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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또 Oct 12. 2023

27) 모로코 공중목욕탕 체험기

 

 페즈는 모로코에서 가장 큰 가죽 테너리(염색 공장)가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아직도 전통방식으로 가죽을 염색하는 모로코 사람들은 뻣뻣한 가죽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비둘기 똥을 섞어 바르고 말린 후 천연 재료로 헹궈내는 작업을 반복하며 가죽을 염색한다고 했다. 때문에 그 공정이 이뤄지는 테너리는 항상 악취가 매우 심했다. 사람들은 고무장갑 같은 제대로 된 도구도 없이 가죽들과 같은 염료통에 들어가서 치대고 헹구는 작업을 반복했다. 한눈에 봐도 상당히 고통스럽고 힘든 작업일 것 같았다.


 이들은 이런 생업의 현장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하기에 이르렀는데, 메디나(구도심 지역)에 들어서자 테너리 구경을 시켜주겠다며 사람들이 골목마다 계속 말을 걸었다. 그들은 이곳을 구경 오는 관광객들에게 민트 잎을 한 두장씩 나눠주면서 코에 갖다 대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테너리에서 나는 악취가 처음 오는 사람들에게는 적응하기 힘든 정도이다 보니 물리적으로나마 악취를 이겨내라는 뜻이었다.


 테너리 관광은 내게 찜찜함만 남겨주었다. 누군가의 생업의 현장을 보는 일이 이렇게까지 기분이 이상한 일이 될 수 있을지 나는 미처 몰랐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동물원의 동물들을 구경하듯 관찰했다. 땡볕 아래 맨 손으로 노란 염료를 가죽에 바르고 있던 아저씨와 순간 눈이 마주친 나는 묘한 죄책감이 들었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누군가는 이렇게 벌어먹고 살아야 하고, 누군가는 이런 걸 오락거리쯤으로 여기는 모습이 너무 불공평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메디나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대체로 다들 능글맞았다. 말빨로 호객행위 하는 게 필수인 그들인지라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페즈는 유독 더 심했다. 남자 상인들은 나를 보면 항상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를 물었다. '곤니찌와'와 '니하오'를 듣고 기분 나쁜 티를 내면 그들은 바로 태도를 바꾸여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건넸다. 그냥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고 앞만 보고 걸어도 "윌유메리미? 두유라이크모로코허즈번드?"라며 애정공세가 쏟아졌다. 그들에겐 구체적인 내 국적이야 어떻든 일단 홀로 여행할 만큼 재력이 갖춰진 동양인 여성은 밑져봐야 본전인 구애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페즈를 떠난 나는 '블루시티'로 유명한 셰프샤우엔으로 가고 있었다. 셰프샤우엔은 작은 동네지만 나름 모로코에서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였는데, 온 건물과 골목이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어 상당히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한 이유로 박해에 대응하는 종교적인 의미, 인디고가 가장 저렴한 염료여서 유행처럼 번졌다는 의미, 모기가 싫어하는 색이라 실용적인 의미 등등 여러 추측들이 있었지만 어쨌든 확실한 건 쨍한 파란 색감처럼 다른 관광지와 구분되는 독특함은 확실히 간직 중이라는 거였다.


 나는 셰프샤우엔 메디나를 걸어 다니다가 한 카펫 가게에서 모하메드를 만났다. 진한 갈매기형 눈썹이 인상적이었던 그는 내가 양모카펫 만들기 체험을 해보고 싶다고 하자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나를 가게 안으로 유인했다. 그는 가게에 있는 카펫에 대해 내게 열심히 설명했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걸 살 금전적인 여유도, 가방 안의 자리도 없었다. 나는 그냥 내가 카펫 만들기 체험을 하는 것을 찍고 싶어서 그에게 체험비용을 문의했더니 그가 그건 공짜로 얼마든지 시켜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를 따라 카펫 공장이라는 곳으로 갔다.


