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일 년 전에는 수혈을 받았다. 수액이 아니라 수혈을 받아야 한다고요? 몇 번을 되물으며 걱정을 하던 남편에게 해맑은 표정으로 "피가 들어가서인지 뭔가 힘이나. 건강한 사람의 피였나 봐."라는 시답잖은 농담을 했다.
유연한 마음을 가지자 한다. 강하려면 유연해져야 한다. 흔들리지만 이내 자리를 찾는 억새풀처럼, 부는 바람을 이겨내려 하지 않고 흐름을 느끼며 자리를 지킨다. 오지 않을 것 같던 40대가 되고 사춘기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드는 마음이었다. "절대 안 돼", "반드시 지켜" 같은 단호한 지시는 부러진다. 가르치며 실수를 허용하고, 엄격해야 할 때를 아껴두었다가 힘을 주고 싶다.
고요하게 반짝이는 아침의 생기가 주는 기운이 있다. 폭죽처럼 쏘아 올린 맑은 기분으로 하루의 시작이 매끄러워질 수 있고, 잔잔한 마음으로 걷다 보면 내가 가졌던 굳건했던 어떤 생각이 감쪽같이 지워지는 경험도 한다. 발상의 전환이 힘들어지면 꼰대가 아닌가. 고집과 아집이 뒤섞인 주장은 돌이키기가 힘들어진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 오류가 나기 마련이니 그럴 때는 나가서 걸어야 한다. 생각 없이 걷다 보면 생각도 하지 못했던 답을 찾기도 한다. 생각을 비우며 생각의 틈을 만든다.
나의 아이의 비범함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평범함에 감사하고 안도한다. 아이의 진짜 모습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엄마이기에.
카톡.
"엄마 어디야?"
"엄마 걷고 있어. 곧 갈게."
"응. 엄마 올 때 소금빵 사 와."
이어지는 귀여운 이모티콘에 미소가 절로 났다. 아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혹여 게임을 하는 건 아닌지, 숙제는 하였는지 확인하던 나를 거쳐서, 모르는 상태를 조바심 내며 전전긍긍하던 나를 거쳤다.
그리고 비로소 나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했던 통제를 멈추었다.
어리석었던 나를 토닥이며 이해를 나누었다.
믿음의 온기를 주는 것이야말로 아이의 주도성을 키우는 것이다. 스스로 가치 있다 여기게 되면 무엇이든 잘해보고 싶어 지니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굳건하다면 아이의 모든 자유시간은 유의미하다.
카톡
"엄마 나 친구가 만나자고 해서 게임 조금만 하고 수학 풀 거야."
"오케이 좋아요."
브롤이라는 게임의 가상공간에서 친구랑 만나서 게임을 한다는 뜻이다. 이후의 계획을 정해놓고 정직하게 게임을 하는 아이에게 온기를 불어넣는다.
아침부터 게임을 하냐는 잔소리를 하지 않는 것이 포인트임을 잊지 말자고 걸으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바람을 타고 마음이 소화되어 갔다. 기꺼이 멀어지지만 가장 가까운 사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