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몬 카사스의 <무도회가 끝난 후>
한국인이 드문 유럽의 어느 소도시에서 한국어로 된 책을 읽고 수다 떨 친구를 찾는 사람의 외로움과 고독을 당신은 아는가.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책장을 넘길 때 서걱이는 짜릿한 물성을 즐기며 좋아하는 책과 작가에 대해 영어도, 네덜란드어도 아닌 한국어로 침 튀기며 토론할 친구를 찾지만, 난 그저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한 마리의 외로운 하이에나일 뿐이다.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이고 싶지만, 네덜란드 소도시는 올라갈 산은커녕 언덕도 없이 그저 평평하기만 하다.
한국인이 드문 유럽의 어느 소도시에서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의 외로움과 고독을 당신은 아는가. 외국어로 둘러싸인 환경에서도 눈 감고도 한글 자판을 칠 수 있는 내 손가락은 고집스럽고도 빠르게, 그리고 외롭게 한글을 두들긴다. 문서 창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내 한글은 나 이외에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남편의 한국어는 내 글을 이해할 수준이 아니다. 그렇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 내 글쓰기 노동은 인터넷 너머로 발화되기 전까지 그 가치를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
책 얘기도 같이할 사람이 없는 마당에, 만나서 같이 글을 쓰고 싶다는 소망은 그야말로 언감생심, 오르지 못할 나무다. 대도시에서 살았다면 달랐을까? 그나마 지금보다는 쉽게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었을까? 그리하여 난 자주, 꽤 자주 SNS를 기웃거린다. 오르지 못한다고 쳐다보지도 말라는 건 폭력이다. 난 ‘네덜란드’, ‘책 모임’, ‘글쓰기 모임’, ‘문학’ 등의 검색어를 치며 이른바 문우(文友), 즉 ‘글로써 사귄 벗’을 찾아 헤맨다. 인터넷이라는 현대 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숨어있는 누군가를 찾는 정도의 노력은 해야 외롭다는 내 투덜거림이 한갓 중년 아줌마의 징징거림으로 치부되지는 않을 것 아닌가. 네덜란드 내에서 기차로 30~40분 거리라면 어디든 달려가겠으니 (교통비가 꽤 비싼데도!) 제발 나타나기만 해라는 심정으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스레드 등을 스크롤 한다.
비록 맨-투-맨의 결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덕분에 난 한국은 물론 프랑스, 스페인, 독일, 미국 등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사이버 인연을 만들 수 있었다. 화상 미팅으로 한 달에 한 번 독서 모임을 하고, 매주 수요일 아침에 창작 모임을 한다. 창작 모임은 화상 미팅의 화면을 켜 놓은 채 정해진 시간 안에 각자가 목표한 창작 활동을 한 후 서로의 결과물에 피드백을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한국어로 나누는 책 얘기, 창작 얘기는 달고나처럼 달콤하다. 해외에 살며 끈질기게 지속하는 창작자의 삶에 대한 얘기도 오간다. 느슨한 모임이지만 이런 대화와 피드백은 ‘느슨해진’ 내 창작욕에 긴장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는 나와 웹진 <장르불문>을 공동으로 발행했던 호연과도 마찬가지다. 호연은 현재 캐나다 퀘벡에서 살고 있다.
