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끔 쓰는 이다솜 Nov 08. 2017

우리는 서로의 이상형이 될 수 없다

Essay


오랜 시간 만나다 보니 수차례 싸우고 화해했다. 갈등의 이유는 매번 조금씩 달랐지만, 큰 틀에서 보면 손에 꼽을 만큼 적은 이유로 반복해 다퉜다. 주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대방을 바꾸려고 할 때 갈등이 생겼다. 그보다 내가 빈번하게 저지른 실수였다.


나는 그의 몇 가지 습관과 특성을 싫어한다. 사소하게는 스테이크 같은 고기를 짓이기듯 썰어 보기 싫게 만든다거나 발레리나처럼 다리를 교차시켜 서 있는 버릇, 지나치게 걱정하고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성격에 거부감이 있다. 그도 나의 어떤 점을 싫어한다. 자기중심적인 성향에서 비롯된 무심함, 다혈질적인 성향 등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그보다 훨씬 더 상대방의 모습을 마음대로 바꾸려고 했다는 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가짓수나 정도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줄었다. 계기가 있었다. 언젠가 크게 다퉜을 때 그가 말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날 바꾸려고 하지 마. 난 노력할 거지만, 네가 원하는 대로 전부 다 바꿀 수는 없어. 나는 이런 사람이야. 받아들여.”


그가 명확하게 말해주기 전까지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그에게 했던 요구 대부분이 그가 아니라 나를 위함이었다니,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는 필요하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만큼 서로에게 긍정적이고, 강력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도 없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나 역시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 그가 변화를 요구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문제는 어느 부분까지, 어떤 방식으로 변화를 요구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정답은 없다. 개인적으로는 삶의 근간이 되고, 둘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인성, 성격에 관해서는 변화를 요구, 권유할 수 있다고 본다. 신뢰감, 인내심, 배려심 등을 높이기 위한 노력 말이다. 단, 누구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인 만큼, 긴 시간 동안 천천히 변할 수 있도록 기다리고 격려해줘야 한다.


이 외에는 가급적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고 싶어졌다.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싫은 내색 없이 상대방의 바람대로 많은 부분을 바꾸고 있는 사람조차 그저 힘듦을 내색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쳐가고 있을 지도, 꾹꾹 눌렀던 감정을 언젠가 한 번에 터뜨릴 지도 모른다. 긍정적인 방향일 지라도, 외부 자극으로 인한 변화는 자연스러움을 거스르는 일이고 힘겨울 수밖에 없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대방의 작은 부분까지 바꾸려는 행동이 문제가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당연하게도 연인은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의미다. 첫째, 그를 가질 수 없다는 점. 둘째, 그는 목적이나 선호에 따라 바꾸거나 고쳐 쓰는 물건이 아니라, 고유한 욕구와 자유 의지, 리듬을 지닌 인간이라는 점이다.


과거에는 이를 간과했다. 그가 다리를 떨지 않았으면, 담배를 끊었으면 했다. 서로에게 바라는 점을 말할 수는 있다. 말해야 한다. 그러나, 선을 넘어가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변화가 진정 그를 위한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분명 그를 위하는 마음만큼이나 내가 원하는 대로 바꾸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인정하게 됐다.


최근에는 정말 많이 바뀌었다. 그의 자질구레한 습관은 물론이고, 진로나 커리어처럼 나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관해서도 욕심을 버렸다. 포기했다는 뜻이 아니라, 의견을 충분하게 피력했다면, 최종 선택에 관해서는 그의 결정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그는 깊고 넓게 생각하고 결정하는 사람이다. 또, 언제나 나를 배려해 의사를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잘못된 방향이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믿는다. 선택과 결과가 내게도 영향을 주겠지만, 이는 그를 파트너로 선택한 내 몫이다.     


불과 하루 전에도 그는 내 의사와 반대되는 또 다른 선택을 했다. 물론, 내 의견을 충분히 들었고, 자신의 생각에 관해서도 차근차근 설명했다. 대화의 끝 무렵, 내가 말했다.                


“결국 너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내가 그런 것처럼. 우리는 한 배를 탄 거고, 결과를 받아들여야지.”


우리가 탄 배는 비록 작고 볼품없을 지라도 폭풍이 칠 때조차 두 사람 모두에게 평등한 방식으로 움직였으면 한다. 나는 그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삶을 만들어가고 싶다. 그 역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끝내 이상형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지 않다. 마음에 안 드는 점을 힘겹게 견뎌내면서 함께 하려는 노력이야 말로 무엇보다 큰 사랑의 증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 이상형은 라이언 고슬링이다. 그는 이시하라 사토미라고 한다. 오늘 처음 알았다.


2017년 11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