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끔 쓰는 이다솜 Feb 05. 2018

날 정말 사랑하느냐고 묻지 않게 된 순간

Essay


그가 나를 정말 사랑하는지 궁금하던 때가 있었다. 그는 나만큼 간절하게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상대적으로 애정 표현도 뜸했다. 그때마다 나를 정말 사랑하는 게 맞느냐고 물었고, 대답은 한결 같았다. “어떻게 내가 널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가 있어? 이렇게 티가 나는데?” 당시에는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는 나로 인해 지쳤고, 서운한 감정이 쌓였다. 나는 그에게 미쳐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자신의 기분이나 상황에 대해 하는 말을 곧잘 흘려들었다. 그가 티 내지 않고 하는 수많은 배려를 눈치 채지 못했고, 당연하게 여겼다. 참다 참다 폭발한 그는 말했다. “제발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봐. 널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똑바로 봐.” 낮은 목소리였지만, 응축된 감정 때문인지 어떤 고함보다 크게 들렸다.


그 무렵부터 그는 날 위해 말없이 해왔던 작은 배려를 그때그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그의 노력이 하나씩 보였다. 나는 말해줘야 아는 둔하고 무심한 사람이었다. 그가 생색을 낸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이제야 말해줬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웠다. 말해주기 전에 깨닫지 못했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가 일일이 말해주지 않아도 날 위해 얼마나 작은 부분까지 신경 쓰는지 알 수 있게 됐다. 무심히 보내 놓은 공기청정기 구매 사이트 링크나 행정적인 문제에 휘말렸을 때 알아서 써줬던 관련 법 조항과 대응 매뉴얼, 지난 주말에 함께 갔던 새로운 맛집, 그의 품에서 내가 잠들 때까지 바뀌지 않던 자세까지 모두 노력의 산물이자, 사랑의 표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결국 그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게 된 시점은, 아니러니 하게도 그가 아니라 내가 달라졌을 때였다. 이전과 달리, 그를 세심하게 살필 수 있게 된 순간이었다. 여전히 우리는 다르고, 답답하거나 서운할 때도 있다. 불완전하고 부족한 사람이기에 실수하고 싸운다. 그러나, 그의 사랑을 매일매일 느낄 수 있게 되면서 크게 화를 낼 일도, 이해 못할 일도 거의 없어졌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표현하는 그의 사랑을 읽어내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문득 먼 길을 돌아와 서로를 이해하게 된 우리의 모습이, 제3의 언어로 간신히 소통하게 된 이방인 같았다.


적지 않은 사람이 연인의 사랑을 의심하지만, 어쩌면 자신이야말로 상대방이 끊임없이 보내고 있는 사랑의 신호를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가능성을 꼭 열어뒀으면 좋겠다. 부디 사랑하는 사람들이 대화하기를, 한껏 예민해져서 서로의 시그널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


2018년 2월

이전 06화 어쩌면 우리는 사랑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