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_모범생의 저주, 공부에 대한 극단적인 강박증
내가 생각하는 병의 원인은 수면부족과 영양부족, 극심한 스트레스와 외로움이다.
오랜 바이올린 연습으로 비대칭적으로 압박이 가해지는 자세, 공기 오염이 있는 날에도 맨날 달리기 운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운동을 했던 것,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운동 밖에 없어서 폐를 고문하는 수준의 달리기를 했던 것, 3년 동안 공부하느라 하루 5시간 밖에 못 자던 것
살이 갑자기 5kg가 쪄서 앉아서 공부하기가 힘들자 탄수화물을 거의 안 먹고 채소만 먹고 지냈던 것, 점심을 먹으면 수업 시간에 존다는 이유로 에너지바 하나만 먹었던 것, 이렇게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험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정작 나는 몰랐다.
공부에 대한 극단적인 강박증, 몸보다 학점 결과를 우선시하는 생활, 몸이 고통을 토로하는데 정신력으로 이겨내야 한다며 무시하는 태도.
여자는 날씬해야만 한다는 생각, 적당히 마른 것이 아니라, 지방이 하나도 없도록 여리여리한 몸매를 유지해야 한다는 외모 강박도 영향을 끼쳤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내가 스키니진 밖에 안 사줬다. 통이 큰 옷을 입으면 살이 찐다고 말이다.
그리고 정신력에 대한 과한 신뢰, 맨날 아프다고 누워있는 환자를 정신력이 약한 것이라 치부해 버리는 상황, 나는 그런 평가를 받고 싶지 않았다. 한 번도 아파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금방 회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쉬어본 적이 없다.
완벽한 딸의 모습에 강박이 있는 엄마는 나를 정서적으로 굶겼다. 아이의 기준에서 잘한 것에 대해 칭찬해주지 않고, 어른이 봤을 때도 괜찮아야 잘한 것이다. 사람이 유년기에 성장을 하며 적절한 인정욕구를 충족받으며 자라야 하는데, 그 부분에 큰 구멍이 생긴 채로 성장했다.
나의 행복, 나의 만족, 같은 공부와 삶의 목표를 생각하지 못하고, 엄마한테 인정받는 것만을 목표로 살아왔다. 엄마가 바라는 운동도 잘하고, 음악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그런 만능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나는 만화 속 주인공처럼 살았다.
이것은 모범생의 저주이다. 차라리 부모의 기대를 만족시킬 가능성 자체가 없는 모자란 사람이었다면, 일찍이 서로 인정받기를 포기해도 되는 관계였다면,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정신적 고문이 이어져오진 않았을 것 같다. 이것은 동생한테도 안 좋은 영향을 미쳤는데, 엄마는 나만큼 실력이 따라와 주지 않는 동생을 나와 비교했기 때문이다.
그런 엄마와 24시간 함께 있어야 하는 한국에서의 생활은 쉬어도 쉬는 것이 아니었다. 집에 있는 것보단 일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입시가 끝나고 대학교에 입학하기까지 남은 시간 동안에는 명동에 있는 백화점에서 중국어 고객을 상대하는 판매 직원으로 8시간씩 서서 일을 했다.
나는 병을 잊고 싶었다. 후유증과 고통을 무시함으로써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픔에 집중하고 있으면,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지게 될까 봐 취한 조치이기도 했다.
수술한 지 벌써 6개월이 지났을 때니 대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나를 빨리 정상인으로, 아프기 전 상태로 되돌려 놔야 한다고 생각했다. 절대로 수술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는 운전면허를 땄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연애도 했었다. 어떻게 아픈 사람이 그렇게 하루도 안 쉬고 일들을 벌였는지 지금 다시 돌아봐도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