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병원행
입안이 아프다는 둘째 아이와 어린이 치과에 갔던 날이었다. 치통이 있는 건지, 잇몸이 부은 건가? 구내염인가? 이가 올라오려고 아플 수도 있겠네. 대수롭지 않게 진료실로 들어갔던 나의 표정과는 다르게 의사 선생님은 사뭇 당황한 표정이었다. (이제와 복기해 보니 갓 개원한 어린 의사 선생님이셔서 그랬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라고 불렀던가. 보호자님이라고 했던가.
아무튼 다급한 목소리였다.
"구강괴사가 있어요. 볼 안쪽살이 파여있어요. 소견서를 써드릴 테니 대학병원으로 가셔서 진료 보세요."
저 살벌한 단어를 듣고 담담할 부모가 어디 있으랴. 까무러칠 지경이었다.
"네? 심각한가요? 지금 바로 가야 할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빨리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대학병원은 바로 진료가 안되니까 일단 전화를 한번 해보시겠어요."
[오진이었다. 구내염, 일종의 구강궤양이었다.]
정신을 부여잡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역시는 역시지. 나이만 먹는다고 다 같은 어른이 아니다. 어른인 남편은 차분하게 이야기를 듣고 천천히 말한다.
"괜찮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괜찮다."
놀랍도록 차분한 남편 덕분에 조금 진정이 된다. 본인도 왜 안 놀랬겠냐만은 내색하지 않고 되려 위안을 준다. 늘 그랬지만 마음이 불안정할 때 힘이 되는 사람이다. 편하고 기분이 좋을 땐 그 사람의 진가를 모른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거리가 필요한 것은 존중하고 존중받기 위함이지, 한쪽눈은 감은 채 좋은 것만 공유하자 하면 결국은 깨지기 마련이다.
한쪽눈만 뜨는 것은 불편하니까 오래갈 수 없음이 당연하지.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순간의 감정을 마주하며 토닥이고 때론 감내한다.
대학병원 의사 선생님의 덤덤함에 굳었던 어깨에 힘이 풀렸다.
"이걸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어요?"
수많은 케이스의 환자들 중에 하나니 대수롭지 않게 보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아이에게 진심이시고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기에 일부러 편한 표정으로 대수롭지 않은 척 진료를 보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조금만 눌러볼게. 참을 수 있지? 괜찮다. 이제 괜찮아. 많이 아팠겠네."
"괜찮습니다. 많이 놀라셨죠?"
처음 발병한 원인은 여러 가지일 수 있는데 지금은 아이가 계속 볼살을 씹고 있으니 일시적으로 이에 장치를 붙여주겠다고 하셨다. 딱딱하거나 찐득한 것을 먹으면 떨어질 수도 있고 그러다가 혹여 아이가 삼킬 수도 있지만 괜찮으니 그냥 두면 된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먹는 약과 가글액을 받고 돌아와 일주일 뒤 다시 내원하기 전까지 살이 제법 차올랐다. 부착된 장치는 일주일뒤쯤 열정적으로 고기를 씹다가 "엄마 고기에 파란색 뼈가 있어"라는 명언을 남기며 장치는 떨어졌고 한 달내에 회복했다.
그로부터 일 년 뒤, 그리고 6개월 뒤, 텀은 비슷했다.
추석 무렵이 되면, 새 학기가 시작이 되면, 혹은 뜬금없는 어느 날에 여봐란듯이 볼안쪽살이 파여서 아파했다. 고작 일 년에 한두 번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때의 나는 일 년에 한 번일지언정 계속되는 발병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아이가 자라며 참을성이 길러지자 근처 병원으로 갔다. 가정의학과, 이비인후과, 치과, 내과 모두 가보았다. 면역을 키워라 시간이 약이라고 말씀해 주셨고, 먹는 약과 가글액을 처방하며 자극이 가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셨다. 칠 년 정도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를 하고 원인을 찾고자 했으나 알 수 없었다. 전염성은 없는 일종의 구내염이라는 소견.
'하지만 구내염은 열이 나지만 우리 아이는 열도 없는걸요. 구내염은 일주일 내에 낫지만 어쩔 땐 아물고 살이 차오르는 데 한 달이 걸리기도 했는걸요.'
어줍잖은 짐작으로 검색을 거듭하며 걱정을 없애기 위해 걱정을 키워갔다.
