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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쓰는 이다솜 Mar 04. 2017

어쩌면 우리는 사랑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Column


유튜브를 하다가 보게 된 사랑에 관한 한 영상은 결혼한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에 대해 요목조목 짚었다. 그중 한 가지가 뇌리에 꽂혔다. 단순하지만, 정확했다.


“우리는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가족은 이미 서로에게 익숙하고, 많은 점을 포용한다. 친구들은 기껏해야 몇 시간 동안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헤어진다. 나를 싫어하고 문제점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스쳐 갈 뿐, 굳이 마음과 시간을 쏟아가며 단점을 말해주지 않는다. 자기 객관화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또, 우리는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관심 있는 몇 사람조차 긴 시간, 여러 상황을 함께 겪지 않는 이상 일부밖에 볼 수 없다. 겪게 되더라도 타고 난 기질도 자란 환경도 다르기 때문에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모르는 두 사람이 만나, 더 이해할 수 없는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연애고 결혼이다. 별다른 노력이나 시행착오 없이 순탄하길 바라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인다. 행복은 포기해야 할까.




배우 A 부부와 코미디언 B 부부는 매스컴 안팎에서 다투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싸운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마냥 행복해 보이는 이들에게도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는 건 어려운 일. 그러나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A 부부는 한때 남편의 낮은 가사노동 참여율 때문에 갈등했다. 둘은 이 문제에 대해 대화했고, 문제를 개선했다. 복잡한 갈등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의 핵심을 찾고, 수용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이처럼 원만하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때로는 타협하거나 양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오랜 시간 형성된 가치관이나 습관과 연관된 문제일 경우다. 그럴 때는 B 부부가 싸울 때 했다는 근사한 말을 떠올려보자.


“이런 싸움은 무의미하다. 어차피 화해해서 행복하게 살 건데 왜 싸우고 있나.”     


문제를 덮어놓고 넘어가자는 의미가 아니다. 다른 점을 맞춰가려고 충분히 애써도 변화가 더디거나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면, 상대방을 기다려 주거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줄 필요도 있다는 것. 설령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소모적인 싸움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만약 개선될 여지가 없는 상대방의 특징이 당신에게는 관계를 깨트리고 싶을 만큼 견딜 수 없는 것이라면, 안타깝게도 늘 다투며 살아가거나 끝내 헤어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암울하다고 할 수 있지만, 달리 생각하면 희망적이다. 만남을 끝낼 만큼 치명적인 단점이 아니라면, 우리는 계속 함께할 수 있다.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하려고, 또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인정하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말이다.


굳건한 사랑, 소중한 사람은 이렇게 치열하게 노력한 끝에서야 간신히 얻을 수 있다. 심지어 이토록 애써도 파트너의 마음이 나와 같지 않거나 불가피한 상황이 오면, 소용없다. 모든 것이 좋아 보이던 연애 초반의 낭만만으로 사랑을 지켜갈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어쩌면 우리는 사랑에 대한 생각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사랑을 너무 만만하게 봤던 것은 아닐까. 사랑은 원래 어렵다. 따뜻한 봄날에 공원에서 같이 타는 자전거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먹는 스테이크 같은 게 아니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넘어야 하는 험난한 항해에 가깝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 최적화된 천생연분이 하늘에서 떨어질 수도 있지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얻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게 사랑이다. 모든 연인이 처음부터 각오를 단단히 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뒤돌아봤을 때 후회가 남지 않도록.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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