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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May 04. 2020

실수해도 괜찮아

늘어지는 일요일. 여유롭게 늦잠을 잤다. 내편과 커피를 한 잔 마실까 하다가 커피와 샌드위치를 (같은 동네에 사는) 동생 집으로 배달시켰다. 주말에는 커피를 사러 나가면 꼭 동생에게도 사다 주는데 그날은 함께 먹고 싶었다. 점심에는 다른 약속이 있어서 2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삶의 필수가 된 ‘배달의 민족’을 이용했다. 배민에서 얼마 전에 발견한 카페인데 주문이 몰리는 바쁜 시간에도 30분 이내로 배달이 된다. 게다가 커피 맛도 좋다. 비싼 편이지만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40분이 지났는데도 배달이 시작되었다는 카톡이 오지 않았다. 외출할 시간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졌다. 자전거를 타러 나가겠다는 아이들에게 샌드위치를 먹고 가라며 붙들어 둔 터라 더 신경이 쓰였다. 배민 어플을 켜서 실시간 이동경로를 보니 거의 다 왔다. 어라.. 그런데 길을 헤매는 것 같다. 다른 아파트로 들어가더니 다시 돌아서 나온다. 가족들은 ‘그 아파트에 배달이 있겠지..’라고 했지만 아무리 봐도 길을 잘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돌아 나온 자전거는 제대로 길을 찾는 듯싶더니 집 근처까지 와서 또 다른 곳으로 간다.


아.. 외출하기 전에 가족들과 커피나 한잔하려고 한 건데 이렇게 오래 걸리다니.. 평소 같으면 주문을 해놓고 여유 있게 기다리겠지만 그날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점점 화가 났다. 가까운 길을 돌고 돌아 도착하는가 싶더니 옆 동으로 들어간다. 초조해하는 나를 보다 못한 내편이 1층으로 내려갔다.


잠시 후 커피에 흠뻑 젖은 샌드위치와 커피 한 잔을 들고 내편이 들어왔다. 휴지를 달라고 하길래 깜짝 놀라서 같이 나갔더니 엘리베이터 앞에 커피 두 잔이 쏟아져서 엉망이었다. 배달하는 분은 사색이 된 채로 ‘죄송합니다’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대학생, 아니 고등학생처럼 보였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첫 배달이라고 했다. 길을 헤매다가 늦었는데 아이스커피의 얼음이 녹으면서 물이 배어 나와 종이가방이 찢어진 모양이다. 그것도 모르고 라이더 가방에서 종이가방을 꺼내어 들다가 커피가 쏟아진 것이다. 휴지만으로는 닦아낼 수 없는 양이었다. 얼른 들어가서 걸레를 가지고 나왔다.


얼마나 곤란하고 미안할까. 첫 배달이라 잘하고 싶었을 텐데 너무 속상하겠다. 초조하고 화가 났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카페에 이야기해서 환불을 받게 되면 배달한 청년은 배달비를 받지 못하는 선에 끝나는 걸까? 아니면 커피값까지 물어줘야 하는 건가..? 확신이 서지 않아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청년이 커피값을 배상해 주겠다며 만 오천 원을 내밀었다.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거나 사정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카페에 이야기하지 말고 돈도 받지 말까..’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커피 두 잔 값인 만 원을 받고 오천 원을 돌려주었다. 청년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돈을 받지 않는 것보다, 일어난 일을 책임지고 싶어 하는 그를 응원해 주고 싶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짧은 시간 동안 라이더의 한 건당 수입이 얼마인지 생각했다. 3~4천 원은 받으려나... 급히 뛰어나가 만 원을 돌려주고 오천 원을 받아왔다.


사색이 된 상황에서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온전히 책임지려 하는 청년이 참 멋져 보였다. 나의 처음도 과연 그랬었던가..

