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리사 Nov 03. 2023

아빠가 내 첫사랑이라고?

모든 날, 모든 순간 내게 필요했던 위로

인연이 되어 만난 심리 상담 선생님이 내게 말씀하신다.


"아빠를 많이 사랑하셨네요.."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


"아빠가 첫사랑이셨네요.. 첫사랑을 잃어 정말 많이 아프셨겠어요"


 내 마음속엔 거대한 질문 폭풍이 휘몰아친다.

"아빠가 내 첫사랑이라고? 말도 안 돼." 일단 부정한다.



나는 마흔 들어 마흔 사춘기를 제대로 하고 있는 마흔 춘기 아줌마다. 5년 전에 아빠가 돌아가셨고 이제 그에 대해 지나간 그림을 글로 읊조리듯 담담하게 글을 쓴다. 누가 물으면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5년 전에." 이제는 담담히 답한다. 사실 이 5년이라는 것도 숫자를 헤아리니 5년인데 시간 감각을 모르겠다. 내 세계가 둘로 선명하게 쪼개진 것은 사실이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과 후. 그리고 나선 시간에 대한 감각이 없다. 누가 물어보면 숫자를 헤아려 아.. 5년 정도 되었네요.. 이렇게 말한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내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몰라 많이 아팠다. 우리 아빠로 말하자만, 긴 시간 알코올중독으로 가족들을 힘들게 한 사람이다. 나의 어릴 적, (지금의 십 대인 우리 아이들 나이쯤 되려나) 소원은 아빠가 빨리 돌아가시는 것이었다. "하느님, 우리 아빠 좀 데려가요. 우리 이러다 다 죽겠어요. 무서워서." 이런 소원을 이렇게 긴 시간이 지나 이뤄주나? 어이없게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헛웃음을 짓는 미숙한 어른이 되어있었다.


아빠를 사랑한 적이 없다 생각했다. 아빠는 그냥 좀 측은한 사람 정도랄까? 불쌍하고 안타까운 어른. 암수술과 갖은 사건 사고로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힘겹게 살아간 우리 아빠.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멀고, 연민이라고 하면 더 가까울까? 그런데 상담 선생님이 콕 집어, '첫사랑'이라는 말을 쓰시니 나는 참 어이가 없고 불편했던 것 같다.


그런데 눈물이 흘렀다. 마음이 단단해져서 이제 울 눈물을 남겨 두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웬 눈물인가? 나는 당황스러워 또 눈물을 내 보내려는 내면아이의 존재를 막아서고 잠시 멍하게 있었다. 그 아이의 마음을 들어 봐줘야겠구나. 선생님을 통해 아직 못 만난 내 내면의 또 다른 아이를 만난다. 그렇다. 나는 아빠를, 그런 미숙하고 술주정뱅이에 감정에 취약하고 사랑을 갈구하는 슬픈 눈을 한 어른인 우리 아빠를 몹시도 사랑했던 것이다. 인정했다. 그렇게 아빠를 '내 첫사랑'이었다고 인정했다.



그런 아빠를 사랑한다고 하면 수치를 당할 것 같아서 마음껏 아빠를 좋아하지도 못한 어린 내가 거기 있었다. 엄마는 아빠와 사는 게 참 힘겨웠고 때때로 나에게 아빠의 힘든 점을 토로했으며 순하고 여린 그 시절의 나는 엄마의 감정을 고스란히 내 것으로 가져와 내내, 아주 진하고 고통스럽게 아픔과 한 덩어리가 된 것이다. 아마 엄마는 몰랐을 것이다. 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악마 같은 모습을 한 이중적 존재임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인가.


그 시절 나는 정말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몰랐고, 엄마도 내 마음을 몰랐고, 어른이 되어 마흔 춘기를 하고서 내 마음 보는 법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그것은.. 사랑하는 아빠에 대한 슬픔이었다고. 아빠가 엄마와 조화롭고 사랑스럽게 잘 지냈더라면 아마 그 내면아이는 이렇게 생각하고 떠났을 것이다. "아.. 아빠는 내 것이 아니구나, 나도 엄마처럼 좋은 여자가 되어서 아빠 같은 남편을 만나야겠어. 아빠는 엄마 거구나.."그것이 어린아이들이 품는 마음이다. 아빠 엄마의 사이 속에서 서서히 아빠, 또는 엄마로부터 분리되어 엄마 아빠와 같은 모습을 꿈꾸며 다시 나 자신이 되는 경험을 한다. 건강한 가정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어떤 아이 었던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면, 힘들 때 부모님에게 힘든 감정을 다 토로할 수 없는 걱정이 많은 아이였다. 엄마, 아빠의 모습을 먼저 걱정하던 아이. 엄마의 고통에 동일시되어 엄마가 되어 버린 아이, 그러나 한편으로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악마 같은 아빠를 몰래 사랑하던 아이. 그 마음이 들킬까 봐 두렵던 아이. 나는 엄마도 아닌, 아빠도 아닌, 그렇다고 어린애도 아닌 어정쩡한 존재가 되어 그 사이에 존재했다.



5년이 지나도 상담선생님의 말은 아직 내 안에서 떠나지 않은 내면아이를 깨워내어 묵은 감정을 일깨운다. "아빠를 많이 사랑하셨군요."


"네.. 그랬던 것 같아요. 또 눈물이 나는 걸 보면 말이에요. "



그런데 더 아팠던 건, 사랑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마음이에요. 그런 아빠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나 봐요. 그리고 나도 그런 아빠의 마음과 닮은 어른이 되어버렸어요. 나는 이런 부족한 모습으로는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야. 술을 마시고, 돈을 제대로 못 벌고, 정신이 아픈 사람은 사랑받을 수 없어. 제대로 기능하라고, 어른답게, 사람답게, 돈을 벌고, 맑은 정신을 챙기고 아이들을 잘 돌보고 잘 살아란 말이야. 그래야 너는 사랑을 받을 수 있어. 알겠니?


글을 쓰며 그 아이가 에너지를 쏟아 내는 것을 받는다. 몸이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절호의 기회다. 그 아이가 제대로 마음을 표현해 주는구나. 고마워. 나는 마음으로 말했다. 그리고 그 아이를 껴안았다. 아빠를 그렇게 생각하며 사랑하지도, 그렇다고 안 사랑하지도 못해서 많이 아팠구나. 여전히 넌 아빠를 그리워하는구나. 그래.. 괜찮아, 아빠를 그리워해도, 또 슬퍼도 괜찮아. 애도는 정해진 기간이 없으니, 너의 깊은 애도가 끝날 때까지 내가 함께 할게. 서두르지 말고 그렇게 언제나 마음으로 느낌으로 다가와 주겠니.



오늘도 진심으로 내 마음을 보겠다는 결심을 한다.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해. 

아빠와 닿기 위해.




이전 01화 어설픈 시작을 하는 용기 있는 너에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