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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담 Jan 13. 2024

엄마! 나 시험 망쳤어.

부모의 표정



양말을 벗으며 해맑은 표정으로 아이가 말했다. 


"엄마, 어제랑 오늘 이어서 영어시험을 쳤거든. 근데 완전히 망쳤어. 아마 뒷바닥은 거의 다 틀린 듯? "


"그래? 고생했네. 어려웠어?"


"응. 문법 시험을 쳤는데 헷갈리는 게 많았어."


"괜찮아. 잊어버려. 틀린 문제만 기억하고 점수는 잊어버려."


"선생님이 점수를 적지는 않는데 시험지에 비가 와. 크크크. 틀린 문제는 다시 공부해서 이제 완전히 알아."


"잘했어. 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네!"


"당연하지. 학원에 걸어가는 길이 얼마나 추운데, 걸어서 온 나 자신에 보답하려고 열심히 해. "


푸하하하하하하하. 



기분이 좋았다. 아이가 망설임 없이 있는 그대로 토로해 주어서 기뻤다. 스스로를 믿고 상대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 의기소침해지지 않는다. 감당할 만한 도량이  생긴다. 점수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실수를 통해 다시 알게 되면 감사해하고, 실수와 실패를 부정적으로 느껴 회피하거나 숨기려 하지 않았으면 했다. 다만 실패에 매몰되지 않기를 바란다. 


성적을 숨기고 위태로운 감정을 끌어안으며 축 처진 마음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학창 시절을 기억한다.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저 툭 내려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 겸허히 받아들이고 다시 희망을 품고 일어설 수 있는 너그러움이 있다면 아이는 결코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이에게 웃어주었고 아이도 수더분하게 마음을 열어준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교육은 결국 아이를 변화하도록 하는 것이고, 변화는 스스로 알아차리는 힘이 중요하다. 바람이 아무리 세게 불어도 더욱 단단히 옷깃을 여미다가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자 금세 외투를 벗은 이야기처럼, 마음이 동하면 자연스레 움직이기 마련이다. 


학창 시절에 성적표를 가방에 넣고 집에 돌아가며 심장이 쿵쿵거렸던 경험은 어쩌면 성적과 무관했다. 11등은 10등 안에 들지 못해 마음이 요동치고, 2등은 1등이 되지 못해 속이 쓰리다. 차라리 끝에서 가까운 숫자를 가진 아이의 마음이 한결 편했는지도 모른다. 잔뜩 기대하는 표정을 바라보며 부응하지 못한 결과를 내비쳐야 하는 심정은 착잡하고 외롭다. 내가 가진 기대치로 타인의 행동을 바꾸려는 것은 나르시시즘적인 감정이라고 했다. 부모로서 가지는 감정과 표정은 제일 먼저 아이들에게 드러난다. 

지금의 네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이미 안다. 부모의 표정으로, 침묵 속에 흐르는 따가움으로, 가시 돋친 말로, 때론 선을 넘은 사랑으로 투영된다. 


내가 가진 불안을 접어서 던져버리고 편견없이 아이를 바라보고 싶다. 하여 거울을 보고 나의 표정을 고른다. 오늘은 '너를 믿어'라는 표정을 골랐다. 눈을 마주치고 정성스레 표정을 지으면 아이들은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나를 보고 마음을 다해 웃어준다. 그야말로 강력한 비타민 아닌가. 공짜에다가 얼굴운동까지 시켜주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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