 그를 따라 들어간 곳은 공장은 아니고 다른 카펫 가게였는데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진짜로 카펫을 짜는 기계가 있었다. 그는 나에게 그 기계를 조작하는 방법을 간단하게 소개해 주었고 나는 카메라를 그에게 맡긴 채 그 기계에서 직접 시연을 해보았다. 카펫 만들기 체험이 끝난 후에 그는 나에게 다른 멋진 곳들을 보여주겠다며 동네의 구석구석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나고 자랐다던 그는 셰프샤우엔 골목마다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의 열정적인 가이드는 고마웠지만, 따라다니기가 점점 힘들어진 나는 이제 슬슬 숙소로 돌아가고 싶어 그에게 살짝 눈치를 줬다. "여태까지 너무 고마웠어. 나는 이쪽으로 갈게."라는 말을 하고 돌아서는 나에게 그가 급히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서 나는 뒤를 돌아봤다. 그는 가려는 나를 붙잡고 횡설수설을 하더니 결국엔 돈을 요구하는 거였다. 그의 이 모든 호의가 결국은 돈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나는 그에게 크게 실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니 그가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에게 물었다.


 "그럼 넌 내가 가게 문도 닫고 그냥 너한테 공짜로 봉사를 해주는 줄 알았어?"

 "그래서 내가 처음부터 얼마냐고 물어봤잖아."

 "금액을 말하지 않은 것뿐이지 공짜라고 한 적은 없어."

 "그래서 네가 지금 얼마를 받고 싶다는 건데?"

 "얼마를 주는지는 네 마음이지. 그런데 여기서 보통 가이드들은 300 디르함(42,000원) 정도를 받아. 너는 내가 특별히 영상도 찍어주고 나만 아는 장소도 데려가줬으니까 그것보단 더 줘야지."

 "300 디르함? 너 정신 나갔구나?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최대금액은 100 디르함이야. 받으려면 받고 아님 말아."

 "그걸 받아서 어디에 쓰라고? 너 유튜버라며. 유튜버 돈 많잖아."

 "나는 이제 막 시작하는 유튜버라 돈 없어. 그리고 있어도 너 안 줄 거야."

 "맘대로 해. 너 오늘 집에 가기 싫으면."


 내가 제시한 가격에 만족을 할 줄 모르던 그는 끝내 나를 잡고 놔주지를 않아서 나는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구경꾼을 모았다. 내가 성깔이 만만한 계집애는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것도 있었고 목격자를 만들어 두려는 목적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치의 물러섬 없는 그의 앞에서 난 결국 경찰을 부르라며 윽박을 질렀다. 경찰 얘기에 코웃음을 치던 그는 강경한 내 태도에 돈 뜯어내기는 글렀다고 생각했는지 구실을 바꿔 다시 나에게 협박을 했다. 돈을 주기 싫으면 오늘 본인이 찍은 영상들도 다 지우라는 거였다. 나는 결국 그 앞에서 내 카메라와 핸드폰으로 찍은 모든 영상들을 다 지운 후에야 그에게서 풀려날 수 있었다. 그 상황에서도 그는 얼마나 치밀하던지 휴지통에 있는 것도 비웠는지 확인하는 일도 절대 빼먹지 않았다.




 모로코인의 습성을 익히 보고 들어 잘 알고 있던 바 모르는 사람의 이유 없는 호의는 항상 경계를 해야 했는데 알고도 당한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고, 계속 그 생각에 매몰되어 있으면 손해를 보는 건 결국 또 내쪽이었다. 나는 기분을 환기시키기 위해 할만한 것들을 찾았다. 우선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나오면 기분이 좀 나아질 것 같았다. 그때 퍼뜩 생각이 난 것이다. 모로코를 떠나기 전에 하맘을 꼭 해보라던 누군가의 충고가.


