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예또 Oct 12. 2023

26) 사하라 사막의 별들에게 빌었던 소원


 나에겐 오트만의 동생과 같은 유니스라는 이름을 가진 모로칸 친구가 하나 더 있었다. 이쪽의 유니스 같은 경우는 머리숱이 별로 없고 퀭한 눈에 늘어진 심부볼을 가진 40대 남성이었는데 내가 비유하는 뉘앙스를 보면 유추할 수 있겠지만 그와 나는 결말이 그리 좋지 못했다. 그를 다시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그때의 사건들이 떠올라서 혈압이 오르지만 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 혹은 그와 비슷한 사람들을 경계하길 바라는 마음에 이 이야기를 적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처음부터 내게 과하게 친절했다. 카우치 서핑을 통해 나에게 연락을 취했던 그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나에게 선뜻 본인 돈으로 내 유심카드를 충전해 주었고, 내가 현지인들과 소통이 되지 않아 도움을 요청하면 전화로 나를 위해 열심히 통역을 해주었다. 내가 카릴의 집에서 머물 때 아가디르 부모님 댁에 와 있었던 그는 직접 차를 타고 카릴의 집 앞까지 나를 데리러 와서 아가디르를 구경시켜 주기도 하였다. 사실 아빠처럼 여기던 카릴이 유니스에 대한 인상을 나쁘지 않게 말해서 그를 더 믿었던 것도 있었다.


 그는 말이 정말 많았다. 쉴 새 없이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다가도 별안간 나에게 질문을 퍼붓기도 했고, 그냥 밥 먹으러 들어간 식당이나 둘러보러 들린 시장에서도 처음 보는 사람과 짧게 대화를 끝내는 법이 없었다. (이미 말했지만) 말 많은 사람이 딱 질색인 나는 그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가 구사하는 화법 중 가장 기분 나빴던 것은 은근히 본인과 관련된 것만 치켜세우는 습관이었는데, 예를 들면 카릴의 집에서 배탈이 났던 나에게 '왜 너희 호스트는 아픈 너를 돌보지 않느냐. 나였다면 하루종일 너를 극진히 간호했을 것이다.'라고 해서 상대를 낮추고 본인을 높이는 이야길 한다던가, '내가 살고 있는 마라케시에 있는 한식집이 가장 맛있다.'라고 해서 기대감을 잔뜩 높여놓고 막상 가보니 별 게 없는 곳이어서 실망하게 만든다든지 하는 거였다.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본인 전 여자친구가 한국인 스튜어디스였다는 사실까지 나에게 강조했는데 아무리 순진한 나라고 해도 그 말만큼은 믿을 수가 없어서 나는 그냥 귓등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넘겼다. 그러면서 그가 한국인 여자를 본인이 잘 안다는 듯 행동하는 게 참 가소로웠지만 어쨌든 나를 살뜰하게 챙겨주는 부분도 많다는 걸 부정할 수가 없어 나는 그냥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했던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사하라 사막 투어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고 그는 두말할 것 없이 자기가 이쪽은 제일 잘 알고 있다며 나에게 한 여행사를 추천해 주었다. 자기 친구들을 포함해서 여러 명의 게스트들도 이 여행사를 통해 사하라 사막 투어를 갔다 왔고 모두 만족을 했다는 거였다. 다른 곳이랑 비교해 볼 것도 없이 자기를 통해서 이 여행사에 등록을 하는 게 가장 저렴하다고 아주 호언장담을 하는 통에 나는 차마 다른 곳 좀 둘러보고 결정하겠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그가 추천하는 곳으로 결정을 했고 그는 나를 도와 직접 여행사까지 가서 내가 예약하는 걸 도왔다.


 드디어 사하라 사막으로 떠나는 날, 그는 내가 차에 탈 때까지 직접 배웅을 해주었고 우리는 그렇게 웃으며 작별인사를 했다. 내가 탄 차에는 영국인 2명, 오스트리아인 2명, 리투아니아인 1명, 필리핀인 1명 그리고 나까지 총 7명이 탔는데 우리는 그렇게 한 팀이 되어 하루의 일정을 같이 움직였다. 이윽고 날이 저물어 저녁이 되었고 어느 외진 마을로 향한 기사는 갑자기 우리를 각각 다른 호텔 앞에서 내려주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예약한 여행사에 따라 제휴된 호텔이 달라 코스는 같더라도 그 안의 부가서비스들은 여행사따라 제공하는 퀄리티가 다 다른 거였다. 그리고 이윽고 내 순서가 되자 기사는 여태껏 봤던 호텔 중 가장 급이 떨어지는 곳에서 나를 내려주었다.


