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아리 Mar 18. 2023

대학을 내려놓고 꿈을 향해 걷다

이대로도 괜찮습니다

아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건 9시 20분, 부산으로 향하는 열차 시간을 10분 남겨 둔 시점이었다.

"엄마, 개찰구를 나가야 하는데 카드 인식이 안돼요."

아이 특유의 건조한 말투 속에 초조함이 느껴진다. 계획한 대로 되지 않으면 급 당황하고 머리가 하얘지는 아이다.

순간 나도 당황하여 '어떡해'라는 단어가 튀어나올 뻔했다.

개찰구 옆에 호출 버튼을 눌러 직원과 통화하라고 일러주고 얼른 전화를 끊는다.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는 엄마의 마음이 들킬세라.


오늘 아이가 향하는 목적지는 부산. 3D 아트 쪽으로 관심이 많은  아이는 게임 컨텐츠 관련 작업에도 호기심이 많다. 부산국제게임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아이를 세상 밖으로 이끌었다. 혼자 이 도시 밖을 나가본 적이 없는 아이다. 더구나 공황 증세가 있는 아이에게 대중교통 이용은 쉽지 않은 일인데 꿈이 아이를 움직이게 한 것이다.


잘 도착했다는 짧은 통화가 한 번 더 있었고, 궁금한 엄마의 성화에 초점 잃은 사진들을 무작위 전송하는 것으로 아이는 자신의 안위를 대신 보고했다.

대입을 내려놓은 아이는 본격적으로 꿈을 향한 세상 탐색에 나서는 중이다. 여전히 '불안하다'를 입에 달고 살지만 행동은 훨씬  자유로워졌다. 이것저것 들쑤시고, 파헤치고 그러다 보면 얻어걸리는 게 있지 않겠는가.



꿈꿔라꾸고,
꾸고 또 꾸워라.
마치 이루어진 것처럼


아이에게 교실은 진공상태의 공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곳이었다. 그저 엄마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악착같이 버텨야 하는 공간일 뿐이었기에 중학교 졸업만을 위해 온 힘을 다해 버티던 아이에게 공부까지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공부의 기본이랄 게 없던 아이는 자퇴를 하고 지난 1년간 부단히도 노력을 했다. 수학은 초3까지 내려가서 다시 계단을 밟아 올라왔고 영어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자기 나이에 맞는 학년 수준으로 성적을 끌어올릴 수 있었고, 뭔가 해 놓았다 생각하니 대입도 생각하게 되었다. 표현은 약했지만 공부를 통해 아이가 자신감을 얻은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고민은 계속되었다. 아이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들을 자신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좋은 대학을 꿈꾸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지고 싶은 열망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아이는 갈등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단다.해야 할 것 같은 일이 아닌 네가 원하는 것을 찾고 그 일을 하는 거야.

늘 세상에서 비켜나 구경꾼처럼 살아왔던 아이는 남들처럼 살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 그래서 대학을 목표로 했고, 엄마인 나도 바라지 않는 그럴싸한 직업들을 꿈꾸었다. 생각해 보았다. 아이의 생각이 비단 아이만의 판단이었을까? 내심 엄마로서 내비친 기대 같은 게 있지는 않았을까.

지난 8년간 세상 속에서 머물지 못하고 혼자만의 동굴에서 사는 아이를 바라보며 나에게는 몇 가지 평균을 비켜가는 정의들이 마음에 자리잡게 되었다.  그중에 하나는 부모가 걱정해야 할 것은 대학을 못 가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게 없다'라는 것이다.  내 마음 안에서 '대학'은 하나의 선택지이지 필수가 아니다.


분명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우선은 대학을 가는 데 모든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하니 아이는 심란하고 집중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불안도가 다시 슬슬  올라오는 게 보였다. 부정적인 생각의 꼬리물기가 시작될세라 아이에게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타이밍을 나는 놓치지 않기로 했다.



대학?
하나의 선택지일 뿐
절대적인 건 아니야


우선 아이의 마음 안에 부모에게 인정받는 길이 대학이라는 생각이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엄마의 마음 안에는 결코 대학으로 위안을 삼고 싶은 마음이 없음을 분명히 알려 주었다.

그러고 나서  대학이 아니어도 세상에는 높이 날 수 있는 활주로가 얼마든지  많다는 것을, 변화의 속도가 빠른 요즘 오히려 대학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원할 때 가도 된다, 지금 당장이 아니어도 된다고.

보편적인 가치, 평균적인 삶이란 개념이 점점 흐려져 가고 있는 요즘이다. 대학 그까짓 거 손 놔도 된다고  그 게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고 끊임없이  메시지를 전달했다



꿈이란 무엇일까? 못내 돌아가고픈 삶을 유턴하게 만드는 용기 아닐까?잊고 있었지만 사라지지 않는 그런 것 말이다. 직업은 꿈이 아니다. 문득 나의 시간들이 공허하고 불행하다 느낀다면 내 안에 꿈을 드리우면 어떻게 될까?

꿈 하나 꿔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의 꿈은 트렁크 하나에 들어가는 단촐한 짐을 가지는 것이다. 작은 원룸 하나 나의 공간을 가지는 것이다. 그 안에서 마음껏 책을 읽으며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때로는 그 상태로 어디는 원하는 곳으로 여행을 갈 수도 있겠지.


세상에 발 붙이지 못하고 홀로 표류하는 아이를 키우며 난 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다. 내가 아이에게 꿈꾸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일러주지 못해 아이가 불행했나 자책도 했다. 나 자신이 꿈을 잃고 헤맸기에 그것을 아이가 배웠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찬찬히 생각해 보자. 우리가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인지 말이다. 내 아이가 어떤 삶을 살았으면 하는지 말이다. 물질적 풍요와 안락한 삶이 보장된다고 모든 게 충족되는 게 아님을 알면서도 하나의 길만을 말해주는 건 부모로서 직무 유기라고 생각한다. 부모라면 여러 갈래의 길이 있음을 알려 주고 폭넓은 선택지를 보여 줘야 한다. 내가 보여주는 길만이 정답이라는 오만함을 내려놓아야 한다


오전 10시, 언제나처럼 큰아이와 함께하는 아침이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는 시간, 아이는 자기의 아침밥을 챙겨 먹고 자기만의 작업에 몰입 중이다. 점선면의 법칙이 있다. 아이도 나도 우리는 지금 부지런히 점을 찍어가고 있다. 이 점들이 언젠가 선이 되고 선들은 다시 면을 이룰 것이다. 얼마가 걸릴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속도보다는 방향이다. 자퇴를 선택한 아이의 시간이 남들보다 더디게 흐를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 이상 유턴을 해야 하는 일은 적지 않을까?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공간에서 자신의 꿈에 다가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도 내려놓으셨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