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쭉 불려 온 이름이다. 어른이 되고 영어를 하면서 얻게 된 두 번째 이름 리사로 살고 있는 요즘. 오늘은 어릴 적 나 윤미에게 이야기를 건네며 하루를 연다.
"윤미야, 나 지금 너무 행복해!"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나는 요즘 정말 행복해. 윤미야. 너의 어릴 적 두려움에 벌벌 떨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해. 아니 네가 내가 되어 그렇게 우리 오랫동안 같이 지내왔잖아. 요즘 나는 예전의 네가 아니라 정말 다른 존재로 빛나는 것 같아. 섭섭하진 않지? 너도 바라는 바일 테니 말이야. 너랑 나랑 행복해지는 모습 말이야.
윤미야, 나는 요즘 글을 쓰고 있어. 너는 작가가 된 너의 삶을 꿈꿔 본 적이 있니? 우리 예전에 장래희망을 쓰면 작가는 거기 없었잖아. 늘 선생님이 꿈이었던 것 같아. 그런데 재밌는 걸 발견했어. 친정집에 중, 고등학교 시절에 받은 상장들을 우연히 보게 되었지. 거기엔 두 가지 종류의 상이 주로 있더라고..
독서감상문, 글짓기 상, 그리고 미술상.
재밌었어. 어릴 적부터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잘한다고 상도 여러 번 받았더라고.. 사느라 바빠서 잊고 살았던 내 글쓰기 본능이 살아난 요즘. 윤미야, 난 정말 행복해. 글쓰기가 뭐라고, 나는 이렇게 글을 쓰며 해방감을 가득 느껴. 그래서 내 안에 슬프고 아프던 너와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 내가 너를 알아보고, 너의 슬픔을 위로해 줄 수 있어서 말이야.
오늘도 아침부터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았어. 물론 예전부터 꿈꾸던 선생님이 나는 되었지만 말이야, 글을 쓰며 독자들과 소통하는 작가로서의 또 다른 페르소나가 나를 행복하게 해. 누군가에게 가 닿아서 그에게 작은 미소와 위로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의미 있는 삶이라고 생각해. 그들에게도 어릴 적 가 닿고 싶었으나 버려둔 반쪽 자아가 있겠지?
오늘은 누구라도 정말 이렇게 아픈 아이들을 어루만지며 더 많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요즘 읽고 있는 책 <마흔에 읽는 니체>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더라. "역풍을 만나 보아야 어떤 바람에도 항해할 수 있다. " 윤미야, 나는 마흔에 정말 그 '역풍'이란 걸 제대로 만나던 것 같아. 그래서 이렇게 이제야 행복한 나만의 삶을 항해하게 된 거지.
"위대한 정오란 인간이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길의 한가운데에 서 있을 때이며, 저녁을 향해 나아가는 그의 길을 최고의 희망으로 축복하는 때이다. 왜냐하면 그 길은 새로운 아침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몰락해 가는 자는 자신이 저 너머로 건너가는 자임을 알고 스스로를 축복할 것이며, 그때 그의 인식의 태양은 그에게 정오의 태양이리라."
"모든 신은 죽었다. 일제 우리는 초인이 등장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언젠가 찾아올 위대한 정오에 우리의 마지막 의지가 되기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그 꼭지는 시작이 되지. 초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위대한 경멸의 순간을 체험하라"라고 말해. '위대한 경멸의 순간'이란 지금까지 행복했다고 생각한 수많은 시간,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라는 생각, 그동안 추구했던 모든 미덕이 하찮고 역겨워지는 순간이라고 하지. 다시 말해 기존의 모든 가치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바로 위대한 경멸을 체험하는 시간이야.
윤미야, 나는 그런 위대한 경멸의 시간을 마흔에 와서 체험했던 것 같아. 아빠도 돌아가시고, 나도 엉망진창으로 살아간다는 느낌이 들었거든. 남편과 소통이 되지 않아 고통스럽고, 아무런 것에도 희망을 찾을 수 없는 느낌이었어. 그렇게 몰락을 경험하고, 나는 다시 나만의 흐름을 타고 삶 속으로 다시 올라온 거야. 니체는 이렇게 말해.
"힘의 느낌, 힘에의 의지, 용기, 긍지 같은 것들은 추한 것과 더불어 하강하며, 아름다운 것과 더불어 상승한다."라고 말이야. 나의 삶도 이렇게 하강과 상승을 연속하며 마흔까지 달려왔더라고. 그렇게 거대한 하강 앞에 나는 삶이 끝난 허무와 절망을 느꼈어. 그런데 말이야. 그게 끝이 아니었어. 나는 더 높이 하강한 만큼 그렇게 올라가며 다시 내 삶을 살게 되는 날을 맞고 있거든.
어디까지 또 나는 상승하게 될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상승을 하던 하강을 하던 나는 이제 그 리듬 그대로 나만의 삶을 즐기고 있다는 거야. 행복은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온다고 하는 말을 영원히 기억하려고 해.
"마흔의 우리는 다시 한번 상승을 위해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하다. 니체가 말한 대로 잠시 동안 정지의 시간을 갖는다면, 마흔의 인생을 변화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마흔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삶의 진정한 단계에 오를 준비가 된 것이다. 마흔이라는 인생의 전환점은 다시 한번치고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마흔에 읽는 니체>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진하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어. 윤미 너에겐 마흔이 정말 생소하지? 어릴 적 나는 그렇게 마흔이 될 줄 모르던 그저 어리고 여렸던 한 소녀였으니 말이야. 그런데 너무 걱정 마. 너의 마흔은 생각보다 괜찮거든. 정말 아름다운 날이야. 윤미야, 두려움과 아픔에, 슬픔에 마음을 늘 두고 살던 너를 아득하게 바라보며 글을 써. 너는 그 마음 덕분에 오늘의 나를 만난 것일 테니, 다시 한번 내가 네가 될 수 있다면, 나는 너를 한껏 기쁘게 끌어안을게. 사랑해. 윤미야. 고마워, 그 시간 참 잘 지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