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한국은 대학병원은 늘 사람이 많고 수술 접수를 해도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
나는 내가 이렇게 젊은 나이에 수술을 해야 할지 예상도 못했는데, 몇 달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는 건 부모님과 나에게도 충격적인 상황이었다.
거기에 기흉은 당장 숨을 쉴 수 없는 응급상황이 아닌 이상 암 같은 질병보다 후순위로 밀리기 십상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엠블런스를 불러서라도 응급환자로 처리되어 수술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는 사실 이때까지 한국의 의료 시스템을 순수하게 믿고 있었다, 병원에만 가면 언제든지 치료받을 수 있고, 암이나 몇몇 불치병을 빼면, 모두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판단하에 잠을 줄이고 무리를 하면서도 만약에 내가 아프게 되면 병원에서 치료해 주면 되니까라며 안심을 하고 온몸과 정신을 쏟아가며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병원에게 배신을 당한 느낌이었다.
다행히 같은 교회를 다니는 분 중 대학병원 선생님이 계셨고, 수술을 끼워 넣어 잡을 수 있었다.
엄마는 이것이 신의 은혜라고 말하지만 나는 불법이 아닌가 여전히 의문을 풀지 못했다.
대학병원 병실에는 자리가 없어서 나는 가장 비싼 VIP 1인실에서 수술 하루 전 시간을 보냈다.
교회 분들은 오셔서 기도를 해주셨고, 나도 그때는 기독교 신앙이 아주 철저했기 때문에 어떤 걱정도 없었다.
입시도 어떻게든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이것은 근거는 없었다.
그저 신이 이토록 노력하고 신에게 영광 돌리려고 금욕적으로 사는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입시가 1달 정도 남았을 때 나는 수술실에 들어갔다.
수술은 비디오 흉강경 폐쐐기 절제술로 기흉의 원인이 되는 기포가 있는 폐쐐기 부분을 미리 제거하는 수술이었다.
5,4,3,2,1 나는 순식간에 잠들었다. 수술실에는 수술하시는 의사와 간호사만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여성 기흉 환자가 적은 케이스였기 때문에 레지던트들도 들어와서 구경했던 걸로 가물가물하게 기억을 한다.
잠에서 깨어 일어나 보니 간호사가 아프지 않냐고 물어보자 나는 안 아프다고 답했다. 이것은 나중에 큰 문제를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