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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Sep 13. 2021

회현에서 4년

아름다운 날들

현숙 언니 생일이다.


생일날 우연히 만났고 함께 있는  마을 언니들과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동네에 작은 백반집 '돈삼겹살'에서 조촐하게 생일 밥을 먹었다. 다음에는 이왕이면 얻어먹는 것 근사한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진숙 언니가 갑자기 백반집 앞에서 옷을 샀다며 자랑을 한다. 당근마켓이라는 중고에서 이만 원 안팎으로 한 벌을 빼입었다며 본인이 생일 주인공인 것처럼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다. 신발은 캐나다에 있을 때 산 중고라며 한술 더 떴다. 오늘 언니의 패션은 다 남의 것이다. 하지만 찰떡같이 소화했고, 원래 언니가 주인 같았다.


네 명이 한 팀 같았다.

진숙 언니가 밥을 사줄 테니, 그럼 한 사람이 커피를 사라고 한다. 나는 디저트를 담당하기로 했다.

우리는 마을 초입에 새로 생긴 '모예의 정원' 이라는 곳으로 갔다.

잘 가꿔진 정원만큼 실내도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다. 시원한 통유리에 초록 정원이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지만 가격이 너무 얄밉다. 주머니가 가벼운 일인으로 다음에 오기에는 망설여지는 곳이다.

가격도 친절하고, 사장님도 착한 우리들의 아지트 '논" 카페가 더 좋다. 세련되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빵도 맛있고 다정하며 편하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정원을 걸었다. 한가하고 오랜만에 느끼는 여유였다. 걸으면서 꽃 이름부터 관리법까지 다양한 얘기가 나왔다. 거의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현숙 언니가 있었다. 모르는 것이 없는 식물 백과사전이다. 집에 있는 정원도 아주 잘 관리한다. 언니는 회현의 타샤 튜라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서 천천히 걸어가는데 무언가를 발견하는지 세 명이 분주하다. 가까이 가 보니 바로 커다란 지렁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언니들은 놀라지도 않고 지렁이를 도와줄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뱀보다는 작지만 도마뱀만 한 지렁이가 아스팔트 위에서 괴로운 듯 마구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중에서 승희 언니가 재빨리 나뭇가지를 들고 와 지렁이가 땅으로 가게 도와줬다. 승희언니의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은 몸에 배어 있는 것 같다. 귀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마음으로 요리를 잘 하고 중학생들 간식해 줄 때 인기 만점 마을 요리사이다.


갑자기 티벳에서의 7년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그중에서 달라이 라마의 간청으로 영화관을 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첫 삽이 뜨자마자 중단되었다. 그 이유는 지렁이, 결국 한마리씩 지렁이를 옮긴 후 다시 공사가 시작되었다. 작은 생명이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그 모습과 지금의 소동이 연결되는 것 같다


회현에서 4년을 살고 있다. 살면서 느끼지만 티벳과 비슷하게 경관도 아름답지만, 사람들이 순수하고 아름답다.

버려지는 중고의 옷도 가치 있게 여기며 작은 것에 소박하게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모습, 생명을 사랑하고 작은 식물을 키우면서 보람을 느끼는 마음이 더 확장되어져 풀뿌리 마을학교로 아이들을 보듬어 안는 돌봄의 기능도 잘 해내나가고 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착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또 다른 아름다운 것들로 흘러 가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내가 행복한가보다.


남편의 사별로 힘들때 마을은 나를 치유하는 곳이며 회복하게 한다.

회현마을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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