지난 7년간 행했던 나름의 요법들은 한의원부터 시작이 되었다. 위장이 약하면 구강건강에 좋지 않다 하여 한약을 먹기 시작했으나 효과는 요원했다. 멀티비타민과 비타민c, 비타민d, 오메가 3, 유산균을 먹고 있었고 구강 건강에는 비타민b를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고 하여 피곤해 보이는 날은 비타민b도 함께 먹였다. 몇 년을 먹였지만 여전히 재발하였다.
치약을 바꾸었다. 계면활성제가 없는 치약을 쓰는 것이 구강건강에 중요하다고 한다.
자, 다음은 프로폴리스와 꿀이다. 구강을 보호해 주고 항균작용을 해준다. 좀 나아졌나 싶었는데 다시 일 년을 넘기지 못했다. 마지막 내가 해본 요법들 중에 가장 추천하고 싶은 것은 구강유산균이다. 자기 직전에 한알씩 입에 넣고 녹여먹으면 잠들기 전과 아침에 일어났을 때 꽤 개운함을 느낀다. 무엇보다 잘 때 발생하는 유해균들을 억제시키고 유익균의 증식을 도와준다니 먹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이는 4학년이 되었다. 먹고 싶은 것이 많은 나이의 아이에겐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남들보다 잘 참고 쓴 약도 꿀떡꿀떡 잘 먹으며 아무리 아파도 양치는 꼭 하는 아이라 충치도 없건만,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아프다고 했다. 일어나자마자 양치를 하고 정수기로 가서 얼음을 입에 물고 그제야 편안한 얼굴을 하는 아이가 안쓰럽고 기특했다. 아침을 든든히 먹는 편인데 아픈 날에는 점막이 민감하여 우유와 실키롤케이크 또는 밀크요팡을 먹고 간다. 이것만 안 아프게 먹을 수 있다나.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야.
구강내과를 에약했다. 전국에 11개밖에 없다는 구강내과는 멀어서 평소에 내원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진작에 가봤어야 했는데,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간의 일들을 상세히 설명하였고 우리의 기나긴 여정을 의사 선생님은 끊지 않고 진지하게 들어주셨다. 사진을 찍고 입안을 살펴본 뒤 모니터 앞으로 불러 설명을 해주셨다.
"큰 걱정을 하고 오셨겠지요? 검색을 하고 어떤 걱정을 하셨을지 짐작을 하지만 그런 일은 극소수입니다. 아닙니다. 이 정도의 구강궤양은 생각보다 흔합니다. 여기 보시면 이 사진의 아이는 혀가 이렇게 되기도 하였고요. 구강궤양은 다양한 케이스가 있습니다. 아프타성 궤양인 줄 아셨을 텐데,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그렇게 챙겨 먹이며 신경을 썼던 면역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아프타성 궤양은 이렇게 주위에 하얀 게 생기는데 (여러 사진을 보여주시며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
지금 아이의 사진을 보시면 다르죠. 이건 외상성 궤양입니다."
어금니로 볼 안쪽을 한번 씹어 상처가 생기고 부어오르면 의도치 않게 계속 씹게 된다는 거다. 그리고 이를 가는 사람에게 빈번히 발생한다고 한다. 밤새 이를 갈며 닿이는 점막 부분에 상처가 생길 수 있다는데, 아아! 우리 집 둘째는 이를 간다. 피곤한 날에는 이를 심하게 갈며 잤다. 그런 습관들 때문에 발생이 된 것이고, 습관을 자제하며 끊는 것이 중요하지만 잘 되지 않는 경우엔 스플린트라는 장치를 제작하여 수면 중 착용하는 것이 도움이 되니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집으로 오는 길, 남편을 길게 숨을 내 쉬며 다행이라는 말을 연발했다. 아이는 아파했지만 우리 부부는 후련한 표정으로 웃었다.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한 기분이다. 그리고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다행이야. 괜찮아질 거야. "
아직 스플린트 제작은 생각 중이고 상처는 다시 아물었다. 또 언제 이를 심하게 갈면 스크래치가 생기고 습관적으로 씹어서 파일지 모르지만 지금은 안도한다.
내내 안도하는 나날이었으면, 사랑하는 이들의 무탈과 건강이 새해의 소원이다.
이번글은 꽤 길었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탈하고 건강한 날들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