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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그리움으로 아빠, 고마워요.

Part 3. 마흔, 치유의 시간- 감사하며 추억하며 애도하기

by 김리사

세상을 떠난 가족을 애도하는 데는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아빠를 떠나보내고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놓아드리는 데는 3년이 더 넘게 걸렸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 시간도 부족해서 이 글이 그 못다 한 애도를 마무리 짓는 페이지가 될 것 같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내 삶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할 것임을 안다. 누구에게라도 아빠라는 존재는 소중하고,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한 뿌리이다. 뿌리가 사라졌는데 어떻게 존재가 휘청대지 않을 수 있는가. 다시 새롭게 심리적으로 굳건히 뿌리내릴 때까지 그 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극복하기 위해, 가장 중한 것은 슬픔을 제대로 애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에게 고인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꼈는지, 헤어짐이 얼마나 아픈지,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통과시킬 공간을 내어 주는 것이다. 마음의 공간 말이다. 아픈 것을 느끼는 것이 싫어서 공간을 닫아버리면 다시 그곳에 억눌린 내면 아이가 자란다. 나는 수없이 반복해 온 회피 기제의 순간을 이제 내려놓고 아빠 잃은 슬픔을 있는 그대로 마주했다.




엄마를 괴롭게 했던 나쁜 남편이었던 아빠의 존재를 일단 내려놓고, 내 아빠로서 훌륭하고 따뜻하고 자상했던 아빠를 추억했다. 술을 끊고 평온하게 지냈던 몇 해동안 엄마와 아빠와 내가 함께 보낸 추억들이 몇 장면 있는데 그 시간이 나에게 아빠와의 기억에서 빛나던 순간들이었다. 그 추억마저 없었더라면 더 많이 슬프고 괴로웠을 것이다. 이렇게 지난 시간을 따뜻하고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부모님이 힘들게 돈을 벌어 시켜준 과외나 학원 수업의 순간들이 아니다. 함께 떠난 나들이나 여행지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풍경을 보며 하하 호호 웃고 떠들던 소박한 순간들이었다. 몇 년 만에 떠난 남해 바닷가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던 엄마와 그것을 보고 해맑게 웃으시던 아빠의 모습. 아빠는 가족 속에서 행복했고 사랑받고 있었으며, 나도 함께 웃었다.


나의 아빠 '정윤'이 웃으면 나도 행복했음을.. 엄마가 웃으면 세상이 평화로웠음을 떠올려 본다. 결국 그것을 아이들은 몹시도 원한다. 엄마 아빠가 함께 행복한 것 말이다.



아빠와의 좋았던 또 다른 추억 중 하나는, 나의 운전면허증 연수를 시켜주셨던 시간들이다. 아빠가 실기 연수를 시켜주셨는데 아빠와 함께 이곳저곳 드라이브를 하면서, 딸의 미숙한 운전 실력에 조마조마하는 아빠를 보면서, 그럼에도 화를 안 내고 잘 가르쳐주시는 모습에 감동했었다. 엄마한테는 버럭, 버럭 정말 화를 많이 내셨는데, 아빠는 나에게 정말 친절한 아빠였다. 막내딸을 그렇게 극진하게 사랑해주시던 아빠를 잃은 내가 어찌 괜찮을 수가 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몇 년간의 나의 슬픔과 우울은 당연한 것이었다. 아빠가 나를 잃어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이니까.



또 한 가지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날, 늦은 시간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아빠가 남편과 나를 데리러 오셨다. 막내딸 시집가던 날 아빠 맘은 어땠을까? 지금도 그 마음을 떠올리면 먹먹한데, 신혼여행 다녀온 날 아빠를 보면서 정말 따뜻하고 행복했다. 우리 아빠가 날, 이렇게 사랑하고, 좋아하고, 아껴하시는데. 내가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으로 이어지면서, 아빠가 있어 감사했다. 아빠가 술도 많이 드시고 실수도 정말 많이 하셨지만, 정이 많고 부지런한 성품은 가장 큰 아빠의 장점이었다. 세상 부지런하셨던 우리 아빠는 술을 그렇게 많이 드셔도 다음날 꼭 새벽시장에 가서 장을 봐주시고, 집안일들을 빈틈없이 챙겨주셨다.


아빠는 완벽주의 성향이셨고 일도 남들보다 더 그렇게 잘하셔서 늘 인기 많은 건축가 미장이었음을 기억한다. 세상에 어떤 일이든, 그 일을 완벽하게 해 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눈부시다. 남이 알아주든 아니든, 완벽하게 열심히 맡은 일을 해내는 것. 그것이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나눔이라고 생각한다. 아빠는 늘 그렇게 열심히 일하셨다. 언제나 아빠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일을 하셨다. 손재주가 좋으셔서 무엇이든 뚝닥 뚝닥 만들어 내셨고, 내가 유화를 그리는 취미가 있을 때 나의 이젤을 손수 만들어 주셨다. 그런 성실함의 본보기였던 아빠를 떠올리며, 부모는 뒷모습으로 자식을 가르친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내가 부모가 되어 보아도 단지 부모라는 이유로, 아빠처럼 부지런할 자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부지런함을 떨어 보는데, 그래도 아빠의 피가 흐르니 나도 게으른 사람이 되지는 못할 것 같다. 마음만은 말이다. 지금까진 정말 나도 열심히 부지런히 잘 살았다고 나를 격려한다. 아빠가 스스로에 그렇게 애쓴다고 인정하고 격려하고 사랑을 듬뿍 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술을 덜 마시고, 조금 더 밝고 맑고 행복하게 살다 가셨을 것 같다. 나는 그래서 나에게 사랑을 듬뿍 주기로 했다. 누가 뭐래도, 열심히 나답게 잘 살고 있다고, 늘 인정해줄 것이다. 그것이 우리 아이들이 또 같이 행복할 열쇠임을 알고 있으니까.



부모가 행복하면,

부모의 자존감이 높으면,

부모의 자기 사랑이 충만하면,


아이들은 잘 자란다.



우리 아빠 '정윤'에게는 그런 엄마, 아빠가 부재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아빠가 어릴 적, 사랑을 많이 못 받고 자랐어도, 가장으로 열심히 노력하고 살아온 시간을 꼭 인정해드리고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결핍 속에서 인간은 늘 성장하는 법이나까, 아빠에게도 그런 가정에서 자란 것이 성장을 주었으리라 믿는다. 아빠의 결핍 속에서 나도 성장했고 오늘의 나의 공감력과 감수성은 팔 할이 아빠 덕분임을 말씀드리고 싶다. 섬세하고 예민한 아빠의 감수성을 이제야 이해하면서, 그 시절 '정윤'에게 한 번 더 말하고 싶다.


'정윤아, 어린 정윤아, 너 참 애썼구나.. 고생 많았어.. 대견하다.. 대단해 정말..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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