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도 공부해야 하나요

정리의 원칙

by 하늘빛

한때 나도 정리라면 자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내 물건과 내 공간은 스스로 정리했다. 주기적으로 방을 통째로 엎어서 정돈하고 나면 머릿속도 정리되고 깔끔해졌다. 그런데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내 물건이 아닌 다른 가족의 물건, 공동으로 쓰는 물건까지 정리하다 보니 내 물건을 정리하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였다. 규모가 커지니 정리 한 번 하기도 힘들뿐더러 나만의 기준으로는 정돈된 상태를 오랜 기간 유지하기 힘들었다. 더구나 일이 바빠지고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가자, 정리는 점점 뒷전이 되었다. 흐트러진 물건에 '흐린 눈'을 하고 몇 번 지나가다 보니 우리 집은 걷잡을 수 없이 혼돈의 상태에 빠져들었다. 볼 때마다 '저거 정리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은 들어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지만, 도저히 손을 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눈을 괴롭히는 저 짐 덩어리를 정리하기 시작하면 오늘 해야 할 일은 손도 못 대고 하루가 지나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그렇게 산처럼 쌓인 짐 덩어리와 쓰임새를 잃은 채 방치되어 있던 제각각 물건들이 목소리를 낮추고 생명력을 잃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유튜브를 뒤적였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정리를 하고 있었다. 이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지다가도,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는 유튜버의 이야기를 들으면 또 마음이 혹했다. 알고리즘을 타고 내 눈앞에 나타난 정리 관련 콘텐츠를 샅샅이 살폈다. 반복되는 이야기도 나오고 또 상반되는 이야기도 많았다. 너무 많은 콘텐츠를 봤는지, 머릿속이 혼란해졌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옷장을 찔끔 뒤적이다가, 아이 책상 곁에 둔 트롤리를 정리하다가, 베란다를 치우다가 방향을 잃고 말았다. 그때 번개가 번뜩이는 것처럼 누군가가 나에게 귀한 링크를 하나 보내줬다. 온라인으로 수강할 수 있는 '정리수납전문가' 과정이었다. 짜임새 있게 정리된 콘텐츠를 차근차근 들으니, 머릿속이 정리되고 원칙이 바로 섰다. 정리에도 순서가 있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버리기'였다.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린 후에야 정리할 공간과 물건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청소도 할 수 있었다. 깨끗하게 비워낸 공간이 있어야 물건의 자리를 찾아주는 수납의 단계에 돌입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돈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물건을 새로 들이기 전에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고민하는 과정을 거치고, 새로운 물건을 들이기로 하면 자리를 마련하고 환영할 준비를 해야 한다.


| 정리의 순서


1. 버리기

정리의 시작은 '비움'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1단계인 버리기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이것저것 버릴 게 많다는 생각에 신이 나기 시작했다. 버리고 나면 우리 집에 공간이 많아져서 정리하기가 한결 수월해질 것 같았다. 먼저 서랍을 열었다. 뒤적뒤적 버릴 게 없나 찾아보는데, 막상 버리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버릴지 말지를 결정하는 내 마음의 문제가 컸다. 그래서 또 공부하기 시작했다. 버리는 것도 방법이 있었다. 가차 없이 버려야 할 물건, 버릴지 말지 고민되는 물건, 보유할 물건을 구분하는 기준을 세워야 했다. 어느 공간부터 시작할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효율적인 진행에 도움이 됐다.


2. 청소

버리고 나면 보이는 것이 있었다. 먼지였다. 물건이 많으면 청소하기가 쉽지 않기에 먼지가 틈새를 파고들었다. 청소를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꼭 필요했다. 또, 공간을 비우고 나면 그 공간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보이지 않아서 쓰지 못했던 물건도 발견했다. 소비기한이 지난 것도 있고, 시기가 지나서 더는 쓸모가 없어진 것도 있었다. 이 과정을 거치며 물건을 알차게 쓸 수 있는 수납 방식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현재 수납 방식의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비운 공간을 깨끗하게 다듬고 그 공간의 규모와 쓸모를 인지하는 단계가 선행되어야 다음 단계에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다.


