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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후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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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Feb 13. 2021

작은 소망

봄을 꿈꾼다.

오후 5시  집 앞마당에 서 있다. 고개를 한껏 올려 하늘을 바라보고,

주변 경관을 내 눈에 담아낸다. 온 동네가 순박한 갈색으로 물들었다.

하늘은 흐릿하지만 푸르기도 하다. 내 눈이 동경하는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잠시만,

내 발이 간지럽다. 고개를 숙이고 땅을 내려다봤다.

내 발꿈치에 요것 저것 생명들이 움틀고 있었고 내 발을 치우라고 아우성대고 있다.


쪼그리고 앉았다.

숨바꼭질 놀이가 시작되었다. 나는 술래가 되었고 나를 간지럽히던 생명들이 숨었다.

하지만 숨은 고수가 되긴 너무 뻔하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지푸라기처럼 죽은 지난날의 잔디들과 풀들 사이 푸릇하고 싱싱한 뾰족한 잔디였다. 어디선가 굴러온 작은 솔방울도 함께 한다.

춥고 바람이 많이 불던 날 떨어진 솔잎도 젓가락처럼 누워 있다.

말라비틀어진 갈참나무 잎도 한껏 고부라져 있다. 언젠가부터 박혀 있는 돌멩이도 모르는 척 끼여 있다.

이제 막 자라난 작은 쑥도 보인다. 벌써? 코에 들이대니 쑥 향이 훅 들어온다.

잿빛 깃털도 보인다. 주변에 여러 날개가 흐뜨러 진 것을 보니 순가 잡았나 보다.

를 보았지만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 혼을 내려다 그만뒀다.

봄이 집이 제 집 인양 지내며 시치미 떼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다.


봄이네 집 주변에 봄이 오고 있는 것일까?

음력으로 정월 초하루가 이제 지났는데? 어제가 분명 설이었는데.

분명 내 발밑이 새로운 시작으로 움트고 있었다.


멀리만 보던 내 눈은 가까이에 아름다운 것이 있다는 것을 잊었다.

푸른빛의 눈동자는 동경했지만 가까이에 있는 소중한 인연을 가벼이 여겼다.

아주 작은 존재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상을 유지하고 나를 살리는 건 아주 작은 소망이다.

소망들이 모여 기쁨을 준다. 기쁨들이 가득 차면 누가 뭐래도 내가 행복해진다.


빛과 어둠이 나뉘는 오후 5시에 작은 소망을 꿈꾼다.

다가올 봄을 꿈꾼다.


*순이는 떠돌이개로 언젠가부터 우리집 사료로 배를 불리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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