올해 초, 불현듯 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날 덮쳤다. 따귀를 맞듯 짜릿하고 얼얼한 욕망이었다. 아마도 내 개인사를 에세이에 담는 것에 슬슬 흥미를 잃어가던 차였기 때문이었을 거다. 반복되는 여행 얘기, 육아 얘기, 해외 생활 얘기... 에피소드가 고갈된 예능인이 된 것 같은, 계속 우려내 맹물 맛이 나는 티 백이 된 느낌이랄까. 작법서 몇 권을 읽었다. 플롯 짜는 법, 인물 구축 법 등 전반적인 기술이 쓰여 있었지만 여전히 모든 게 몇 번 휘저으면 사라질 담배 연기처럼 모호했다. 난 작법서를 덮고 소위 소설의 ‘소’ 자도 모르는 일자무식의 용감함만 들이밀며 무작정 썼다. 소설에 대해 나보다 훨씬 많은 지식과 경험이 있는 호연의 존재가 새롭게 다가왔다. 그는 친절히 여러 샘플도 보내주고 팁도 알려줬다. 사포처럼 거칠기만 한 단편소설 초고를 그에게 보냈다. ‘당신 시간 될 때 이것 좀 봐줘요.’ 몇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누군가에게 클릭 하나로 파일을 보낼 수 있는 현대 기술은 얼마나 신기하고 감사한가. PC 통신의 시작을 생생히 기억하는 내게 지금의 기술은 여전히 새삼스럽다. 호연의 정성스러운 피드백 역시 현대 기술을 통해 날아왔고 그건 꽤 큰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난 절대적으로 통신 기술에 의존해 ‘문우’의 끈을, 아니 나아가 내 정체성의 8할인 한국을 붙잡는다. 인터넷이 없는 세상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나의 한국은, 나의 한국어는 오로지 내 노트북 모니터 속에서만 존재하므로. 그래도 문득, 아니 종종, 화면 속 작은 사각형 안에 있는 저들이, 실루엣을 따라 블러 처리된 뒷배경에 섞이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저들이, 내가 만든 환상이 아닌 어딘가에 엄연히 존재하는 실체라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따뜻한 손을 잡고, 들숨 날숨이 일으키는 공기의 파장을 느끼고, 마이크가 아닌 공간을 뚫고 귀에 꽂히는 소리의 웨이브를 캐치하고 싶다. 난 여전히 표범이 되지 못하고 산기슭을 외롭게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인 거다.
어쩌다 이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를 자문하면 자괴감의 늪에 빠지기에 난 최대한 생각 버튼을 끄고 본능적으로 살려고 노력한다. 해외에서 살기에 아주 유용한 기술이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한국어로 글을 쓰려는 내 발악은 결국 내 자신을 지키려는 생존과 방어 본능에 기반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다시 한번 인터넷을 통해 구축된 이 관계의 소중함을 느낀다. 이는 내가 한국어로 글을 쓰는 작가라는 정체성을 증명하는, 그리고 지켜주는 유일한 동아줄이다. 평평한 이곳 네덜란드에서는 난 결코 작가가 아니다.
아래의 그림을 보자. 스페인 출신의 화가 라몬 카사스(Ramon Casas 1866-1932)의 1899년 작 ‘퇴폐적인 소녀 – 무도회가 끝난 뒤’란 제목의 작품이다. 캔버스를 지배하는 겨자 빛 초록색과 세련된 검푸른색의 대비가 눈을 확 잡아끈다. 검은색 옷을 입은 그림 속의 여성은 초록색 소파에 거의 그로기 상태로 누워 있다. 무도회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길래 저런 포즈와 표정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녀의 모습은 보는 사람에게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제목을 모르고 본다면 감상하는 이의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무릇 그림은 그런 법이니까. 난 여성이 오른손에 들고 있는, 수첩인지 책인지 확실치 않은 노란색 노트와 축 늘어진 왼손 검지 손가락 끝에 눈길을 준다. 그리고 지금 내 상황에 맞춰 이 그림을 해석한다. 혼자 책을 읽다가 문득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자기만의 상념과 허무함에 빠져든 여성. 즉 궁극의 고독 속에서 존재론을 펼치는 여성. 바로 나. 이 여성은 언제쯤 자세를 가다듬고 소파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다행히 내게는 소파 너머 노트북이 있다. 계속 축 늘어져 있지 않고 창작 모임 시간에 맞춰 몸을 일으킬 거라는 걸 안다. 그래서 이 그림을 계속 볼 수 있다.
한국인이 드문 유럽의 어느 소도시에서 문우(文友) 찾아 삼만리를 떠나는 사람의 외로움과 고독을 당신은 아는가. 오늘도 난 현대 기술을 이용해 이 글을 당신에게 전한다. 부디 이 문장을 읽을 때쯤 이역만리에 있는 당신이 내 문우가 될 수 있기를. 아니, 당신이 좋든 싫든 당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난 당신을 내 문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문우들이 주는 용기에 힘 입어 굶어서 얼어 죽을 지라도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