첫 직장은 대형 보습학원이었다. 2년 동안 임용고시를 봤는데 떨어졌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서 학원 문을 두드렸다. 몇몇의 학원에서 퇴짜를 맞은 터라 어떤 조건이든 일단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한 상태였다. 일하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긴장 속에 첫 일주일을 보내고 둘째 주가 되었다. 선생님들의 배치가 갑자기 바뀌면서 예상치 못하게 상위반 수업을 하게 되었다. 열심히 준비했지만 초보 선생님의 수업이 재미있을 리도 이해가 잘 될 리도 없었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지난주까지 수업했던 선생님이 너무나도 재미있는 분이었다. 농담은커녕 수업도 제대로 못하는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환영을 받기는 너무나도 힘들었다. 착한 아이들이었지만 지루함을 숨기지는 못했다.


세 번쯤 수업을 했을까...? 장난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이 예전 선생님을 찾기 시작했다. 당황한 나는 아이들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휘둘렸다. 한 아이가 결정타를 날렸다. “@@ 선생님 돌려주세요!!” 하필 착하디 착한, 애정 하는 아이였다.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내 표정이 심상치 않았는지 아이들은 곧 얌전해졌고 겨우 수업을 마쳤다.


수업을 거부당했다는 부끄러움보다 아이들이 학원에 항의를 할까 봐 두려웠다. 교무실에 들어가자마자 팀장님께 가서 “아이들이 예전 선생님을 돌려.....”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엉엉 울어버렸다. 교무실에는 20명이 넘는 선생님이 앉아 계셨던 것 같다. 부끄러울 새도 없이 눈물이 쏟아져서 한참을 울었다.


결정타를 날렸던 학생이 찾아와서 죄송하다고 했다. 내가 더 미안했다. 재미없는 수업을 들어야 하는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선생님을 빼앗긴 아이들에게. 교무실에서 아이처럼 울어버렸으니 다른 선생님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창피하고 민망했다. 그날을 계기로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 밤낮으로 연구하고 연습했다.


‘그만 두자. 아니야, 버티자’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마음이 오락가락해서 구인광고를 찾아보다가 학원에서 낸 광고를 보게 되었다. 내 자리였다. 설마 해고를 당하는 건가? 해고를 당할 때 당하더라도 내 발로 나가지는 않겠다는 오기로 버텼다. 나중에 팀장님께 구인광고에 대해 물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팀장님은 오히려 내가 갑자기 그만둔다고 할까 봐 걱정이 돼서 광고를 냈다고 하셨다. 그렇게 버틴 학원에서 9년을 근무했다.



누구나 처음엔 서툴다. 잦은 실수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커피를 쏟았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수업을 거부당하고 선생님들 앞에서 울었다고 해서 실패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일어난 일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결하는지가 중요하다. 한 번의 실수로 실패했다고 자책하며 포기할 필요는 없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실수와 한계를 드러내는 일에 두려움을 갖지 않아야 한다. 가장 많은 실수를 드러내는 사람이 ‘가장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것들을 보여주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지, 부끄러워할 이유가 아니다.
(타이탄의 도구들, 팀 페리스)


이제 막 시작한 글쓰기도 그렇다. 목표했던 주제에 제대로 가닿지 못하거나 잘 썼다고 만족하는 글이 혹평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자책하는 대신 청년처럼 부족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나의 글을 책임지는 씩씩한 내가 되고 싶다.


교무실에서 울던 마음 약한 초보 선생님은 이제 여유롭게 아이들을 이해하고 가르치는 15년 경력자가 되었다. 글쓰기를 하면서도 수많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그 과정에서 분명 따뜻하고 풍성한 글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넌 지금 잘하고 있는 거야. 실수를 하잖아. 실수한다는 건 좋은 징조야. 네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거거든. 노력하니까 실수도 하는 거야. 실수를 하고 나면 틀린 걸 알게 되고, 그럼 고칠 수 있거든.
(하와이하다, 선형경 글, 이우일 그림)


처음 배달을 시작한 그 청년도, 이제 막 글쓰기를 시작한 나도, 또 다른 시작을 하는 그 누군가도, 모두 크고 작은 실수를 해대며 원하는 삶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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