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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풍선 Oct 15. 2024

자본주의와 쉬지 못하는 나

12화_I'm not okay

그렇게 마음속에 많은 변화가 있는 와중에 나는 수술이 끝나고 몇 주만 지나고, 난 전혀 괜찮지 않음에도 인턴 업무에 복귀했다. 


웃고 있지만 내가 괜찮음을 강함을 증명하기 위한 웃음이었다, 병으로 인해 내 가치를 떨어뜨려서는 절대 안 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수술 후에 맘 편이 쉰 적이 없는 것 이것은 계속해서 반복되는 나의 가장 큰 오류이자 강박이었다. 


난 사람이 노동력으로 치부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픈 나 자신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프다는 것은 노동력을 상실했다는 것이고, 무가치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회는 내가 아프면, 다른 건강한 젊은 사람으로 나를 너무 쉽게 대체하고,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다. 나는 급작스럽게 가난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되었다. 


나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걱정들로 고통스러웠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아프기까지 하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건지 이 세상이 다른 시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애를 하고 사람에게 아프다는 이유로 버림받을까 봐 앞으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데에 영향을 미치게 될까 봐 공포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수술하고 정말 얼마 안 되었을 때도 예쁘게 옷을 차려입고 연인을 만나러 나갔었다. 이 병을 이겨낼 수 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정신력을 보여주었어야만 했다.




멀어진 우수한 엘리트의 꿈은 나를 죽고 싶게 만들었다. 매일매일 너무 아파서 눈을 뜨고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무서웠다. 


몸을 일으키는 과정부터 문제였다. 왜 일어나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몸이 침대에 달싹 붙어서 움직일 수 없는 날들이 있었다. 


몸이 고통으로 모든 도파민을 소진해서 몸하나 까딱할 수 없는 날도 경험했다. 오르막길을 좀만 걸어도 숨이 차고 계단은 끔찍했다. 내 몸상태는 생각보다 안 좋았지만, 그래도 더더욱 멀쩡한 척 회사에 출근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너무 불쌍하다. 자신의 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뭐가 있다고, 무지가 고통을 가중시켰다. 


안타까운 것은 내 주변에 정말 모든 사람이 기독교인이다. 기독교인들은 정말 좋은 사람이다. 그들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너무 신의 뜻을 중시하다 보니 개인의 아픔을 살피지 못하는 오류를 자주 범한다. 다녔던 고등학교가 기독교 학교였기 때문에 선생님도 친구들도 기독교인이고, 내가 다녔던 회사도 기독교 회사였으며, 내 가족도 모두 기독교인이다. 


혼자 인턴을 하러 가서 사귄 친구들도 교회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예외가 없었다. 병에 두 번이나 걸리고 나서야 태어났을 때부터 믿던 신이 정말 존재하는지에 대해 의심하게 되었다. 


신은 나를 이렇게 대해서는 안 됐다. 하지만 나는 이런 나의 의견을 터놓고 말할 곳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나를 더 화나게 한 것은 같은 교회에 다니던 언니는 내가 말씀을 더 읽어야 안 아플 수 있다며 수술 후유증으로 아파 죽겠는데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부모님도 아프다고 하면 내게 기도하라고 하거나, 설교말씀 링크를 보냈다. 이런 때일수록 기도하고, 회개해야 한다고, 나를 죄인취급했다. 다들 아픈 사람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프다는 말을 듣고 싫어했다. 아프다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자기가 아파지는 것도 아닌데,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외면당했다는 것이 깊은 상처로 남았다.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고통에 무지해서 진통제만 먹으면 다 괜찮은 줄로 안다. 병원에서 특별히 추가로 받아온 마약성 진통제도 나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지는 못했다. 



내가 기흉이 걸린 이유를 가족들은 진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한약을 먹을 것만 강요당했다. 정말 맛이 없는 한약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 약을 안 먹으면, 내가 아픈 것이 내 탓이라는 듯 말한다. 


책임을 지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내가 아픈 원인을 서로에게 떠넘기기 바빴다. 내가 한약을 먹어서 얻는 효능보다 스트레스로 얻는 불이익이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빠가 당뇨가 있으셔서 잡곡밥을 먹는데, 환자인 나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쌀밥에 부드러운 음식과 지방류의 살이 잘 찌는 음식들을 먹어야 하는데, 아빠와는 극단인 식단이기 때문에 부모님은 모두를 위해 요리할 수는 없다고 했다. 


불만이면 내가 해 먹으라고 하는데, 손쉬운 한약은 억지로 먹이면서, 노력을 더 해야 하는 음식은 하고 싶지 않아 한다. 나는 어디 양로원에라도 들어가서 몸을 회복하고 싶었다. 


내가 일을 안 하고 쉬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집에 있어도 도무지 쉬는 느낌이 안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쉬면 다른 가족들이 일해야 했고, 이것은 나를 부담스럽게 했다. 


환자 자격을 부여하지 않고, 빨리 회복하기만을 기다리는 집에서 나는 쉴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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