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웃사촌
아침의 엘리베이터는 각층마다 정차하느라 한참을 기다려야 오고 만차일 때가 많다. 문이 열리고 빼곡한 사람들 중 누군가는 인사를 건넨다. 우리 아이들도 그중 하나로, 엘리베이터에 누가 타든 먼저 인사를 건넨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귀가 따갑도록 들였던 터라 습관처럼 자연스러워졌다. 비록, 사춘기 딸아이의 인사에는 영혼이 없어 보이지만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공손한 표정에 미소까지 바라기엔 무리가 있는 사춘기임을 감안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들은 표정이 없다. 모두 하나같이 핸드폰을 응시하고 있다. 가끔 유모차에 탄 아기가 방긋 웃으며 소리라도 내어주면 삭막한 공간에 숨통이 트이기도 한다. 빼곡히 들어찬 아침의 엘리베이터에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민폐가 될 수 있어 소리를 낮춘다. 출퇴근 시간에는 닫힘 지연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아이가 현관에서 신발을 신느라 시간이 지체되면 엘리베이터 앞에 선 나머지 가족은 엘리베이터를 내려보낸다. 3초면 기다리면 되는데 왜 그렇게 해야 하냐는 아이의 볼멘소리에 말해주었다. 생각해 봐! 꼭대기층부터 내려오며 모두 3초씩 엘리베이터를 잡고 있으면 가장 마지막에 타는 사람은 초가 아니라 분을 기다려야 해. 달려오는 나를 위해 누군가 기다려주는 걸 당연히 여기지 말고 감사해야 해.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일은 바람이 불면 날아가버리는 낙엽처럼 덧없는 일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흩날려가도 아름답지. 보상이 없고 기준도 모호한 헤아림을 하쟈.
"안녕하세요."
"안녕. 또 만났네."
엘리베이터에서 유독 자주 마주치는 아이들과 나는 제법 친하다.
점퍼의 지퍼를 올려주거나 돌아간 가방을 바로 해주고, 조심히 학교에 가라며 웃어준다. 그러면 이름 모를 아이는 "네"라고 대답하며 손을 흔든다. 한 번은 아파트단지가 아닌 곳에서 친구들과 걸어오는 아이를 마주쳤다. 나를 보며 우렁차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이어서 친구가 묻는다. "누구야?"
"아아 우리 아파트에 아~~~"
설명하려니 까마득해진 아이가 연신 눈을 깜박이며 단어를 고르는 모습이 진중해서 웃음이 난다. 무엇보다 고마웠다. 인연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아이의 심성을 넋 놓고 보노라니 불어오는 겨울바람이 차갑지 않다.
"같은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는 우리는 이웃사촌이야."
"아! 네."
아이의 친구들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아이는 만족하는 표정으로 웃는다. 다시 공을 통통 튀기며 가던 길을 가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자못 경쾌하다.
집 근처에 자주 가는 커피숍이 있다. 장을 보고 커피 한잔을 사러 들른 어느 날,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마카롱을 사다 주려고 전화를 했다. 어떤 맛으로 두 개 사갈까 물었더니, 밀크티와 바닐라라고 한다.
밀크티 마카롱은 소량이지만 카페인이 들어갈 텐데, 다른 것으로 골랐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아이는 순순히 다른 맛으로 바꾸었다.
커피를 픽업하는데 마카롱이 3개다. 사장님이 생긋 웃으시며 말을 건넨다. "저 밀크티맛도 맛만 보시라고 하나 넣었어요." "아아 안 그러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아이에게 맛보게 할게요."
통화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커피를 내리고 마카롱 3개를 꺼내놓았던 마음은 참말 귀엽고 따숩다. 그래서인가? 이 집의 커피는 유독 온기가 오래가더라.
집에 오는 길, 나의 이웃사촌을 만났다. 우연도 인연이라, 인사하는 아이에게 마카롱을 먹을 수 있는지 물었다. (마카롱은 아몬드가루로 만들기 때문에 알러지 여부를 꼭 확인하고 줘야 한다.
마카롱을 좋아하고 자주 먹는다는 아이에게 하나를 선물로 주고 두 개를 선물 받은 마음으로 집으로 왔다. 밀크티맛 마카롱을 보니 절로 실소가 나왔다. 큰 아이는 덕분에 애초에 원했던 밀크티맛을 먹게 되었다.
아! 밀크티 마카롱은 짱맛이라고 한다. 사장님은 다 계획이 있으셨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