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끔 쓰는 이다솜 Mar 09. 2017

비극을 되풀이한대도 너를 만날 거야

Review


영화 <컨택트>를 본지도 한 달이 되어 간다. 드니 빌뇌브 감독을 좋아하고, 예상 평점도 높아서 기대가 컸다. 그런데도 영화가 좋았다. 시간의 부피를 느끼게 하는 오프닝부터 감정이 북받쳤고, 보는 내내 숨죽이며 경탄했다. 기발한 상상력, 언어와 사고체계에 관한 이론을 풀어내는 참신한 방식은 물론이고, 미니멀해서 세련되게 느껴지는 빌뇌브 표 이미지, 황홀한 부감과 롱 테이트 화면, 가슴을 죄여 오는 음악, 에이미 아담스의 연기까지 완벽했다. 영화에서 아른거리는 빌뇌브 전작들의 그림자를 보는 것도 즐거웠다.


그러나, 이 영화가 나를 울게 만든 부분은 이미 수많은 예술 작품에서 다뤄진, 시간과 선택에 관한 이야기였다. 햅타포드라 불리는 외계인의 언어를 통해, 시간을 직선이 아닌 원의 형태로 인식하게 된 루이스(에이미 아담스 분)는 미래를 보게 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전 생애를 볼 수 있게 된 것.


“이 여행이 어떻게 흘러갈지, 결과가 어떨지 알고 있어도… 난 모든 걸 껴안을 거야. 그리고, 매 순간을 반길 거야.”


극 중 루이스의 대사다. 그녀는 이안(제레미 레너 분)과 이혼하게 될 것을, 그와 낳은 딸이 병으로 죽게 될 걸 알면서도 기꺼이 이안을 끌어안는다. 결국 두 사람과 이별하게 될지라도 함께한 순간, 순간이 값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다.



한 사람과 오랫동안 연애 중인 내게 몇몇 사람이 말한 적이 있다.


“와, 정말 오래 만났네. 이제 진짜 결혼해야겠다.”

“헤어지면 큰 일 나겠다.”


큰 일이기는 하다. 10년 동안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지는 일이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는 없다. 그는 가장 친한 친구이고, 함께 할 수십 년 뒤의 미래에 관해 꿈꾸고 말한 유일한 사람이다. 그와 이별한다면, 내 삶은 여러모로 변하게 될 것이다. 최근에 차일 빤한 적이 있어서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적이 있는데,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를 만나는 동안 흘러간 청춘과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다. 내 삶에서 미치도록 행복한 순간, 너무 즐거워서 무한히 반복됐으면 하는 시간 대부분에 그가 있다. 그는 내 가슴 안쪽 깊은 곳에 따뜻하고 단단한 무언가를 줬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언제부터인가 느낄 수 있다. 아마도 그건, 그와 시간이 준 선물일 것이다.


2017년 3월


 책에 실린 글의 일부입니다.

이전 03화 진심으로 미워한 한 사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