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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쓰는 이다솜 Nov 07. 2017

고기 굽는 여자, 손톱 깎는 남자

Essay


미식을 즐기는 내게 고기를 잘 굽는 일은 꽤 중요하다. 맛없게 구워진 고기를 편하게 먹을 바에야 수고스럽더라도 직접 굽자는 쪽이다. 그가 유달리 고기를 못 굽는 편은 아니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사귀고 몇 년이 지날 때까지 우리는 종종 고기를 서로 굽겠다고 싸웠다. 결국 내가 굽는 사람이 됐다. 가끔씩 그에게 “받아먹기만 하면 돼서 정말 좋겠다”라고 말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포지션을 양보할 마음은 없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남자가 여자한테 고기 구워주고 챙겨주는 게 그렇게 다정해 보이던데. 여자가 구워주는 거 보면, 평생 남편 뒷바라지해줘야 할 것 같잖아. 박복해보이고.” 고깃집에 갈 때마다 주변 테이블을 둘러봤다. 남녀가 마주 앉은 곳이면, 대부분 남자가 고기를 굽기는 했다. 그런가 보다 했다.


나의 급한 성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신체 부위가 있다. 삐뚤빼뚤한 모양의 손톱이다. 성격이 급한 데다 손톱 손질에 시간을 쓰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서 늘 대충, 빨리 깎아버린 결과다.


그는 잔소리를 한다. “손톱이 맨날 이게 뭐냐. 내 손톱 봐. 엄청 가지런하잖아.” 정말 소녀 같이 예뻤다. 그에게 손톱을 잘라 달라고 했다. 손톱을 자르는 모습만 봐도 성격이 나왔다. 어찌나 꼼꼼하게, 천천히 자르던지. “내 손톱에 조각하는 거야?” 물었을 정도다. 그는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종종 내 손톱을 잘라준다.


친구는 그런 그가 로맨틱하다고 했다. 친구의 말을 듣고서야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여자는 이래야 하고, 남자는 이래야 해. 이런 말과 행동을 하는 남자, 여자를 만나야 해.” 일반론을 우리에게 적용해보자. 고기 하나 못 굽는 그는 참 별로다. 손톱 하나 깔끔하게 자르지 못하는 나 역시 이상적인 여자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정말 중요한 걸까? 잘 모르겠다. 우리는 둘만의 방식대로 사랑한다.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을 한다. 누군가는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는 게 사랑이라고 했지만, 이는 자신이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지 상대방에게 기대해야 할 태도는 아닌 것 같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사랑에 빠진 순간 펼쳐지는 마법도 길어야 몇 년이다.


나는 그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간다. 먼저 사과한다. 생선 가시를 발라주고, 삶은 콩 껍질을 벗겨준다. 그는 늘 내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려고 한다. 내가 잠들었을 때조차 세심하게 안위를 살피고, 흐트러진 모습까지 귀여워해 준다. 나를 위해 건강보조식품을 사고, 청소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방식이다. 이를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모든 커플이 마찬가지일 거다. 매일처럼 쏟아지는 미디어의 리스티클 콘텐츠는 좋은 남녀, 피해야 할 남녀 유형을 규정한다. 대부분 우스울 정도로 허무맹랑한 소리다. 사랑의 주체는 두 사람이다. 타인의 말을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다른 이들의 연애 방식과 비교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많은 연인이 제 3자의 말과 쓸데없는 비교 속에서 길을 잃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놓아버린다. 만약 지금 이 순간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부디 자신과 상대방에게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기를.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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