예정이다. 그 종석산에서 나오는 자재로 집을 지을 수 있으니 건축비 또한 그렇게 많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곳에서 이미 두 채의 황토집을 지은 친구가 있으니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제 시작이니만큼 서둘지 않고 천천히 꿈의 동지들과 함께 아름다운 유토피아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내가 꿈꾸던 이어도공화국이 이제야 비로소 주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듯 하다.
나는 이제 겨우 꿈의 동지를 만났다. 꿈의 동반자를 만났다. 내가 잘 아는 아주 좋은 친구를 만났다. 정읍의 종석산, 그곳에 아름다운 명상센터와 의미 있는 무료쉼터를 함께 만들기로 하였다. 그리고 나중에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남기지 않고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들의 유토피아를 남기기로 합의 하였다. 앞으로 더욱 의미 있는 곳으로 만들 수 있을 가장 적당한 후계자들에게 공동으로 넘겨주기로 하였다.
나는 30년 전에 이어도공화국 헌법을 만들었다. 내가 꿈꾸는 이어도공화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산이나 아름다운 섬이 필요한데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우선 작은 밭과 작은 논을 구입해서 숲으로 만들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숲을 밭이나 논으로 개간을 하는데 나는 거꾸로 비싼 밭을 사서 아름다운 숲으로 만들고 있었다. 나중에 숲이나 섬을 구하면 이어도공화국을 만들 수 있도록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본격적인 이어도공화국이 아니라 이어도공화국 베이스캠프를 만들고 있었다.
물론 이번에 함께 만들기로 한 종석산 땅도 내 꿈을 실현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작다. 하지만 우선 작은 것부터 시작하기로 하였다. 우선은 1만 1천 평으로 시작하여 주위의 산들을 기회가 되면 추가 매입을 할 생각이다. 또한 또 다른 꿈의 동지들을 만날 수 있다면 정읍 뿐만 아니라 곡성의 반월산 등 전국 어디라도 함께 추진할 생각이다. 내가 꿈꾸는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기에 나는 쉬지 않고 꾸준히 확산시킬 예정이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좋은 씨앗 하나 남길 수 있기를 오늘도 꿈꾸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정읍사의 고향 정읍을 생각하니
나는 어쩌면
정읍사 여인의 지아비가 아닐까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나는 너무 오래 시장에서 살았구나
너무나 오랫동안 장사에만 몰두하였구나
이제는 지어미가 기다리고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하겠구나
달아 높이곰 도다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밝혀다오
어긔야 어강도리 아으 다롱디리
*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를 드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 졈그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04] 윤동주의 "투르게네프의 언덕" | 코리아아트뉴스
이승하 시인
입력 2025.12.29 06:28
수정 2025.12.29 08:23
윤동주
나는 고갯길을 넘고 있었다…… 그때 세 소년 거지가 나를 지나쳤다.
첫째 아이는 잔등에 바구니를 둘러메고, 바구니 속에는 사이다병, 간스매통, 헌 양말짝 등 폐물이 가득하였다.
둘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셋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텁수룩한 머리털, 시커먼 얼굴에 눈물 고인 충혈된 눈, 색 잃어 푸르스름한 입술, 너덜너덜한 남루(襤樓), 찢겨진 맨발,
아― 얼마나 무서운 가난이 이 어린 소년들을 삼키었느냐!
나는 측은한 마음이 움직이었다.
나는 호주머니를 뒤지었다. 두툼한 지갑, 시계, 손수건…… 있을 것은 죄다 있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것들을 내줄 용기는 없었다. 손으로 만지작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다정스레 이야기나 하리라 하고 “얘들아” 불러보았다.
첫째 아이가 충혈된 눈으로 흘끔 돌아다볼 뿐이었다.
둘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셋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그러고는 너는 상관없다는 듯이 자기네끼리 소곤소곤 이야기하면서 고개로 넘어갔다.
언덕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짙어가는 황혼이 밀려들 뿐―
―1939.9.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정음사, 1955)
윤동주 시인
[해설]
1948년 1월 30일에 간행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에는 이 시가 실려 있지 않고 1955년에 나온 증보판에 실려 있다.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세계문학사 전개 과정에서 산문시와 이야기시를 정착시킨 투르게네프의 산문시 「거지」를 모티프로 하여 이 시를 썼다. 민음사 간 세계시인선 제43권은 제목이 아예 『투르게네프 산문시』이다.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과 교수를 역임한 김학수는 이렇게 번역하였다.
거지
거리를 걷고 있노라니…… 늙어빠진 거지 하나가 나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눈물 어린 충혈된 눈, 파리한 입술, 다 해진 누더기옷, 더러운 상처…… 오오, 가난은 어쩌면 이다지도 처참히 이 불행한 인간을 갉아먹는 것일까!