 하맘(hammam)은 모로코뿐만 아니라 아랍권 이슬람 국가에 남아있는 전통 목욕방식 중 하나인데 사우나와 굉장히 비슷한 개념인 것 같았다. 특히 하맘의 세신서비스는 받고 나면 아기로 새로 태어난 수준으로 개운하다는데, 그거야말로 기분전환이 필요한 지금 나에게 딱 필요한 거였다. 나는 바로 구글맵에서 근처의 하맘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관광객이 주로 가는 하맘은 고급서비스를 제공하는 탓에 내 기준으론 가격이 너무 비쌌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곳은 현지인들이 주로 다니는 로컬하맘이었는데, 특이점이 있다면 남탕과 여탕이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고 시간대로 구분된다는 점이었다. 같은 장소를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는 여성만,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는 남성만 이용이 가능했는데 아무래도 모로코에서는 아직까지 대부분의 가정에서 남성만 경제활동을 하는 탓에 그렇게 시간으로 남녀를 나눠둔 것 같았다.


 나는 입장료 15 디르함에 세신서비스 50 디르함, 물품보관료 5 디르함, 블랙솝(모로코식 천연비누) 1 디르함까지 총 71 디르함(10,000원)을 내고 탕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의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옷은 다 벗어야 하지만 팬티만큼은 벗어선 안 된다는 거였다. 나는 세면도구와 수건 한 장을 손에 쥐고 팬티만 입은 채 안쪽을 두리번거렸다. 이내 내 담당 세신사 언니가 와서 내 몸에 따뜻한 물을 끼얹더니 블랙솝을 꼼꼼하게 발라주었다.


 올리브와 아르간 오일 등 100% 천연재료로 만드는 블랙솝은 생긴 건 마치 조청이나 엿처럼 꾸덕하고 끈적하게 생겼는데 물 묻은 몸에 바르면 미끌거리는 오일처럼 변했다. 우리가 때를 밀기 전에 탕에서 몸을 불리는 것처럼 모로코에서는 블랙솝을 몸에 바른 채 잠시 기다리는 것 같았다. 뻘쭘하게 서 있던 나를 세신사 언니는 한쪽 구석으로 데리고 갔고 그녀가 몸짓으로 시키는 대로 나는 그녀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녀는 내가 고개를 숙이자 그 상태로 머리를 먼저 감겨주었는데 그 자세로 누군가에게 머리가 감겨지는게 너무 오랜만이라 나는 그녀의 손길이 마치 엄마의 손길처럼 느껴졌다.


 머리를 다 감기고 난 후에 그녀는 내 머리를 고무줄로 질끈 묶더니 타일로 만든 턱 같은 곳에 나를 눕혔다. 맨살이 타일에 닿으니 차가웠지만 세신사 언니가 계속 뜨뜻한 물을 몸에 끼얹어 주어서 이내 괜찮아졌다. 다리부터 때를 밀기 시작한 세신사 언니는 나의 엄청난 국수 뽑기 실력에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오랜 여행기간 동안 묵은 이야기만큼 묵은 때가 많았던 나는 순간 부끄러웠지만 능숙한 그녀의 손길에 자연스레 몸을 맡기게 됐다. 이 날 불쌍한 신세가 된 건 때수건에 같이 밀려 너덜너덜해진 내 팬티뿐이었다.


 그녀의 때밀기 스킬은 내가 여태 겪어본 어떤 세신사보다도 가히 으뜸이었다. 그녀의 손길로 뽀송해진 몸과 홍조 띄운 뽀얀 얼굴을 하고 하맘을 나오니 시원한 바람이 내 젖은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곳에 뚱뚱한 바나나 우유는 없었지만 대신 감튀를 곁들인 햄버거 세트와 레모네이드를 파는 가게는 있었다. 개운한 기분에 배까지 부르고 나니 나는 더이상 부러울 게 없어졌다. 그것이 바로 이곳에서 할 수 있는 모로코식 힐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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