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_놓쳐버린 회복 황금시기
나는 수술 직후에 총 8번의 비행기를 탑승했다.
한국으로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청화대 면접을 준비하고 보기 위해 하얼빈으로 돌아가야 했다.
학교에 도착해서 선생님들과 면접 연습을 하고, 하얼빈에서 또 북경으로 면접을 보러 비행기를 탔다.
사실 비행기였는지 기차였는지 생각이 안 난다. 나는 정말 지쳤고, 고통스러운 기억은 벌써 머리에서 삭제시켜 버린 것이다.
몸은 회복도 안 됐는데 나에게 부여되는 일들은 일반의 학생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오랫동안 준비해 온 입시이고,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몸을 회복하는 것에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만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이 후유증도 모두 없어질 것이라 생각했고, 관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하얼빈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다시 북경대 시험을 보러 북경으로 가기 전, 복단대에 붙었다는 면접 결과가 나왔다.
북경을 가려면 비행기표를 예약해야 한다는 선생님 말에 나는 또 비행기를 타느니 북경대 시험을 포기했다. 나는 어차피 북경대를 갈 실력이 안된다고 생각했고, 몸에만 더 무리가 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아프지만 않았으면 그래도 마지막 시험까지는 도전하기 위해 북경대 시험에 도전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남들보다 입시를 빨리 마쳤으면, 집으로 돌아가서 회복에 전념했어야 하는데, 기숙학교의 학비가 비싸다는 생각에 집에 간다고 해서 환불받을 수도 없으니 학교에 계속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졸업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집에 가봐야 챙겨주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밥을 해주는 것이 그렇게 좋았다. 나의 엄마는 전업주부여도 요리하는 걸 싫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까운 시간을 폐쇄적인 학교에서 보내며, 관리받고 몸을 회복할 황금시기를 놓쳤던 것 같다.
후유증이 생기지 않도록 안마를 받고, 몸이 굳지 않도록 잘 스트레칭하고 운동을 하는 재활 하는데 더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수술 후에 몸을 관리하는 법에 대해 몰랐다. 젊었기에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고, 아무도 알려주지도 않았다.
주변에서도 겉보기에 너무 괜찮았기 때문에 이제 다 괜찮아진 것이냐 물었고, 나는 빨리 정상인으로 돌아와야만 할 것 같았다.
내가 아프다고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 통증들을 무시하지 않고, 스스로 돕는 것이 필요한데, 그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