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_신에 대한 분노
이번에는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서 시술을 먼저 받았다. 달랐던 점은 미숙한 레지던트가 시술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응급실에 커튼이 한 막 쳐지고, 평소에 맞는 주사보다는 깊고 많은 양의 액체가 부분 마취를 위해 몸 안으로 들어왔다.
응급실 수술대 위에 나는 실험용 쥐였다. 시술은 전신마취가 아니라 모든 과정을 내가 볼 수 있었다.
응급실은 바빴고 레지던트들이 경험을 쌓는 곳이었다.
간호사는 레지던트에게 퉁명스러웠으며 답을 알면서도 혼자서 찾아내야 한다며 레지던트가 내 살 속을 뒤적거리는 것을 놔두었다.
환자의 입장은 전혀 고려해주지 않고, 나는 거기에 존재하지만 마치 의학연습을 위한 시체가 된 기분이었다.
어디까지 꽂아야 하느냐고 묻는 레지던트에게 더 깊이 확 꽂아 넣야 한다고 간호사는 말했다. 계속 못 찾겠다는 레지던트의 손을 잡고 호스를 간호사가 폐에 닿을 때까지 밀어 넣었다.
내가 무서워하면 그 감정이 레지에게 전달될까 봐 티를 낼 수 없었다. 시술이 끝나고 내 자리로 돌아와 커튼이 닫혀서야 울면서 불평할 수 있었다.
환자의 입장은 생각도 안 하는 거냐고 나도 눈뜨고 다 듣고 있는데.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울렁거린다.
레지던트가 꼽아준 관을 꽂고 나는 제발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되기를 하나님에게 기도했다.
엑스레이 결과를 기다리며 불안함에 접수표 종이를 찢어 학을 접었다.
결과는 또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 5%의 확률을 뚫고 또 기흉이 재발된 건지, 지금은 과로와 불안증 때문일 것으로 예상하지만, 그때에는 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폐가 또 터져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의 병이 나의 도덕적인 잘못과 인과관계가 없고 그저 일어난 걸 알지만, 인간은 무엇이든 이유를 붙여야 마음이 편한가 보다.
나는 옆에 있던 엄마를 탓했다. 나를 그렇게 최고가 되라고 몰아붙이고 불안하기 만들지만 않았어도, 있는 그대로 좀 사랑해 줬으면 내가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거라고 그동안 숨겨온 증오를 드러냈다.
신에 대해서도 나는 완전히 돌아서게 되었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첫 기흉에 누구보다 신의 준비성에 대해 감탄하며 신을 믿으려 했지만, 두 번째 기흉에 신 따위는 없다며 완전히 등을 돌렸다.
신이 있다면 복음을 전파하려고 퇴근해서도 기독교 인스타를 운영하던 나를 폐가 터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해 줬을 테니까.
배신감에 은혜도 모르는 신 같은 건 버리고, 탕자가 되기로 결심했고 그동안 신 때문에 못하던 것을 맘껏 하기로 마음먹었다.
성경에서 병은 신의 저주였다. 그리고 신은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 등을 자신이 결정하고 만들었다고 말한다. 난 신의 결정에 분노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