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하기 싫어지는 집
"엄마가 정리해! 난 정리가 너무 싫어! 정리하면 짜증이 나!"
아이가 무심결에 하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별 감정 없이 "이제 정리하자!" 하며 마루에 널린 놀잇감과 책을 주섬주섬 집어 들던 찰나였다. 물끄러미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온갖 불만과 짜증이 얼굴에 굴곡을 만들며 싫은 마음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우리 집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일단 눈에 보이는 물건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도 물건이 너무 많았다. 베란다는 이미 잡동사니와 상자로 지나다니는 통로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상자를 점프해서 뛰어넘어야 창고 문에 도달할 수 있었다. 먹거리를 보관하려는 용도로 뒤 베란다에 두었던 팬트리용 선반은 뒤죽박죽이었다. 식재료든 간식이든 찾으려면 손끝의 감각을 느끼며 과자 더미를 파고들거나 보관함 안을 전부 다 헤집어야만 했다. 우리 가족은 늘 나를 찾았다. "샴푸 다 썼는데 새 샴푸 좀." "엄마! 금색 크레용 어디 있어?" 가만히 앉아 있을 새가 없었고, 온 가족이 나를 부르는 소리에 한 가지 일에 쉬이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아이가 어떤 물건을 찾아달라고 하면 짐 더미를 헤칠 생각에 한숨부터 나왔다. 꺼내기 힘들고 보이지 않는 그곳에 숨겨둔 어떤 물건의 위치는 우리 집에서 나만 알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가장 처음 떠오른 건 아이의 물건이었다. 미술학원에서 만든 그림과 만들기 작품, 어렸을 때 갖고 놀던 시기 지난 놀잇감, 잘 보지 않는 책 등 주기적으로 정리해 줘야 하는 물건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 옷장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잘 입지 않는 옷들이 구석에 처박힌 채 먼지에 덮여 숨도 못 쉬고 있었다. 모처럼 의욕적으로 밥을 해 보겠다며 머릿속에 떠오른 식재료를 겨우 찾아냈는데 유통기한이 지나 있기도 했다. 그렇게 수명을 다한 물건을 비우지 못한 채 새 물건이 들어오니 물건은 차곡차곡 쌓였다. 물건이 겹겹이 쌓이면 안쪽이나 아래쪽에 있는 물건에 시선이 닿지 않는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사라진 채 죽은 시늉하는 무명의 역할놀이를 한다. 위태롭게 쌓인 상자를 하나하나 치워가며 물건을 찾기보다 손가락을 까딱까딱해서 새로 주문하는 삶이 익숙했다. 생활이 변하면 물건의 존재 가치도 변한다. 어제 아주 소중했던 것이 오늘이 되면 의미가 없어지기도 하는 법이다. 그런데 필요 없는 물건을 그대로 방치했다. 언젠가 치워야겠다는 생각만 했지, 그걸 발견했을 때 바로 꺼내놓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또는 주기적으로 물건의 가치를 확인하고 가치가 없어졌을 때 비우는 프로세스가 없었다. 사실 변명이지만 귀찮고 하기 싫어서 미뤄뒀던 것 같기도 하다. 당장 너무 바쁘니 나중에 시간 여유 있을 때 해야겠다며 머릿속의 숙제로 남겨뒀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바쁜 일상에서 줄타기하던 중 작은 사고가 생겼다. 급히 집에 가져올 것이 있어 뛰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는데, 속력을 너무 냈는지 팔을 위로 편 채 머리를 받치며 낙하했고, 어깨와 연결된 위쪽 팔이 그만 부러져버렸다. 오른손잡이라서 무의식중에 오른팔이 앞으로 나갔겠지만, 오른팔을 다치는 바람에 내 삶은 퍽이나 팍팍해졌다. 어깨까지 이어진 'ㄴ'자 모양 깁스는 집안일 주전 선수인 오른팔을 꼼짝달싹 못 하게 묶어버렸다. 대기 타던 왼팔 선수가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왼팔 선수는 서투르기 그지없었다. 일단 젓가락질을 못 했다. 식당에 가면 아이와 나란히 포크를 받았다. 처음에는 물을 따르는 일도 쉽지 않았다. 일단 물통을 왼팔로 들어보니 그제야 물통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겠더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컵에 물을 따르자니 온몸에 긴장감이 돌고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내 머리를 묶을 수도, 아이의 머리를 묶어줄 수도 없었다. 안 그래도 비우지 못한 우리 집 베란다 한쪽에 짐이 쌓여갔다. 택배 상자와 쇼핑백, 신발장에 들어가지 않는 신발, 시기가 지나서 비우려고 꺼내둔 놀잇감과 책, 혹시 몰라 보관하고 있는 전집 상자, 보관할 때 필요할까 싶어 남겨둔 각종 신발 상자, 어디선가 받아 온 판촉 물품들. 나름 정리해 보겠다고 사둔 선반이 이미 꽉 차 반대편 창가에 물건이 쌓이고 있었다. 내가 멈추면, 아니 내 오른팔이 일하기를 멈추면 우리 집은 일시 정지가 되었다. 정리를 혼자 내 머릿속에서만 그리고 나 혼자 했기 때문이다. 정리는 온 가족의 일이다. 설령 내 오른팔이 잠시 쉬어가더라도 정리는 계속되어야만 한다.
SNS에 칼각으로 정리해 둔 사진을 보면 부러운 마음도 분명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인간미가 없어 보였다. 늘 시간 부족에 쫓기는 나는 저 삶을 유지하기 위해 비효율적인 시간 소모가 있지는 않을지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100% 완벽하지 않아도 1%, 아니 10% 정리가 부족해도 살기 편한 정도의 수준으로 정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만 하던 참에 이제는 정리를 하라는 계시인지 누군가가 '정리수납전문가' 강의를 같이 듣자며 링크를 건넸다. 머릿속으로만 맴돌던 정리 프로젝트는 그 강의로 급작스럽게 시작됐다. 실행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고 생각을 오래 했을 뿐이다, 라고 믿고 싶다. 생각을 정리해 주는 촉매제가 마침 나타나 주어 속도가 붙었다. 한때는 필기의 여왕, 정리의 여왕이라는 이름으로 날리기도 했는데 내 삶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시 명예를 회복하기로 했다. 이번 프로젝트명은 "정리가 즐거운 우리 집"이다. 아이도 나도 남편도 스스로 정리하며 성취감을 느끼고 정리된 삶을 누리는 것이 목표다. 집을 쪼개서 한 번에 한 놈씩 잡아볼 것이다. 혹시라도 나랑 같은 처지에 있다면, 이렇게 느긋하게 정리하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면 나와 같은 속도로 함께 해도 좋을 것 같다. 성미가 급해 느린 속도로 정리하기가 답답한 사람이라면 일단 재미로 읽고 나중에 한꺼번에 정리해도 괜찮을 것 같다. 어쨌든 이 시리즈는 비전문가의 정리 일지이기도 하고, 각자의 사정은 다 다르니 참고만 하기를 바란다(사실 정리수납전문가 자격증 발급 비용이 높아 발급받지 못했을 뿐 테스트는 통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