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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샤쓰 그 신후 May 06. 2021

밀리터리 장르소설) 무토 - 인간, 병기

제1부 - 챕터#1. 무토는 이 날 혼자서 적군 46명을 해치웠다.

1943년 9월. 우기

버마(현 미얀마) 카친주 미찌나 북부 최전선 일대.           



    일본군 군조(중사 계급) 무토는 혼자서 적군 46명을 해치웠다. 적 병력이 60명이었으니 혼자서 거의 몰살시킨 거와 다름이 없었다.

    상대는 미국 전략사무국(OSS)이 창설한 ‘102 파견대’라는 특수부대 소속 2개 소대였다. 미 육군이 아닌 첩보기관에서 특수부대를 창설해야만 했던 이유는 명료했다. 바로 정글전이었다. 미국과 영국 주축의 연합군은 일본군이 버마를 침공하기 전까지 정글전을 제대로 치른 적이 없었다. 길이라곤 찾을 수 없는 빽빽한 밀림과 살인적인 무더위, 2000미터에서 3000미터도 넘는 험악한 버마의 지형, 사망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모기떼와 벌레들은 서구의 군인들에게는 악몽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 때문에 일본군이 버마 전역에서 승승장구 밀려오자 당황한 연합군은 영국령 인도로 후퇴에 후퇴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치욕이자 굴욕적인 대패였다. 이에 이를 간 미국이 정글전 특수부대를 비밀리에 육성하기 위해 전략사무국을 활용했고, 그 결과물이 102 파견대였다. 

    102 파견대에게 주어진 임무는 정글 침투 후 첩보활동, 그리고 중국으로 향하는 보급로를 개설하는 미 공병부대를 보호하는 일이었다. 일본군이 공병대의 존재를 알아채고 기습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접근로를 봉쇄하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이들은 정글 오지와 오지를 오가며 협곡의 다리를 폭파하고 산의 절벽 면을 폭파해 낙석으로 접근 가능한 모든 통행로를 막아두었다. 

    작전은 정글 침투에 십 일이나 걸렸기 때문에 완수까지 이 십여 일이 걸렸다. 임무의 마지막 밤, 가장 깊은 오지에 마련한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102 파견대 소속 2개 소대는 오랜만에 불에 조리한 음식으로 든든히 배를 채웠고, 맥주캔을 나눠마시며 캠프 천막에서 편안한 밤을 보내는 중이었다. 내일 아침이면 행군이 시작될 터였다. 물론 또 십 일이나 넘게 지겨운 정글을 뚫어야 하겠지만 모두 살아서 귀대한다는 안도감에 부대원들은 전부는 희열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딱 하나 이들이 얕잡아 본 게 있었으니 바로 무토의 능력이었다.      


    102 파견대가 오지에서 오지로 수없이 오갔다면, 무토도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후각과 청각을 앞세운 그의 동물적 감각과 민첩함은 인간의 수준을 뛰어넘을 정도였다. 특히 동물들이 다니는 정글 이동로를 찾아내거나 도망치는 적병을 잡아내는 데는 귀신, 그 자체라 불릴 정도였다. 무토는 홀로 정글에서 나흘을 수색한 끝에 미군의 이동로를 발견했고 그들의 흔적을 찾는 데에 성공했다. 미군 정글 부대가 일본군이 놓은 다리를 폭파하고 다닌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마츠이 소대가 출동한 지 십일 일만이었다. 

    소대 병력은 소대장과 부소대장을 비롯한 소대원 36명에 통신병, 위생병, 탄약 보급병 4명을 합쳐 전부 42명이었다. 이들은 무토가 찾아낸 동물의 이동로를 따라 칠 일이나 힘겹게 이동하던 중 커다란 난관에 부딪혔다. 눈앞에 거대한 절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었다. 발밑 협곡으로는 도저히 길이라곤 없었다. 위로 오르는 게 그나마 안전한 선택이었고 이번에도 무토가 나서야만 했다. 

