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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샤쓰 그 신후 May 17. 2021

밀리터리 장르소설) 무토 - 인간, 병기

1부 - 챕터# 9. 기무라는 무토를 형제로 생각했다.

    사흘 동안 병사들은 처량한 음조의 일본 가요를 부르며 위안소를 지었다. 정글의 나무를 베고 잘라 뚝딱뚝딱 판잣집을 세우고 진흙과 돌, 마른풀까지 구할 수 있는 재료는 다 동원했다. 내부에는 다다미 넉장(2평가량) 넓이로 나무 틀을 세우고 가마니로 덮어 칸막이를 만들었다. 방음 같은 건 전혀 고려할 수 없었고, 칸막이도 발을 들면 옆 방이 보일 높이였다.  스물다섯 개의 좁은 방마다에는 원주민이 대나무를 잘라 만든 돗자리를 깔았고 그 위에 군용 모포를 서너 장 덮었다. 위안소가 완성되자 병사들은 서둘러 여자들이 사용할 변소 구덩이를 팠고, 간단히 몸을 씻을 목욕간을 만들기 위해 우물을 정비하고 주위로 천막을 쳤다. 이제 도라지 꽃이 도착하기만 하면 되었다. 


    무토도 오랜만에 훈련도 없는 한가롭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두통은 사라졌다. 역시 숙취 때문이었다고 생각한 무토는 위생병 신조에게 별 말하지 않고 넘어갔다. 

    여가가 주어졌다 한들 딱히 할 일은 없었다. 무토가 재미를 들인 소일거리도 특별히 없었고 전쟁터 한가운데서 딱히 취미란 걸 가질 이유도 없었다. 그저 담배를 피우며 총기를 닦거나, 보급 상황이 더 나빠져 고기를 구경하기 어려웠기에 가끔 소대원들과 사냥을 나가는 정도였다. 

    무토는 특별히 친한 동료나 부하를 만들어 두지 않았다. 사람을 죽이는 일 따위에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고, 그런 감정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우정이라든가 전우애라 부르는 그런 것들. 

    과묵함과 무표정 때문인지, 그가 가진 능력 때문인지 몰라도 대체로 사병들은 무토를 무서워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경외감 같은 감정도 사병들 사이에서 떠다녔다. 무토를 앞세우면 그 어떤 적이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과 신뢰 같은 감정들. 

    사병들 사이에서는 무토가 혼자서 지금껏 몇 명을 죽였는가에 대해서도 항상 논쟁거리였다. 누구는 천 명을 넘을 거라 했고, 누구는 만 명을 족히 넘을 거라 주장했다. 심지어 무토가 총알을 맞아도 죽지 않는 불사신이라는 견해까지 등장했다. 그 병사는 자신이 직접 세어 보고 있는데 무토가 지금껏 13발을 맞았다는 거였다. 아무튼 전투 현장이 아니면 잡일꾼 무리일 뿐인 군인들 사이에서는 무토가 경탄의 대상임은 분명했다. 아니면 공포의 대상이거나. 


    이 밖에 무토는 가끔 기무라가 원하면 야구를 했다. 기무라는 선수 출신으로 야구를 무척 애정 했고 실력도 매우 뛰어났다. 고교시절에는 학교를 대표하는 4번 타자에 1루수로 경기를 치르기도 했었단다. 군인 집안이라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야구를 그만두었다고 말했었다.

    장비로는 무토가 죽인 미군 장교에게서 뺏어온 야구 공과 배트가 있었고, 야구 장갑은 찢어진 군화로 대충 기워 만들었다. 무토는 한 번도 야구라는 걸 해보지 않았지만 규칙을 익히는 데에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방망이로 공을 치고 한 바퀴 돌거나 던지라는 대로 던지면 되는 거였다. 다만 반드시 지켜야 하는 주의 사항이 있었다. 바로 힘 조절이었다. 무토가 처음 타석에 들어섰을 때 야구공을 너무 멀리 쳐버렸기에 정글에서 공을 찾는 데 꼬박 사 일이 걸렸다. 그것도 소대원 20명이나 동원되고서야 겨우 찾은 것이었다. 꼭꼭 숨은 적군을 수색해야 할 수색대원이 낡아빠진 야구공 수색작전을 펼친 꼴이 된 셈이었다. 

    또한 기무라는 무토에게만 적용되는 규칙을 정했다. 무토는 홈런 아니면 강속구 투수였기에 양 팀이 원할 때 딱 1회씩만 타자나 투수로 쓸 수 있다는 거였다.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위에 야구를 하다가 폭우라도 쏟아지면 병사들은  전부 알몸이 되어 비누칠을 하곤 했다. 대대장 기무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병들과 함께 비누칠을 하며 킬킬거리는 걸 즐겼다. 

    서로 등에 비누칠을 해준 무토와 기무라가 대충 군복을 걸치고는 나란히 앉아 담배를 피웠다. 기무라가 길게 연기를 내뿜고는 말했다. 

    "이번 인도 진격 작전만 대승으로 끝난다면 한 달간 휴가를 요청할 생각이다. 너도 같이 가자."

    "저는 괜찮습니다. 휴가라 해도 어차피 갈 데도 없습니다."

    "왜 없어? 우리 집에 가야지. 내 고향 나가사키의 바다를 봐야 해. 나가사키의 음식도, 나가사키의 여자도 말이야."

    기무라가 싱긋 웃었다. 

    "우리는 가족이라 생각해. 넌 내 막내 동생이고. 전쟁이 끝나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사는 거다."

    "감사합니다. 전쟁이 끝난 뒤는 한 번도 생각을 안 해봐서..."

    무토는 말끝을 흐렸다. 실제로 무토는 만약 전쟁이 끝나면 어떤 인간이 될지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았다. 전쟁터 외에는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이라 늘 느껴 왔고, 전쟁이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가져라."

    기무라가 지포 라이터를 건넸다. 미군 장교의 이름과 성조기가 새겨져 있었다. 

    "행운의 부적이다. 여기 가슴에 넣어두면 절대 뒈지지 않을 거다." 기무라가 자기 가슴을 힘 있게 두드렸다. 

    "저보다는 대대장님이 더 필요하신 거 아닙니까?"

    "이 새끼, 잘난 척이라도 하는 거냐?"

    기무라가 무토의 군복 가슴 주머니에 라이터를 넣어주었다. 

    "감사합니다. 대대장님도 절대 뒈지지 마십시오."

    "네가 있잖아!" 

    둘은 사이좋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 순간 초소 경비를 하던 경계병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도라지 하나가 왔다!!!" 


    이 외침을 신호로 하늘을 찢는 듯한 병사들이 함성을 터트리며 우르르 몰려나왔다. 수송트럭이 정문을 통과해 연병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천국으로 갈 기대나 하라고. 제일 어린 도라지 꽃을 너한테 가져다줄 테니까." 

    기무라가 등을 치며 일어서자 무토가 따라 일어서며 트럭 쪽을 바라봤다. 얼핏 여성의 얼굴이 보였다가 먹구름 떼와 같은 병사들에 의해 바로 가려졌다. 무토는 그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꿈속에서 본 그 얼굴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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