그는 빨갛게 부푼 더러운 손을 나에게 내밀었다…… 그는 신음하듯 중얼거리듯 동냥을 청한다.
나는 호주머니란 호주머니를 모조리 뒤지기 시작했다…… 지갑도 없다, 시계도 없다, 손수건마저 없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거지는 기다리고 있다…… 나에게 내민 그 손은 힘없이 흔들리며 떨리고 있다.
당황한 나머지 어쩔 줄을 몰라, 나는 힘없이 떨고 있는 그 더러운 손을 덥석 움켜잡았다…….
“용서하시오, 형제, 아무것도 가진 게 없구려.”
거지는 충혈된 두 눈으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파리한 두 입술에 가느다란 미소가 스쳤다―그리고 그는 자기대로 나의 싸늘한 손가락을 꼭 잡아주었다.
“괜찮습니다, 형제여” 하고 그는 속삭였다.
“그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것도 역시 적선이니까요".
나는 깨달았다―나도 이 형제에게서 적선을 받았다는 것을.
―1878.2.
―김학수 역, 『투르게네프 산문시』(민음사, 1997)
두 시 사이에는 60년의 시간적 거리가 있는데 윤동주는 본인의 시가 투르게네프의 영향을 받아서 쓴 것임을 제목에서부터 분명히 밝히고 있다. 투르게네프가 휴머니즘에 입각해 쓴 이 시는 윤동주에게 영향을 주어 「투르게네프의 언덕」이라는 일종의 패러디(parody) 시를 쓰게 한다. 일본어 ‘간스메’는 ‘통조림’이다.
투르게네프의 시에서는 시적 화자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음에도 자비를 실천하였다. 거지의 더러운 손을 덥석 움켜잡았고, 거지는 그 행위에 감격해 한다. 거지는 이미 적선을 받은 것이라고 고마워하였고 화자도 거지(형제)한테서 적선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악수가 두 사람 모두에게 정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투르게네프의 이 시를 잘 알고 있는 윤동주는 세 거지 소년이 불쌍해 “얘들아” 하고 불러보지만 아이들은 충혈된 눈으로 흘끔 돌아보았을 뿐 금방 헤어진다. 윤동주는 대화도 제대로 못 나눠본 사실을 몹시 안타까워한다. 세 아이와 화자 간에는 어떤 교류도 교감도 이뤄지지 않은 채 헤어지고 만다. 후회와 반성이 몰려오지만 이미 헤어진 뒤다. 이숭원 평론가는 『동주 시, 백 편』(태학사)에서 이 시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아이들은 무서운 가난에 휩싸여 있었고 온갖 폐물만 짊어지고 있다. 거기에 비해 화자인 나는 두툼한 지갑에 시계까지 있을 것은 죄다 가지고 있다. 소유물의 있고 없음의 차이가 그들과 나를 커다란 거리감으로 갈라놓은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물건을 내줄 용기도 갖지 못한다. 값싼 동정이 그들에게 굴욕감이나 거부감을 갖게 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 그들과 내가 손을 잡고 동질성을 느끼기에는 나의 처지가 지나치게 넉넉하다. 이러한 자신의 생활 양태를 몰각하고 약자에 대한 연민과 동정을 갖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자문하고 있다.”
윤동주는 학업을 닦는 내내 자신이 아르바이트나 가정교사를 하면서 돈을 벌었다고 밝힌 바 없다. 일본 유학 시절에 쓴 「쉽게 씌어진 시」에는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같은 구절이 보이는데, 부모님께 줄곧 학비와 생활비를 타 쓰는 것에 대해 송구스러워했다. 게다가 동포가 징병과 징용으로 끌려가 많이 죽거나 다치고 있는데 학생 신분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으니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이 시를 쓴 시점은 연희전문 2학년 때로, 기숙사를 나와 북아현동과 서소문동 등지에서 하숙 생활을 하던 시점이다. 하숙은 주인집에서 밥을 해주었기에 자취생 신분과는 또 다르다. 마음 약한 동주가 길에서 넝마주이 소년들을 만나고 와서 미안한 마음이 들어 괴로워하다 이 시를 썼다고 생각한다.
[윤동주 시인]
만주 북간도 용정촌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사촌 송몽규의 영향을 받아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후 194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대학 영문과에 입학했고, 6개월 후에 교토 도시샤대학 문학부로 전학했다. 1943년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기 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교토의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듬해 교토지방재판소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복역 중이던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여섯 달 앞두고 스물여덟 젊은 나이로 옥사하였다. 부친이 사망 전보를 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갔더니 화장을 해 유골함을 내주는 것이었다. 가족은 3월 6일, 북간도 용정동산의 중앙교회 묘지에 그를 묻었다. 그해 6월 14일에 가족은 묘소 앞에 ‘詩人尹東柱之墓’라고 새긴 비석을 세웠다. 그가 이 세상에서 시인으로 공식적으로 불린 첫날이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