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호제와 나는 다르다. 호제의 그릇과 나의 그릇 또한 다르다. 크기도, 모양도.
나의 그릇에 호제 그릇을 끼워 넣으려고 하지 않길. 나의 그릇과 호제 그릇을 같이 쌓아놓으려고도 하지 않길.
호제는 호제 그릇대로, 나는 내 그릇대로 살아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두 가지 일화를 기록한다.
<시간 쓰는 법>
“호제야, 누구에게나 24시간이 주어지잖아. 어떻게 쓰느냐는 나한테 달렸어. 시간을 어영부영 쓰는 것보다는 알차게 허투루 쓰는 것 없이 쓰는 게 좋지 않겠니?”
“아니!“
”엉??“
”난 두 개 다 할 건데? 헐렁헐렁하게도 쓰고, 빡빡하게도 쓰고.”
딩~! 하고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다시 시간을 촘촘하게 써야 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호제의 말이 맞으니까.
틈이 있어야 마음에도 신선한 바람이 들어갈 수 있듯, 시간도 틈이 있어야 나의 방향과 속력을 알아챌 수 있다.
<직업에 대해>
샤브샤브에 꽂힌 호제 덕분에 매주 주말 한 끼니는 샤브샤브를 먹는다. 백화점에 들른 날, 어김없이 호제는 샤브샤브를 외쳤다. Y는 다른 식당을 얘기했다. 가위바위보로 갈 곳을 정하기로 했다.
깔끔하게 호제의 승!
식당에 자리를 잡고 Y와 나는 의대증원과 파업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호제가 대화 중간에 들어와 의사와 군대 이야기로 대화를 이끌었다.
”의사 되면 군대 안 가도 되잖아!“
의사도 군대를 가지만, 호제는 의사가 부대 안에 있지 않고, 군복을 입지 않고 민간인과 접촉할 수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군대를 안 가도 된다고 믿고 있다.
“나 의사 해서 군대 안 갈래.”
“아, 그러려면 의사자격증을 따야 해.”
깜짝 놀란 호제의 눈이 동그래졌다.
“뭐?!!! 자격증을 따야 해? 슈바이처도 딴 거야?” (슈바이처 Who 만화책을 읽던 주간이었다.)
“응, 의과대학을 먼저 들어가야 하고, 대학에서 의학을 배운 다음에 자격증 시험을 봐.”
“뭐?! 그럼 나 의사 안 할래.
그럼 나 최고로 좋은 체육대학 가서 펜싱 국가대표 되어, 금메달 따고 군대 안 갈래.“
나와 Y는 호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엇을 하건 지필공부가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직업을 군대를 안 가기 위한 수단이 아닌, 살아감에서의 ‘업’에 관한 얘기로 이끌었으면 좋았을 텐데, 대한민국 학부모 모드가 바로 켜졌다.
“호제야, 최고로 좋은 체육대학 가려고 해도 지필공부 또한 잘해야 돼. 국가대표 선발전도 통과를 해야 하고. “
또다시 호제의 눈이 동그래졌다.
”뭐?!?!!!?!?! 직업은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창조해서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호제의 생각이 너무나 타당한 말이라 당황했다.
“…어.. 어… 그렇지! 그럴 수 있지. 그런 직업도 있고, 기존 절차를 밟아야 하는 직업도 있고… 호제 생각 멋지다. 호제가 어떤 일을 하고 살지 너무 궁금하다.“
호제는 호제 시대를 살아간다. 나와 Y의 학창 시절은 이미 옛이야기다. 옛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호제를 나와 Y에게 맞추질 않길 다짐해 본다.
다르다, 다르다를 오늘도 되뇐다. 호제가 생각하는 영역과 색깔은 나와 다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람살이에 관한 기본을 나누는 것. 나머지를 살아가는 건 호제가 호제 그릇 모양대로 살아갈 거다.
호제 그릇과 내 그릇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