    암석 깨기용 망치와 못처럼 생긴 쇠고리가 든 연장 가방을 챙긴 무토가 밧줄 더미를 어깨에 두르고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숨 막히는 무더위에 무토의 상반신은 이내 비에 젖듯 땀줄기를 줄줄 쏟아냈다. 조각으로 빚어놓은 듯한 크고 작은 근육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고, 곳곳에 새겨진 흉터가 선명했다. 나무를 타는 표범처럼 가뿐히 오르던 무토가 한 손만으로 대롱대롱 위태롭게 매달렸다. 대원들을 위해서 디딤돌이 없는 지점에 쇠고리를 박기 위해서였다. 이미 힘쓰는 건 충분히 단련된 무토였다. 특수용병으로 거듭나기 위해 가장 중점적으로 받은 훈련이 힘을 키우는 훈련이었다. 매일같이 역기와 씨름을 했고 팔다리를 비롯한 손가락 악력까지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최종 근력 테스트 때는 스모 선수 두 명이 밀어붙여도 끝까지 버텨낼 정도였다. 무토가 이내 수월하게 절벽 위로 타고 오르자, 대원들은 이미 여러 차례나 봐왔음에도 불구하고 넋 나간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소대장 마츠이만은 달랐다. 툭 튀어나온 광대뼈가 도드라진 그 얼굴에는 왠지 비웃는 듯한 냉소가 흘렀다. 마츠이가 수색대 모자를 벗자 면도칼로 빡빡 밀어버린 민머리가 드러났다. 뒷머리 쪽에 욱일기가 문신으로 새겨져 있었다. 마츠이가 정수리부터 욱일기까지 줄줄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아냈다.

    이즈음 대원들 입에서 '아….' 하는 탄성이 일제히 터졌다. 마침내 무토가 절벽 정상에 오른 것이다. 열 몇 개나 되는 쇠고리를 박아가면서 말이다. 무토가 밧줄을 아래로 내리자 대원들이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십여 분이 지나자 마츠이를 비롯한 대원 전원이 정상에 서 있었다. 무토는 마츠이 앞에 지도를 펼치고 미군들의 캠프 예상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서 2킬로미터 거리입니다. 내려가는 정글이 빽빽해서 시간당 이동 거리를 200미터로 잡아야 합니다. 열 시간이 소요될 겁니다.” 

    마츠이가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지시했다. 

    “휴식은 한 시간마다 십 분이다. 부대 사주 경계. 이동.” 

    부대는 이동을 시작했고, 열 시간이 아니라 스물한 시간이 걸렸다. 정글이 너무나 깊었던 탓에 밤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차라리 수면을 취하며 체력을 보충하는 게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오후 세 시경 마츠이 소대는 미군 캠프로부터 약 600미터 떨어진 지점에 도착했다. 이제 밤이 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밤이 되었다. 그리고 새벽 03시 10분.

    검은 군복을 입은 무토가 짙은 어둠 속에 서 있었다. 위장용 숯으로 얼굴과 목, 손까지 까맣게 칠한 그는 주머니에서 검은 두건을 꺼내 머리에 단단히 묶었다. 두 눈의 흰자위만 번뜩였고, 눈을 감으면 그는 다시 어둠이 되었다. 무토가 무기를 집어 들었다. 먼저 영국제 자동권총이 든 권총집을 군용 벨트에 채우고 탄띠에 탄창을 꽂았다. 이어 다른 무기도 집었다. 정글도로 불리는 마체테였다. 자동권총 한 정과 마체테. 소리 없이 침투하기 위해 무토는 항상 지극히 간단한 무기를 선택했고 침투 후에는 적의 무기를 사용했다. 침투에 최적화한 무토의 방식이었다. 

    어둠 속에서 마츠이가 부소대장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에는 욱일기가 그려진 두건을 쓰고 있었다. 각각의 돌격 지점에 부대원들을 배치한 후였다. 

    “준비됐나?”

    “침투, 적 주요 중화기 제거, 지휘관 암살 후 출구 개방까지 20분입니다.”

