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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담 Jan 04. 2024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

얕은 기억

누가 부른다. 내 이름을. 

그렇지. 나도 이름이 있었다. 그렇지만 여긴 소아과다. 내 이름이 불려질 경우의 수가 적은 장소. 


그러고 보니 이름이 불려지지 않은지 얼마나 되었더라.

간헐적으로 불려지던 이름이 어색해져, 이윽고 주인에게도 낯을 가리는 머쓱한  사이가 되었는데 말이다.

흔하지 않은 이름인지라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는데,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아니, 내 뒤에 있는 사람을 쳐다보는 건가? 다시 고개를 제자리로 돌리고 잠자코 있으려니 재차 내 이름이 들린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 내 주위를 살펴보았으나 다들 그 이름에 반응이 없다. 내가 맞는 걸까? 


나를 쳐다보는 얼굴에 반가움이 가득하다. 민낯의 얼굴로 활짝 웃고 있다. 

모르는 얼굴인데 묘하게 마음이 일렁인다. 떠오르지 않은 무의식의 경계에서 마음이 찰랑이고 있다. 


낯을 가렸던 내 이름에 대한 설렘일까. 아니면 기억 너머의 추억이 응답하는 걸까. 

아차 싶었다. 나를 아는 사람이구나. 내가 아는 사람과 나를 아는 사람은 다르다. 더 어렸을 때는 그것이 당연히 일치하는 줄 알았으나 기억은 다르게 적힌다는 것을  살아가며 체화한다. 


죽을 만큼 사랑해도 나의 기억과 너의 기억은 다르다는 것도,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삶의 궤적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정리해 본다. 자, 학부모일 확률이 제일 큰데, 상담을 했던 부모라면 분명히 선생님이라고 불렀을 것이고, 아이의 친구엄마라면 아이의 이름을 앞세워 불렀을 것이다. 

사회에서 만났던 지인이라면 예컨대 "구름씨"라고 존칭을 붙였을 터이다. 


구름아! 구름아!  

한껏 들뜬 표정으로 재차 이름을 부르다 반응이 느린 내가 답답하다는 듯 씩씩하게 걸어온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걸음과 어떤 편견도 없는 무해한 반가움만을 지니고 나에게 왔다. 


"혹시 구름이 아니에요?"

"네. 맞는데..." 

"그래 맞지. 내 모르겠나? 진해여고 1학년때 우리 같은 반."

알듯 모를 듯 애써 웃으며 기억을 더듬는 나의 등을 쓰다듬으며 친구는 힌트를 나열했다. 담임이  누구였고, 함께 놀았던 친구가 누구였는지, 등등 다행히 힌트가 떨어지기 전에 감이 왔다. 


"아아아!  알 것 같아. 잠시만... 맞다 꺅 햇살이!!! 너무 성격 좋고 밝았던 햇살이!! 매일 웃고 다니던 긍정의 아이콘 우리 햇살이다! "

"그래. 맞다. 기억나지? 으이구 (안도하며 친구가 웃는다.)

"고맙고 너무 반갑다.  어떻게 한 번에 나를 알아보니? 우리 20년도 훨씬 넘었어.  와...... "

"너는  똑같아서 바로 알아봤다. 고등학교 때랑 똑같아서 순간적으로 이름 불렀지. 여전히 하얗고 한 개도 안 변했네."

"아니다. 나도 늙었지. 알아봐 줘서 진짜 감동이고 고마워." 


그리고 이어진 근황들, 남편이야기, 아이이야기, 대학교 이야기는 진료차례가 되어 아이이름이 호명되자 소강되었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번호를 주고받았다. 


고등학교 1학년때 친했던 친구였고 2학년이 되면서 나는 문과 그 친구는 이과로 반이 갈리게 되었다. 친하게 지내는 무리가 달라지며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그렇다 한들, 기억을 못 했다니 내가 너무했다. 


둘째 아이의 진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휘몰아친 듯한 아침시간을 복기해 보았다. 꿈인가 싶을 정도로 현실감이 없다. 고등학교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한 친구와의 조우라니. 그것도 아침의 소아과에서 그 꼴을 하고 마주치다니. 허허. (아침의 소아과를 아시나요. 아픈 아이를 데리고 일찍 병원을 찾은 엄마사람은  2프로, 아니 98프로 부족한 행색이지만 어디 그게 대수인가요.  꾸밀 시간에 빨리 접수를 해야 합니다. 암요. )


몇 달 뒤 친구는 근사하게 커피숍을 차려 바리스타이자 사장님이 되었다. 여전히 활짝 웃으며 손님을 반기는 친구의 가게에 개업화분을 선물하며 진심으로 축복을 빌어주었다. 

관계의 타래는 시작과 끝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엉킨 채 이어져 있지만,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풀리기도 한다. 그러니 내가 아는 방향으로만 꽁꽁 묶어두려 하지 말아야지. 내가 의미 있게 기억하는 이들이 있듯,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은 또 다를 것이다. 그 모든 것이 감사하다. 


그리고 얼마뒤 기고제안이 왔고, 기꺼이 승낙하며 어깨를 피고 글을 썼다.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이를 만나는 기쁨이 눈처럼 조용하고 소복하게 내려앉았다. 



저의 이름은 "순진"입니다.  여전히 개명하고 싶지만 남편과 아이들이 편을 먹고 반대하여 촌스러움이 운명이 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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