 그저 외관만 후줄근한 거라면 나도 이해를 했을 텐데 나 혼자 덩그러니 남은 그 호텔은 다른 호텔들처럼 미리 게스트를 맞이할 직원이 입구에 나와있기는커녕 사전에 협의가 안 된 모양인지 나를 짐짝 대하듯이 하는 거였다. 전화도 터지지 않던 그곳은 와이파이조차 없어 설사 내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도 외부로 연락할 방법이 아무것도 없었다. 덜컥 겁이난 나는 그 호텔을 박차고 나와 맞은편에 위치한 나의 일행이 들어간 호텔로 무작정 들어가 일단 와이파이를 빌려 유니스에게 연락을 했다. 나의 연락을 받은 그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딱 봐도 다른 일행들과 확연히 호텔의 급이 차이가 나는데도 그는 나에게 뭐가 문제냐는 듯이 얘길 하는 거였다. 나는 당황스러워서 말문이 막혔다. 이미 차 안에서 일행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 내가 다른 여행사들보다 오히려 더 비싼 금액을 주고 투어를 예약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나는 뻔뻔한 그의 태도에 열불이 터질 지경이었다. 그와는 이야기가 통하지가 않아 여행사 사장의 연락처를 받아 직접 연락을 했더니 이번엔 그 사장이 내 메시지를 다 읽고도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거였다. 경이로운 모로코 사람들의 책임의식에 나는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이미 시간이 많이 늦었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사비로 추가금을 내고 그곳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날이 밝으면 다시 그 사장에게 연락해 피해보상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볼 생각이었는데 유니스에게 전해 들은 그의 입장은 완강했다. 이미 내가 결제를 모두 마친 이상 어떠한 피해 보상도, 부분 환불도 해줄 수가 없다는 거였다. 그제야 나는 지금 내가 여기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막말로 기사가 나를 갑자기 외딴곳에 떨구고 사라진다고 해도 나는 지금 어디 가서 따지거나 보상을 요구할 방법이 없는 거였다. 한마디로 나는 그때 돈은 돈대로 뜯기고 갑질은 갑질대로 당하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던 것이다.




 호텔 사건은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 날 사하라 사막에 도착하자 나는 또 외딴 캠프에 혼자 버려졌고 그곳엔 아무도 없어서 나는 한동안 사람이 오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낙타를 타고 들어간 사막 위의 캠프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썼을지 모르는 냄새나고 더러운 침구들과 텐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저녁을 준비해 주겠다고 해서 주방 한쪽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별안간 웬 초면인 남자들이 우르르 들어와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순간 내 상황이 갑자기 살갗으로 와닿으면서 소름이 돋았다. 나는 지금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생면부지의 현지인 남자들이 득실득실한 곳에 홀로 있는 이방인이었던 거였다. 내가 지금 여기서 어떤 짓을 당해도 빠져나가거나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그들이 착한 사람이기를 하늘에 비는 일 말고는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그날 바로 페즈라는 도시로 장거리 이동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해도 뜨지 않은 아침 6시부터 길을 나서야 했다. 오직 나 한 명을 위해 고생하는 아흐메드가 안쓰러워 여행 중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넉넉한 팁까지 챙겨주고 기분 좋게 캠프 사무실에 도착했는데 약속된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나를 데리러 오지를 않는 거였다. 결국 나는 다시 유니스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물어볼 수밖에 없었고, 그는 내가 재촉할 때마다 그저 '기사가 가고 있다고 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봐라'는 말 뿐이었다. 그렇게 기다림의 시간은 30분, 1시간을 지나 2시간이 되었고 결국 해가 중천에 떠있는 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깨달은 것이다. 아무도 나를 데리러 오지 않을 거란 사실을.


 그쯤 되자 나는 이미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화도 나지 않았다. 그저 정신 나간 사람처럼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내 곁에서 줄곧 내 눈치를 보던 셰이엔은 이곳의 남는 방에 하루를 더 머물러도 돈은 받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다독였다. 그의 위로는 따뜻했지만 그다음 일정과 계획이 모두 어그러진 나는 골치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 사달을 낸 원인인 유니스와 그 빌어먹을 여행사의 사장은 하는 일 다 망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저주를 퍼붓고 싶은데, 사하라 사막에서 만난 이들은 그들과 반대로 하나같이 너무 순수하고 착해서 마냥 계속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결국 나는 마음을 풀고 해결 방법을 찾다가 그날 저녁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결정을 했다.


 나에게 있어 사하라 사막은 애증의 장소이다. 골머리를 앓게 만든 누군가를 떠올리면 그곳과 관련된 건 아무것도 보고 싶지가 않은데, 또 그곳에서 만난 이들의 꾸밈없는 미소를 떠올리면 그때의 즐거웠던 순간순간들이 생각나 그곳이 그리워진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나를 위해 낙타 농장에서 먹이 주는 체험을 시켜줬던 셰이엔과, 사막의 고개를 능숙한 운전실력으로 넘나들며 롤러코스터를 태워주었던 모하메드의 노력이 빛을 발하던 그 순간들 말이다. 나는 언젠가 다시 그곳에 돌아갈 수 있도록 그들의 그 순수함과 진실됨을 영영 잃지 않게 해달라고 사하라 사막 위의 무수한 별들을 보며 두 손 모아 빌었다.


이전 01화 25) 아가디르, 그 감동의 이름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