3. 수납

정리의 핵심 단계이다. 모든 물건에 이름을 붙여주고 제 자리를 찾아준다. 물건에도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면 쉬웠다. 숨 쉴 공간만큼의 여유를 주고, 어둠 속에 갇혀 영영 빛을 못 보는 일이 없도록 배치한다. 영역을 서로 다투며 몸싸움하지 않도록 공간을 구분한다. 수납하기 전에 비슷한 물건끼리 모으면 분류가 쉬웠고, 필요한 공간의 크기를 가늠하기도 좋았다. 중복되는 물건 중에 필요 없는 것을 골라낼 수도 있었다. 물건을 수납할 때는 꺼내고 넣기 편리하고, 기억에서 사라지는 물건이 없으며, 가족 누구나 찾을 수 있게 보관하는 것이 중요했다. 물건의 제 자리를 정할 때는 사용하는 가족 구성원의 동선과 사용 빈도, 공간의 크기를 고려했다. 일반적이지 않은 기준도 내 생활패턴에 맞다면 과감하게 실험해 봤다. 시험 삼아 배치해 보고 생각처럼 편리하지 않으면 다른 방식으로 바꿔 보는 유연성도 필요했다.


4. 구매

일단 정리가 어느 정도 되면, 물건을 구매할 때 선뜻 결제 버튼을 누르지 못하게 된다. '이 물건을 사면 어디에 두지?' 물건을 둘 자리를 못 찾으면 망설이게 됐다. 특히 규모가 있는 물건을 구매할 때는 반드시 자리를 먼저 마련했다. 소모품의 여분은 보관하는 공간에서 여유 공간을 확인하고 재고 순환 기간을 고려해 적절한 시기에 맞춰 구매한다. 싸다고 대량으로 구매했다가는 베란다에 짐 덩어리로 쌓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따지기 복잡해지니 물건 구매도 현저히 줄었다. 개인적으로 화장실용 두루마리 휴지는 절대 떨어지면 안 되는 물건이라고 생각해서 늘 재고를 주의 깊게 살피는데, 조급하게 사지 않아도 두루마리 휴지가 똑 떨어져 난감해지는 일은 아직 생기지 않았다. 집에 필요하다고 여기는 물건이 생기면 정말 필요한지 신중하게 생각한다. 먼저 메모장에 사야 할 물건 목록에 적어두고, 여러 번 필요성을 느끼면 그 물건은 구매해도 후회가 없다. 물건을 지나치게 많이 사 두면 공간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소비기한이 지나 처분하는 수고를 들이기도 한다. 구매할 때 고민을 많이 하면 꼭 필요한 만큼의 물건을 제때 살 수 있어서 효율적인 물품 운영이 가능해진다. 결국 적게 사야 정리가 수월했다.



이렇게 정리의 순서를 따르면 정리가 완료된다. 정리 전문업체를 부르면 아마도 집 전체를 이 순서에 따라 진행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천천히 조금씩 나눠서 정리할 계획이라서, 이 정리의 순서를 공간별로 작게 잘라서 진행했다. 예를 들어 "내 옷"을 정리하기로 했으면 "내 옷" 카테고리에서 버리고, 내 옷장을 청소하고, 살아남은 옷을 수납했다. 이 순서를 모두 거친 후 아이 옷장, 그다음은 아이 책장 등 다른 카테고리로 넘어갔다. 한 카테고리를 완벽하게 정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조금씩이라도 사용하기 편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다음에 다시 한번 정리해도 된다고 다독이며 완벽하게 정리하려는 생각을 접었다. 그러면 정리에 대한 부담이 줄어 움직일 수 있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정리의 순서 각각에서 좀 더 도움이 될 만한 원칙과 팁을 나누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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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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