    “미군 놈들은 우리가 오는 줄도 모르고 퍼질러 자고 있겠지. 내가 전면 돌격을 지시하기 전에 한 놈이라도 더 죽여라. 신호는 전과 같이 수류탄이다. 수류탄이 터질 때까지 진격하지 않는다. 작전 실패로 인지하고 후방 집결지로 이동한다.”

    부소대장이 수류탄 상자 뚜껑을 열어 보였다. 무토는 수류탄 네댓 개를 탄띠 고리에 걸었다. 

    “질문?”

    “없습니다.” 

    “시계 맞춰.”

    마츠이가 손목시계를 들어 보이자, 무토가 자신의 손목시계 바늘침을 마츠이의 그것과 똑같이 맞췄다. 

    “2분 후 작전 개시다.” 

    마츠이가 돌아가자 무토는 빽빽한 어둠을 응시했다. 경계를 위해 설치한 적의 청음초는 전방 300미터 부근에 있었다. 무토는 눈을 감았다. 그는 언제부턴가 어둠이 편했고 안락함마저 느꼈다. 2분간 어둠의 안락함을 만끽한 무토가 눈을 떴다. 

    이내 움직이기 시작했고 곧바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청음초를 지키던 미군 두 명은 정말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했다. 흔들리는 나뭇잎도, 어떤 생물체의 움직임도, 발소리조차도. 

    그 대가는 참혹했다. 등 뒤에서 날아든 마체테에 목이 뎅강 잘렸다. 옆의 병사는 경악도 하기 전에 정수리를 내려친 마체테에 머리가 두 동강이 났다. 잘린 목에서 분수처럼 치솟는 핏줄기가 주변 풀들을 적셨다. 

    무토는 빠르게 이동했다. 먹이를 가로채는 동물과도 같은 움직임이었다. 그의 검은 형체는 어둠 일부로 보였기에 그 어떤 인간도 맨눈으로 발견해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무토는 불과 10초도 채 안 된 시간에 청음초로부터 300여 미터 떨어진 캠프 앞에 도착해 있었다. 

    캠프 천막들은 개울이 흐르는 옆 공터에 모여 있었다. 이 인용 천막이 열여섯, 지휘관이 있는 대형 천막이 하나, 취사용과 탄약 창고용이 각각 하나씩이었다. 밀림의 나무 사이로 철조망을 두르고 정문에 해당하는 지점에 흙 주머니를 잔뜩 쌓아 올렸다. 야간 경계병 네 명이 보였다. 두 명은 기관총이 설치된 정문 참호 속에, 두 명의 소총수들은 오른편 나무 은폐물 뒤에 숨어서 감시하고 있었다. 캠프의 후방은 돌벽에 가로막혀 있었고, 왼쪽은 개울이었기에 미군은 정문과 오른쪽만 경계하고 있던 것이었다. 무토는 아주 잠깐 고민했다. 전술대로라면 중화기인 기관총을 제압하는 게 먼저였다. 그러나 소총 경계병이 너무 가까이 있다는 게 문제였다. 무슨 일이건 벌어질 수 있었다. 기관총 사수와 부사수를 제압하는 동안 무토를 향해 소총을 난사할 수도, 부대 전체에 적의 기습을 알릴 수도 있었다. 아마 후자일 터였다. 때문에 총소리가 나게 해서는 절대 안 되었다. 수류탄으로 신호를 주기 전까지는 최대한 많은 수의 병력을 처리해야만 하는 게 무토의 가장 중대한 임무였다. 

    판단을 내린 뒤, 무토는 빠른 속도로 나무를 타고 올랐고 울창한 나뭇가지 틈 속에서 두 명의 소총병을 내려다보았다. 발아래의 쇠 철조망을 뛰어넘어 적진에 떨어지면 본격적인 살육이 시작될 터였다. 무토는 언제나 총을 든 적군을 보면 분노가 들끓었다. 죄책감이나 자비, 측은함 따위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분노의 이유는 몰랐다. 어디서 비롯됐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이 어쩌다 군인이 되었는지조차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이 소설은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나 실제 역사와는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 

등장인물을 비롯한 소설의 내용은 창작된 허구이며, 당시의 전황의 묘사 또한 실제와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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