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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Jul 24. 2021

매일 어떤 풍경을 보게 될까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미작(글쓰기 모임) 멤버의 소개로 읽게 되었다. 작가가 풍요로운 유년 시절을 보낸 대구 수성구의 고급빌라,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점점 작은 집으로 이사했던 기억, 서울에 상경한 뒤 거주하게 된 방들과 함께 그녀의 삶이 펼쳐진다. 그녀가 거쳐온 집과 방들을 통해 '집과 가족, 여성, 자아 독립, 계급, 한국의 현대사' 등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고, 자주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서울에 올라와 1,2년마다 이사하면서 겪었던 일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지금 거주하는 집에 살기 전까지, 나에게 집은 잠자는 공간이었다. 안전하게 잘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결혼하고 3년 동안 월세로 살았다. 집주인은 세입자가 자주 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우리는 집 컨디션이 어떻든 상관하지 않았기 때문에, 2년이 지난 뒤 묵시적 갱신으로 계약이 자동 연장되었다. 그런데 점점 집에서 푹 자는 것이 어려워졌다. 동향이라 아침 일찍 해가 들어왔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올빼미에게는 참 안 좋은 조건이다. 아침부터 해가 길게 들어왔기 때문에 쉽게 더워졌으니, 더위를 많이 타는 내편에게도 맞지 않는 집이었다. 그럼에도 이사 생각이 없다가 동생의 이사를 계기로 집을 옮기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새로 마련한 동생 집에서는 금세 잠이 들었다. 동생 집에서 자고 난 다음 날, 몸이 너무 개운해서 깜짝 놀랐다. 내 집에서 잘 때와는 너무도 달랐다. 낮에 놀러 갔다가 깜빡 잠이 들 때도 많았다. 낮잠이라니, 나에게는 낯선 일이었다. 동생도 이사를 한 후로 전과 달리 잠을 잘 잔다고 했다. 일 년 뒤 이사를 결심했다.


새로운 구할 집은 이전에 비해 교통이 많이 불편했고, 시장이나 마트가 멀었다. 가까운 식당도 없었다. 외식이 잦은 우리에게는 집 근처에 식당이 없다는 것은 큰 단점이었다. 그럼에도 잠이 잘 오니까, 그것 하나만 보고 집을 구했다. 동향에 당했던 기억 때문에 남향집을 골랐다.


최대한 아끼고 아껴서 꼭 필요한 부분만 수리했다. 이사하고 집들이를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펜션 같다고 했다. 그 어떤 꾸밈없이 가전과 가구(침대, 옷장, TV, 냉장고)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떤가. 잠만 잘 오면 됐지. '동생 집과 다르게 잠이 안 오면 어쩌나..'라는 걱정이 무색하게 꿀잠을 잤다. 그리고, 코로나가 유행했다.


집에서 밥을 해 먹고 휴식을 취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되었다. 초반에는 집에서 다양한 활동을 한다는 것이 어색했다. 책을 읽기에는 카페가 편했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에는 식당이 좋았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서서히 집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갔다. 편한 책상과 의자가 있었으면 좋겠고, 휑한 벽면 대신 우리를 즐겁게 하는 무언가로 장식하고 싶어졌다. 정기적으로 꽃을 사기 시작했다.


집을 선택하는 것은 매일 보게 될 풍경을 선택하는 일이기도 하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p.193


작가의 진솔하고 단단한 이야기를 통해, 내가 거쳐왔던 집과 방들을 넘어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앞으로 만들어갈 우리 부부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잠자는 공간이 아닌 삶을 꾸려가는 공간, 집. 그 집에서 사이좋게 각자의 자리를 잡고 앉은 우리는, 매일 어떤 풍경을 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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