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담 Nov 24. 2023

나한테만 활짝 웃어줘.

다정한 선생님 말고 그냥 우리 엄마



마음에도 환기가 필요하다. 


간단한 아침준비를 끝마치고 나면 히터를 잠깐 켜서 거실 공기를 데우고 아이의 방문을 연다. 팔팔 끓는 보리차내음이 방으로 스미고 밤새 갇혀 있던 공기가 환기되면 아이는 꼼지락댄다. 실눈을 뜨고  이불을 다시 턱밑까지 끌어올린 아이의 첫마디는 왕왕 나를 행복하게 한다. 


"엄마, 오분만 더 잘게. 어젯밤엔 너무 따뜻해서 푹 잤어. 아침메뉴는 뭐야? 배고파."


조잘조잘 대다 절로 잠이 깨는 식이다. 그렇지만 언제나 나는 이불을 매만져주며 대답한다. 


"5분 뒤에 깨워줄게. 좀 더 자."


겨울의 아침은 반전매력이 있다. 따뜻한 이불속에서 오분만, 오분만을 중얼거리며 게으름 피우는 시간은 왜 그렇게 짧은지. 이불을 박차고 나와 거실로 나가면 서늘한 기온에 이내 이불속이 그립기도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씻은 뒤 따뜻한 물 한잔을 천천히 마시면 몸속으로 온기가 퍼진다. 창문을 열면 상쾌한 공기가 기다렸다는 듯 들어온다. 그 순간의 차가운 개운함을 좋아한다. 


머물러있는지도 모른 채 같은 자리를 열심히 맴돌았던 기억이 있다. 바쁘게 일하고 또 그만큼의 성취감을 느끼는 것에 취해서 모른척했다. 어쩔 수 없다고, 이게 최선이라고 위안하며 스스로에게 관대했다. 생각을 확장시키는 것이 두려워 안일함을 택했다. 안전지대였으니까. 


조금씩 열어두었던 창문이 이제야 활짝 열리고 묵혀두었던 마음이 환기되었다. 쓸 수 있다. 자그마치 7년이나 흘렀지만 아직도 가시지 않았던 한 편의 미안함을, 나의 못났던 표정을 이제 쓸 수 있다. 



일하는 엄마


신축아파트 1층에 공부방을 개원했다. 아이들은 겨우 4살, 6살!  자아가 생기면서 몸과 마음이 가만있지 못하고 들썩이던 시기였다.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꼬리를 물어 질문이 멈추지 않고, 통통 스프링처럼 뛰어다니며 에너지가 샘솟았다. 뿜어져 나오던 에너지는 놀 때만 가동된다. 환절기가 되면 병원은 필수코스요. 입원은 옵션이었다. 손이  많이 가는 시기였음을 간과하지 못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래서 더 돌파구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둘째가 태어나고 두 아이의 육아에 전념하느라 멈추었던 일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둘째가 4살이니 4년 만이었다. 마음을 먹고 일사천리로 준비를 해나갔다. 나는 몽상가의 성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한편으론 무얼 하고자 하면 빠르게 추진하는 성향도 지니고 있다. 


아파트입주가 시작되고 간간히 상담이  들어왔지만 만족할 만큼의 학생수가 아니었다. 이대로 천천히 때를 기다리다가 매너리즘에 빠져 초심이 식을까 조바심이 났다. 고민 끝에 내가 잘하는 걸 해보기로 했다. 

입주민카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다만 홍보글은 쓰지 않았다. 좋은 책의 내용을 요약한 글이나 아이들의 학습에 대한 정보를 담은 글이었다. 같은 학부모의 입장에서 필요하다 생각되는 글을 쓰기 시작하자 많은 댓글이 달렸다. 그다음 수순이 홍보라면 너무 진부하고 작위적이지 않나. 홍보의도를 가지고 시작했으나 의도는 접어버렸다. 


큰 놀이터 앞에 있는 단지라 접근성이 좋았다. 다니던 아이들의 부모를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금세 원생이 늘어났고 몇 달이 되지 않아 정원마감으로 대기하는 학생수도 늘기 시작했다. 사실 마감인원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버거웠다. 시작한 일이 승승장구할수록 커지던 기쁨과 성취감은 온전하지 못했다. 인정받으며 마음이 춤출 때 묘하게 거슬리는 춤사위가 있었다. 


"엄마는 다른 언니와 오빠들한테는 왜 자꾸만 웃어줘? 부럽다."


아이가 지쳐있을 때, 엄마가 고플 때, 나는 정신없이 바빴다. 아이와 가지는 놀이터에서의 시간마저 자유로이 누리지 못하고 오가며 마주치는 학보모들과 인사하느라 마음을 흘리고 있었다. 엄마에겐 아이를 충전시켜 줄 에너지가 필요하다.  엄마가 편하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기만  해도 아이는 충전이 된다. 모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정신없이 흘러갔던 날들 속에  흩날려 보냈던 마음이 있었다. 


다정한 선생님 말고 그냥 우리 엄마


유일한 사랑을 갈구하는 무해하고 작은 아이에게, 누구에게나 다정한 엄마를 보여줬다. 다른 아이들에게 친절한 표정을 짓는 엄마를 보며 아이는 몇 번이고 시무룩해졌으나 나는 무의식의 저편에서 아이의 표정을 밀어 넣었다.  


어느 날 아이가 던진 한마디에 속수무책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비합리적인 신념을 가진 채 성취를 지향하고 있었던 것일까. 내가 지닌 다정함은 오만이었던 걸까. 


성공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실패한 하루가 많았다. 



"엄마 엄마 엄마!! 이거"


"잠깐만 기다려줄래"


아이의 말을 일시정지 시키며 이해를 요구했다. 뒤늦게 재생버튼을 눌러도 아이는 언제나 다시 말해주었으니까. 괜찮다는 듯 다정하게 웃어주었다. 부모가 되는 일이 고단함을 온화한 얼굴로 견디는 일이라면, 아이가 되는 일은 유일한 사랑을 기다리고 오롯이 받으며 충만해지는 기쁨을 채우는 일이었다. 서로를 존중하면 기다리는 법도 알게 된다. 


아이와의 관계에서  두 번째의 결정적 시기는 사춘기라 했다.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인 만큼 각성하고 눈빛에 애정을 담아 바라본다. 


아이가 말한다. 


"엄마 느끼하게 웃으면서 쳐다보지 좀 마." 


아! 일을 해야 하는 시기인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