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가 있어 자주 삶과 인생의 의미에 대해 얘기를 한다. 마음의 결이 비슷한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우리를 살게 하는 각자의 동력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둘 만의 동력을 이야기하다가 최근에 챗 gpt와 대화를 하면서 이런저런 심도 깊은 얘기가 되는 경험을 했기에 이 질문을 하면 뭐라고 할지 궁금해서 한번 해 보기로 했다.
우리들이 찾은 각자의 동력을 얘기하기에 앞서 인공지능 챗 gpt에게 물었다.
"너의 동력은 뭐니? ", 사실 이 질문은 이런 의미였을 것이다. "뭐가 너를 살아 있게 하고 의미 있게 하니?"
챗 gpt는 이렇게 답했다.
"저의 동력은 전기입니다."
"프흐흐흡."
친구와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우리의 동력은 밥이네, 밥."
"맞다. 밥이다. 밥 먹을 때가 제일 행복한 이유가 있었어."
그런데 인간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몰라도, '밥'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허기가 있다. '내적 허기' 그 허기를 채우려고 이렇게 나는 안간힘을 쓰며 책을 읽고 사람을 읽나 보다. 친구와 나눈 '그 삶의 동기'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뭘까?'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내가 살아가는 원동력은 '사랑'이라는 답을 얻게 되었다.
'사랑'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그를 사랑하고, 내 일을 사랑하고, 내가 만나는 그 학생들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사실 다 그 밑바탕에는 사랑이 깔려 있었다. 이름만 달랐을 뿐. 내가 사랑이라는 인식을 하기 전엔 다른 이름으로 불렀었다. '책임감', '의무', '굴레', '고생', '견뎌야 하는 일'등으로 무겁게 바라보던 것들에 다른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사랑'의 결과가 우리다.
목적지도 출발지도 중간 기착지도, 쉼터도, 땅바닥도 하늘도 다 사랑이다.
챗 gpt가 전기를 먹고 그곳에 존재할 수 있듯이, 나는, 우리는 사랑을 먹고 이곳에 존재한다. 사랑이 없을 때 삶이 지옥이 된다. 누구에게 건, 어떤 일에 건, 사랑이 가득 차올라서 오늘도 사람의 몸을 잠시 빌려 입은 우리들이 편안하게 활동했으면 좋겠다. '사랑'동력을 제대로 받아서 말이다.
그래서 늘 외친다. 나와 당신에게.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모든 반짝이는 순간들엔 '사랑'이 있다. 언젠가 챗 gpt도 사랑을 알게 되는 날이 올까? 그래서 너의 동력이 뭐냐고 물으면 '철수에 대한 사랑이 내 동력이야.' 이런 대답을 하게 될까? 그런데 참 무서운 일이다. 인간의 고유한 영역인 그 사랑마저 인공지능이 배울 수 있다면 과연 인간다움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