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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쓰는 이다솜 Feb 20. 2018

연락이 귀찮아졌다, 사랑이 깊어졌는데도

Essay


연애 초기에는 그와 일거수일투족을 나누고 싶었다. 오늘 무슨 옷을 입었는지, 무슨 기사를 읽었고, 시시각각 어떤 기분이었는지 사소한 것까지 말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고 통화하고 만났다.


지금도 우리는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면 앉은자리에서 네댓 시간 수다가 기본이다. 그렇지만, 만나지 못하는 대부분의 날에는 중요한 일이나 별것 아니더라도 인상적인 일을 중심으로 대화한다. 대게 하루 30분 통화하면 충분하다. 심심하거나 보고 싶을 때 메신저로 귀여운 이모티콘을 보내지만, 길게 수다를 떨지는 않는다.


그럴싸한 말로 포장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아주 천천히 서로에게 연락하는 일이 귀찮아진 것 같다. 불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싫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반갑기까지 하다. 사랑을 표현하는 한 가지 수단에 불과한 연락의 빈도나 양에 연연하지 않고, 별말 없이도 이해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좋다. 더 이상 연락으로 애정의 깊이를 가늠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는 일종의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줬다.


전제가 있다. 우리는 긴 전화 통화로 밤을 지새우던 날들을 지나왔고, 오랫동안 신뢰를 쌓았다. 장거리 연애나 수험 생활 같은 환경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자신은 왜 이렇게 연락에 집착하고 속상해하는지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관계에는 노력만큼이나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는 부분이 많다.


혼동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귀찮아진 대상은 연락이지, 서로의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많은 사람이, 연인들은 애정의 크기만큼 자주 연락하고 싶어 한다고 믿는 것 같다. 분명 그런 시기가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아니다. 저마다 시기는 다르지만, 이전보다 더 깊이 사랑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덜 연락하고 싶어지는 때가 온다.


깊이 사랑할수록 상대방의 연락에 관대해지기도 한다. 연락이 없으면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거나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저 쉬고 싶을 수도 있다. 이런 상태가 곧 나에게 소원해졌다는 사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에 대한 애정은 연락보다는 만났을 때의 표정이나 말, 표정이나 말보다는 마음씀씀이, 행동으로 느낄 수 있다.


최근에는 혼자 우두커니 앉아 그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늘었다. 그를 떠올리다 보면 가슴이 뭉클하거나 아릿하게 그리워질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연락하지는 않는다. 가만히 그리움을 느껴본다. 그러면, 바로 연락할 때와는 또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 은은한 기쁨이 익숙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즐기게 됐다.


많은 커플이 연락 문제로 다툰다. 그 시절을 지나왔다고 해서 “지나갈 한 때”라거나 “연락에 집착하지 말라”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연락의 의미가 이처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사랑과 연락이 꼭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짚고 싶었다. 연인들이 연락에 관한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연인 간의 연락은 애정 표현이자 신뢰를 구축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같은 이유로, 연락은 일반적인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표현이나 수단은 중요하지만, 본질이 아니다. 연락은 사랑이 아니다.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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