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은
*6년째 우울증을 돌봐오고 있고 어쩌다 전재산도 날렸지만 열심히 살아보려 노력하는 저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살아 있다는 느낌은 어떤 걸까? 우울증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과거의 상처들에 압도되어 나는 내가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온전히 느낄 수 없었다. 흩어져 없어질 것 같은 느낌을 종종 받았고, 그 정도로 나의 존재감은 나에게 있어서 미미하고 하찮은 그 어떤 존재였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지금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아니, 그러려 노력하고 있다) 지금 내 자존감이 어떤지, 얼마나 올라갔는지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달라진 점이라면 달라진 점이다. 과거 다른 사람에게 자존감이 높아 보이는 사람으로 비치고 싶었던 나를 생각해 보면 큰 변화이다. 그렇다고 아주 통찰이나 해탈을 한건 당연히 아니고, 그보다 나 자체에 더 관심을 갖는 시간이 많아진 거다.
내가 달라지게 된 건,
어쩌면 나도 조금은 쓸모가 있는 사람일지 모른다는 가능성과, 그리고 이전에도 말씀드렸듯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되면서부터다.
무료 마음공부수업을 듣게 된 뒤로 조금씩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나 같은 경우 MMPT) 쉽게 말하자면 '명상'인데, 나는 명상이라는 걸 태어나서 처음 해봤다. 의심이 워낙 많은 성격이라 시간낭비에 큰 변화를 기대하지 않았고, 눈을 감는다는 것 자체도 불안해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나는 뜻밖의 몸이 편안해지는 걸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몸명상이라는 건, 차분하게 바르게 앉아서 나의 온몸 구석구석을 세포들의 촉각을 곤두세워 들여다보는 시간인데, 이때 나는 비로소 내가 지금 현재 '여기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정수리, 이마.. 미간 사이, 눈썹, 눈 안의 동공이 굴러다니는 느낌 등 찬찬히 나의 온몸을 돌봐주고 '그래, 네가 거기에 잘 있었구나'라는 마음을 갖게 된달까?
셀 수 없는 세포들로 구성된 우리 몸이라는 걸 생각하게 되고, 긴 우울의 시간 동안 여전히 '나를 위해, 살기 위해 세포들이 움직여주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처음으로 온전히 나에게 내가 고마운 순간이었다. 나도 나에게 이렇게 열일 중인데 여태 내 마음이 나의 몸을 존중해주지 못하고 있었구나, 신경 써주지 못하고 있었구나를 나는 걸 알게 됐다.
꼭 MMPT가 아니더라도 마음이 힘든 분들에게 권하고 싶을 정도로 나에게는 명상이 도움이 되었다. 운동도 좋지만 '명상'이라는 걸 한 번쯤은 시도해 보시는 걸 말씀드리고 싶다. 잡생각이 나면 나는 대로 '내가 지금 이런 고민들이 있구나'하고 인정해 주는 시간이 된다. 무엇보다 내가 나에게 뭐라고 하질 않으니 잠시나마 자책에서 해방되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내 마음을 내가 공격하면, 또 다른 내 마음이 나를 지켜주곤 한다 (내속엔 내가 너무도 많다 ㅎㅎ)
그래서 문뜩 자해를 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보통 자해를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느끼기 위해 하는 거라 들었는데(고통과 아픔으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명상도 어떤 면에서는 충분히 그런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자해로 고통받고 계신분들에게도 명상을 권해드리고 싶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그리고 마음을 추스르면서 사회적으로 효용감을 깊이 원하던 나는(사회에 도움이 되어 나도 가치가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느끼고 싶어) 다른 도전을 시도해보기도 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린 이야기지만) 요즘 여성창업지원센터에서 교육지원사업이 즐비한데, 감사하게도 작년 중순즈음 나에게도 센터의 창업수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초반 수업시간에 내가 여태까지 뭘 해왔는지를 쭉 적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유치하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적지 않게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분야는 각기 달랐지만 하여튼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큰 틀 안에서 5년 5개월이라는 시간을 일 해왔고, 그동안 대박을 터트린 제품 디자인도 있었고, 영 소비자 반응이 시원치 않은 제품도 있었다. 덕분에 다양한 디자인 업무를 맡으며 할 수 있는 범위가 늘었고(웹디자인/ 브랜딩/ 제품/ 그래픽/ 촬영/ 편집 등), 지금은 경력이 끊겨 (6년 차 경단녀) 손이 굳어버렸지만 지난 나의 경력들이 깡그리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블로그에서 인플루언서로 활동을 하고 있고 고맙게도 진심 어린 댓글도 가끔 달려 꿀맛 같은 효용감을 느끼기도 한다. 여전히 타인의 인정이 중요한 나라서 괴롭지만, 온전히 내가 나를 인정하는 순간을, 그 순간을 기뻐할 때를 기다려본다.
나라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진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던 나라서 이런 시간들이 누구에게도 말은 못 했지만 소중하고 감사하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해 보았다.
건강주스를 만들어먹기, 남편과 눈 마주치고 이야기하기, 사랑한다고 남편에게 말해주기, 아침마다 남편 옷 챙겨주고 머리 해주고 선크림 발라주기, 남편과 마트에서 장보기, 쨍한 날 산책 가기, 브런치에 글쓰기, 블로그 1일 1 포스팅하기, 영화 보기, 김에 밥 싸 먹기, 콩나물국, 명상으로 잠들기, 따듯한 차 마시기, 두유, 아침에 잔잔한 피아노 유튜브 듣기, 졸린 점심에 커피 한 잔, 세수 정성 들여서 하고 얼굴 괄사마사지하기(피부에 맞는 분들만 추천/ 안 그럼 주름생김) 등이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남편이 내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었구나를 깨닫게 되었고 (일전에 이혼 예비자이니 뭐니 떠들어댔는데ㅋㅋ) 혼자서 차분하고 조용하게 보내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동굴시간이 필요한 건 남자고 여자고 필요한 사람에겐 '꼭' 필요한 것 같다.
잠시 지금의 내 자존감을 생각해 보면,
온전하게 나 스스로를 내가 인정하는 느낌은 아니지만 그런 생각은 든다. 누군가의 시선으로 내가 결정될 순 없다는 사실만큼은 마음 한편에 꼬옥 붙들고 놓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전처럼 조바심이 크게 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맞춰 살아가다 이렇게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니 그렇게 안정감이 들 수가 없다.
또, 과거 외향적인 성격의 두꺼운 가면을 쓰고 있던 나도 나였고, 그 가면을 벗고 휴식을 취하는 지금의 나도 내가 맞았다는 걸 알게 되니 공허했던 마음이 조금은 보상받는 느낌이랄까.
당연히 해결되지 못한 것들도 아직 많다. 회피형 불안정애착인지, 혼란형 불안정애착인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나와 엄마라는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지 아직도 고민이고, 타인을 어떻게 믿어야 할지도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브런치 책 제목처럼 '괜찮다'. 해결이 되던 되지 않던 나는 성장을 위해 조금씩 노력할 거고 나를 더 잘 알기 위해 노력할 거니까 말이다. 포커스를 나에게 두니 한층 여유가 생기는 느낌.
과거를 그저 과거에 두고 오기 위한 나의 몸무림은 쉽지 않지만, 상당 부분 정리가 되어 비교적 마음이 안정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현재를 살아가고 싶은 욕구가 생긴 것만 해도 감사하다. 나와 비슷한 환경에 있는 분들에게 괜찮으니 잠시라도 나만을 위한 진짜 편안한 시간을 꼭 가지시라 말씀드리고 싶다.
우리 모두는 지금 여기,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