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의 아버님
연애시절부터 한결같이 (함께 회사에 있을 때를 제외하곤) 점심시간이 되면 끼니를 챙겨 묻던 남편은 결혼 후에도 변함없이 하루에 두어번씩 전화를 해왔다. 다정함은 질리는 법이 없어서 시간의 더께가 쌓일수록 깊이를 더해갔건만.
언제부턴가 한낮에 걸려오는 남편의 전화가 반갑지 않았다.
아버님이 아프시고나서 중간에 몇 번 길을 잃으시기도 했고 여러 일들을 겪다 보니 이유 없이 전화가 오면 덜컥 겁이 났다. 한 번은 어머님과 외출준비를 하시던 중 잠깐 2층 거실에 계시라 말하고 어머님은 일층에 잠깐 내려가셨다고 한다. 다시 올라가니 아버님이 사라지신 악몽 같은 날이 있었다. 치매 초기의 이야기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 인지능력이 있고 곧잘 외출도 하셨었다.
위치추적기를 부착한 외투와 핸드폰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거실 광경을 목도한 어머니는 얼마나 놀라셨을까? 아득했던 시간을 지나 찾은 아버님의 몸은 얼음처럼 차갑고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이셨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아버님은 우리를 마주할 때면 웃음으로 하고픈 말을 전해주셨다. 병원에선 '착한 치매'라고 했다. 많은 시간과 애정을 쏟던 '난 돌보기'와 '서예'도 잊어버리시고 꽃처럼 웃으시기만 하셨다. 애정을 담아 키우시던 난처럼, 느리게 갈던 묵처럼 가만히 대답이 없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다. 무슨 말씀이라도 듣고 싶어 계속 말을 걸면 미소로 화답하셨다. 그 미소도 이젠 그립기만 하다.
저녁 무렵이었다. 남편에게 걸려온 전화에 돌연 찬바람이 스몄다. 생각을 밀어내고 버튼을 눌렀지만 나는 안다. 아무렇지 않은 듯 나를 부르는 남편의 목소리에 실린 온도를 느낀다. 내가 놀랄까 봐 덤덤하게 말해주는 그 마음도 나는 안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
"여보, 아버지 호흡을 힘들어하셔서 급히 대학병원 음급실로 가셨어. 나도 급히 와 있고, 오늘 집에 갈 수 있을진 모르겠네. 일단 지켜보고 연락 줄게."
집에서 2층 계단을 내려오실 수도 없는 상황이라서 구급대원의 도움을 받으셨다고 한다.
치매노인에게는 가벼운 감기도 쉽게 넘길 일이 아니다. 약해져 있던 면역체계로 증상이 급작스레 심해지고 가래가 생기면 거렁거렁 소리와 함께 호흡이 힘들어졌다. 가래를 뱉을 수 없는 게 가장 힘들고 큰 이유였다. 아무리 설명을 해주고 시늉을 해 보여도 스스로 뱉지 못하니 호흡은 거칠어지고 기침도 심해지셨다. 약을 먹고 수액을 맞아도 괜찮아지는 듯하다가 이내 심해지셨다. 호전되지 않고 반복되는 증상들로 여러 병원들을 가보았지만 뚜렷한 효과를 보지 못했다.
치매노인은 진료하지 않는다는 병원들이 부지기수였던 터라 진료를 받아주시기만 해도 감사했다. 다행히 폐렴은 아니라고 했다. (노인의 상당수가 폐렴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위중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딱히 해결책은 없었다. 열이 나고 몸이 아프시자 치매도 급격히 진행이 되었다. 의사소통이 힘들어지시고 눈빛은 흐려지신 채 표정을 잃고 계셨다.
그러던 중 사달이 난 것이었다. 그렁그렁 대던 호흡이 가빠지시다가 갑자기 가래를 거품처럼 뿜고 의식이 흐려지셨다. 대학병원으로 옮겨진 아버님은 입안으로 긴 호스를 넣어 가래를 뽑아내고 수액을 맞으며 회복해 가셨다. 쉬이 잡히지 않던 열은 항생제로 다스려졌고, 호스를 넣어 가래를 뽑는 과정은 얼마나 힘들지 가늠할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었다. 아프면 아프다고 햄 들면 힘들다고 괜찮으면 괜찮다고 말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퇴원을 해도 집으로 가시는 건 위험합니다. 요양병원으로 들어가셔야 합니다."
차츰 회복이 되고 있던 중에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은 어머님은 내내 우셨다. 그럴 수 없다며 현실을 부정하셨지만 의사 선생님은 단호하셨다. 집에서 더 잘 돌볼 수 있다는 어머님의 말씀에 절대 안 된다고 선을 그으셨다. 치매 때문만이 아니라 수시로 체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표현을 하지 못하시니 더 자주 체크하고 의료진이 옆에 있어야 되지 않겠냐고 어머니를 설득하셨다.
울고 또 우시던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병원을 알아보겠노라. 꼼꼼히 하나하나 따져서 좋은 곳으로 알아보겠다고 안심을 시켜드리고 요양병원 투어를 나섰다. 일주일에 걸쳐 매일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 병원을 돌았다. 검색을 해서 추려놓은 등급이 높은 우선순위 병원부터 차례로 방문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우리가 기준으로 삼은 것은 이러했다.
첫째. 안락하고 쾌적하며 시설이 좋은 곳, 남향으로 햇살이 잘 드는 관리가 잘 되는 깨끗한 병실이면 좋겠다.
둘째. 각 분야의 실력 있는 의사 선생님이 다수 계시는 곳, 회진과 정기적인 검진에 대한 체계성. 응급상황에 대처가능한 의료진. 이 부분이 실질적으로 어려웠다.
셋째. 면회가 얼마나 자유로운지에 대한 허용의 여부, 병원마다 차이가 있었는데 비교적 신설병원이 면회시간이나 횟수에 유동적이었고 오래된 병원은 기준이 엄격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분위기와 표정을 살피기 위해 방문하여 파악하기로 한 것이기도 했다.
요양병원의 특성상 밝고 활기찬 분위기일 수는 물론 없겠으나 따뜻함이 느껴지길 바랐다. 말없이 기운이 빠져있는 노인들의 틈 사이사이로 작은 희망 같은 온기가 퍼지고 있는 곳이었으면 했다. 의사와 간호사, 요양보호사들의 얼굴에 지친 기색만 만연하지 않고 찰나라 할지라도 생기가 돌았으면. 하여 그분들의 얼굴만 바라보는 노인들이 삶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여기가 종착역이 아니니 졸지 말고 심신을 깨워 일어나야한다는 의지나 희망을 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요양병원에 계신 아버님을 뵈러 가면 눈물이 마르질 않지만 웃는다. 그리 다정했던 미소를 잃으신 채 가만히 우리를 , 혹은 그 너머의 다른 것을 쳐다보시는 공허한 표정이 애달프다. 텅빈 표정에 담겨있을 무언가를 찾으려고 우리는 바쁘게 눈을 마주치며 손을 주무르고 말을 건다.
이제는 기쁜 마음으로 병원에 간다. 그리고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활짝 웃으며 농담도 건넨다. 듣고 계실거라 믿으며 받았던 사랑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