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영화상 시상식
얼마 전 열린 청룡영화상 시상식의 무대가 연일 화제였다. 배우가 받은 상보다 축하무대에 대한 말들이 많은 시상식이었다. 영화시상식은 몰랐던 영화나 바쁜 일상 속에 마음에만 담아두었던 영화에 대해 간략하게 알 수 있고 드레스업 한 배우들의 모습을 감상하는 것도 흥미롭다.
화두에 오른 한 가수의 무대는 파격적이었지만 더욱 극적으로 연출이 된 것은 배우들의 표정 때문이었다. 앞에 나왔던 여자 아이돌을 보며 머금었던 미소와는 지나치게 상반된 표정이었다. 찰나의 감정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사실 본방을 보고 있었던 내 마음도 뭔가 안절부절못한 심정이었는데, 그럼에도 응원하는 마음으로 눈을 뗄 수 없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입방아에 오르내리던 말들은 가창력이나 호흡, 난해한 의상과 메이크업에 대한 것들이었다. 무엇보다 편하게 감상하기 힘들었던 탓이 컸을 것이다. 실험정신이 뚜렷한 색깔 있는 가수의 무대는 언제나 호불호가 있으나, 이번에는 너무 비장했다. 비장한 표정으로 숨 가쁘게 무대를 이끌어가는 오랜 가수를 보고 사람들은 편하게 웃을 수 없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 "허니" 노래를 부르며 춤을 즐겨 추던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많이 웃었고 즐거웠다. 학업의 스트레스가 한 톨이라도 있기는 있냐는 듯이 깔깔거리며 박진영 춤을 추고 놀았다. 나는 그 친구를 보면 기분이 좋았다. 아직도 박진영의 허니 춤사위와 함께 그 친구를 떠올린다.
박진영의 "너의 뒤에서"라는 노래를 듣고 또 들었던 시기도 있었다. 날 떠나지 마, 십 년이 지나도, 청혼가, 대낮에 한 이별, 그녀는 예뻤다 등의 노래도 좋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라는 노래를 부를 땐 망사로 된 옷을 입었던가! 춤과 가사와 의상으로 사람들을 기함시켰던 적이 그러고 보니 이 가수에겐 처음이 아니었다. 늘 센세이션 했고 언제나 진심으로 열정적이었던 가수였다.
비장함과 편안함, 난해함과 익숙함.
그날 박진영과 장기하의 무대를 보면서 온도차를 느낄 수 있었다. 장기하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관객들은 웃었다. 자연스러운 웃음은 긴장을 풀리게 한다. 서로 마주 보고 웃으니 더할 나위가 없다.
무대에 서 있는 가수가 여유 있어 보이면 관객도 마음을 편히 두고 기대어 감상할 수 있다. 무대 위의 가수가 불안정해 보이면 관객의 마음도 괜히 불편해진다. 응원하는 가수라면 마음을 졸이며 보게 된다. 물론 음악의 스타일이 주는 간극도 있겠지만 요즘은 잘 부르는 가수보다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가수의 노래가 더 귀에 감긴다. 열정적이되 비장하지 않은, 농담을 섞지만 노래엔 진심이 담긴. 예컨대 몇 년 전 어느 시상식에서 이문세의 공연이 그러했다.
결국 예술이라는 건 감상하고 감동받으며 행복하기 위함이 아닌가! 그 속에서 영감을 받아 또 다른 예술인이 탄생하는 것이고, 시대를 넘나들며 서로를 이어주고 위로해 주는 영원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시절의 노래를 들으며 추억을 반추한다. 어떤 노래는 내 것이 되고야 만다.
시상식에서 한 배우가 이런 말을 했다.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이라고.
오늘 꺾여도 내일 다시 하는 마음이 있다면 뭐든 상관있으랴. 무수한 과정 속에 이미 이루어진 단단한 유의미가 존재할 테고 그것을 골조로 삼아 언제든 쌓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